안녕하세요
설진용 입니다.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몇번 들어와보았지만,
글을 쓰는 것은 처음입니다.
아버지학교를 이번에 5기로 졸업했는데,
5주 프로그램 가운데
마지막 주 프로그램은 아내와 함께 참석하여
아내에게 쓴 편지를 낭송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가끔 아내에게 편지를 쓰긴 했지만
여러 사람들 앞에 공개되는 편지를 쓴다는 것이 꽤 신경 쓰였습니다.
그러나 가볍게 쓰자고 생각하면서 몇자 적었는데,
아버지 학교가 끝난 뒤
교회 홈피에 편지를 올렸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편지를 교회 홈피에 올리기가 좀 이상하지만
어차피 공개석상에서 읽혀진 편지이기에 그냥 올려봅니다.
심심할 때 읽고 지나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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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 윤순에게
며칠간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계속된 비로 온 산천이 말갛게 씻겨지는 것을 봅니다.
내린 비에 씻겨 상쾌하게 느껴지는 숲 위로 넓은 시야가 펼쳐집니다.
장마 비에 맑게 씻겨져 초록빛을 되찾은 잎사귀들이 비벼대며 찰랑거립니다.
물기 머금은 플라타너스 이파리 사이로
찰랑거리는 당신 윤순의 머리카락이 보입니다.
숯이 많고 윤기 넘치는 머리결.
당신은 머리를 무척이나 기르고 싶어하던 여인이었지요.
그러나 생활에 지친 삶은 머리를 찰랑거리도록 기르며 살도록
내버려 두지를 않았습니다.
푸른 나뭇잎 사이로 햇살처럼 내게 다가왔던 당신!
함께 살아오면서
퇴색된 머리카락으로 변해버린 당신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미장원에 머리를 자르러 나가는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퇴색된 당신의 머리 결 사이로,
고생해왔던 당신의 모습이 책장을 넘기듯 생각납니다.
아픈 쌍둥이 아이들을 키우느라 온갖 고생을 다한 당신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가슴 한 켠이 아려옴을 느끼곤 합니다.
젖은 안개 속에 손을 잡고 새벽 기도를 다녔던 학동 우물가의 집,
그렇게 시작했던 우리의 생활은 백운동에서,
문틈 사이로 휘파람 불 듯 밀려들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면서부터
평탄하지 못한 삶으로 접어들게 되었지요.
숨이 곧 멎어버릴 것만 같은 아이들을 들춰 안고 병원을 향해 내달리던 생활,
도움은 되지 못하고 오로지 의무만이 있었던 부모 형제들과의 갈등,
새마을호 열차가 아닌 새마을호 배를 타고 들어가 살았던 조도에서의 생활,
그리고 온통 곰팡이로 얼룩진 판자 집에서 살았던 시절에도,
당신은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불 때면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휘히힝거리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살았던 시절이었지만,
토요일 오후 내내 세찬 바람을 맞으며 당신이 따왔던 굴을 반찬 삼아 먹고,
또 장어를 말려 연탄불에 구워 먹었던 여유가 있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무거운 석션기를 들춰매고 멀리 서울대병원까지 다녀야 했던
안타깝고 비참했던 삶을 살아오면서
당신의 검게 찰랑거리던 머리결은 빛을 잃어왔습니다.
3월 보일러가 고장난 이천 월세방에서의 생활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생활이었을 것입니다.
가진 돈은 병원비로 다 들어가고 사글세 신세로 전락하여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생활.
윗목에 두었던 물이 밤새 얼어버리는 차가운 날씨 속에서,
아픈 아이들을 몸으로 덮어 추위를 막아주려 했던 당신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지붕이 새고 방바닥이 내려앉아 늘 불안하게 살았던 성남 수진동의 집..
그렇게까지 가난했던 삶을 딛고 신갈 우리집으로 이사를 올 때,
기쁨이 넘쳐 잠을 이루지 못하던 당신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가족 앨범 CD에 들어 있는 시를 다시 적어봅니다.
