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5/15 15:43
화요반: 이계숙
내용:
영국 웨일즈 남부의 광산촌에서 태어난 하월즈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경건과 사랑이 넘 치는 그의 가정은 행복했다. 아름다운 자연과 신앙의 사람이었던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영향력 아래 성 경을 기초로 교육받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세상 적인 즐거움에는 흥미가 없었고 말씀 듣는 일을 즐겨했으며 죄가 없는 깨끗한 삶 을 살았다. 그러나 1페니를 속인 사건이후 그동안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했었던 자신에게 죄의 본성이 있음을 깨닫는다.
가정 형편상 어린 나이부터 돈을 벌여야했던 그는 22세때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미국으로 가기전 목사님을 통해 듣게된(히12:1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말씀은 그가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서도 하나님과 많은 증인들이 보는 것처럼 대쪽같은 사람을 살게 했다.
스스로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여겼던 그가 `너는 거듭났느냐` 는 사촌의 질문에 충격을 받는 다. 그동안 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은 없었지만 자신이 어머니와 깊은 교류를 나누는 것처럼 하나님과 관 계를 맺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던 그가 장티푸스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을 때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서원 하므로 회복되고 난후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고민한다.
그러다 모리스 르우벤의 갈보리 간증을 듣는 중 자신도 십자가를 보게된다. 그때까지 이 세상에서 누구 보다도 자기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그 부모님도 대신 죽음을 당해주진 못했지만 주님은 대신해서 죽으 셨다는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이 들어오셔서 이세상 의 모든 자리를 대신하여 차지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 드린다. 그가 웨일즈로 다시 돌아온 그 해에는 대 부흥의 역사가 있었다. 그러나 회심하고 갓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 말씀에 바탕을 두어 믿음 뿌리 내리는 법을 가르치는 일과 영적 전쟁을 위해 성령의 능력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롬8:26-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예지에 의해 미리 정해졌다는 것과 의롭게 된 것은 알지만 영화롭게 되었는가?
(웹2:1-6,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자 함께 앉히시니)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움을 받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분 과 함께 일으킴을 받아 하늘에 그분과 함께 앉아있는가?
그는 영화롭게 되신 주님을 보았고 영화롭게 되신 주님의 임재 가운데 있었다. 성령은 지, 정, 의를 지니신 인격이시다. 인격이시기 때문에 사람 안에서 사실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자기를 온전히 내어 드려 야 한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성령도 우리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사시는 분이다. 성령께는 성전이 되어줄 몸이 필요하다.
일단 들어가면 하나님으로 들어가신다. 즉 네가 나가야 한다. 사형선고를 받은 몸 죽는 게 쉬운 일이라면 왜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그토록 고통 하겠는가?
우리의 옛 본성이 가야할 곳은 십자가 앞이다. 철저하게 자기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 앞에 그는 너무 두려 웠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았을 때 그는 자신의 타락한 본성 죄악덩어리인 자신을 보았다. 성령께서 그 순간 다루시는 것은 죄가 아닌 자아였다. 자아를 완전히 버리고 성령께 순종하기로 동의하지 않는 한 그분은 강제로 취하지 않는다.
그가 마침내 성령께 동의하는 순간 불사름의 사건이 일어나고 그는 이제 온전히 성령께 자신을 내어 드 리고 안에 들어오신 성령은 그를 신의 성품으로 바꾸어 가셨다.
1. 돈에 대한 사랑을 버리게 하셨다.
2. 가정을 이루어 오직 한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세상을 위한 삶을 살라
3. 야망을 버리고 양보하는 삶을 살라
4. 세례요한처럼 자신의 명성을 버리라. 예수님이 이 땅을 사실 때 자신의 목숨을 구하지 않 은 것처럼 너도 100% 