그대
향기로운 바람결에
다시 오네
눈 속에 묻었던 이야기
물소리도 살아나고
제비꽃도 머릴 들었네
풀이되어 사는 것은 어떤가
보리밭 샛길을 걸어서
무새 옷을 초록으로 갈아입고
언 땅에서
지금 오시는 친구여
문 밖에서 잠깐 기다리게
춘궁(春窮)은 문을 닫고
그 성하던 남루(襤褸)도
이제는 우리 무릎 아래일세
이제, 우리는 다시 새로운 곳으로 자리를 잡아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
머리 속에 그려왔던 그림 같은 꿈이
우리 교회에서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목사님을 만나기 전부터 내 생각 속에 있던 모습을
지금 목사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황당한 생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믿음도 어찌 보면 황당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바닷물이 갈라지고 해가 멈추는 일이 어디 믿기기나 할 일입니까?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믿고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미장원에 간지 3시간 가량 되어가니 이제 돌아올 시간이 되었나봅니다.
머리가 어떻게 되어 있을까 궁금합니다.
긴 머리가 아니어서 찰랑거리는지 알아볼 수는 없지만,
다듬고 난 머리결에
윤기가 흐르는 모습으로 들어왔으면 하는 기대가 됩니다.
계속된 장마비로 주위가 온통 말갛게 씻겨졌습니다.
비 끝에 퍼져있는 안개 속에 씻기고 적시어
촉촉하고 윤기 있는 머리결로 단장되어 들어오기를 기대합니다.
아파트 앞 물류창고 울타리에 있는 실버들이
물기 먹은 바람을 맞아 싱그럽게 찰랑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2004년 7월 8일에
늘 마음에 있는 대로 표현하며 살지 못하는
성질 고약한 못된 남편이 씁니다.
p.s.
그녀는 부족한 나를 가득 채워주는 느낌입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내 삶은 영화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 브래드 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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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입니다.
5주간 진행된 아버지 학교는 제게 많은 생각을 해보게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들인 나
남자인 나
아버지인 나
남편인 나
이렇게 4개 과정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가운데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해보고
그동안 무심하게 살아왔던 보통 남자와 아버지의 삶을
점검해보고 반성해봄으로써
새로운 아버지와 남편의 모습을 찾아 자리잡도록 해주는
제게는 매우 유익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나의 장점 20가지 이상을 쓰는 과제와
자녀가 사랑스러운 이유 20가지 이상을 쓰는 과제가 있었습니다.
이 과제를 하면서
특히 자녀에 대한 과제를 하면서
자신과 아이들의 단점과 문제점을 찾기는 쉬우면서도
장점을 찾기가 왜 그리 어려운지....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는 주님의 명령을 알면서도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기보다는
주위를 보면서, 환경을 보면서 불평하고 원망하며
살아가기 쉬운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유익하고 재미있기도 했고
감동적인 순서도 많이 있었지만
제가 가장 감동을 했던 것은
아버지학교를 위해 뒤에서 많은 분들이 중보기도하며
헌신적으로 노력해주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버지 학교의 학생(?) 한사람씩을 담당하여
중보기도를 하시는 분들이 계셨다는 사실을
아버지 학교가 다 끝날 때쯤에야 알았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를 해주신 분은 이병숙 집사님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학교의 기간 중에 중국 말씀사역자로 다녀오시는 등
많은 바쁜 일들이 있으신 가운데서도
저를 위해 계속 기도를 해주신 이병숙 집사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기도 뿐 아니라 많은 분들께서 뒤에서 도우면서 애쓰시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기도와 봉사에 빚을 많이 지었습니다.
다음 6기 아버지 학교를 하는 동안
저도 진 빚을 많이 갚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좋은 프로그램을 주시고
은혜스러운 분위 가운데 5기 아버지학교를 이끌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설진용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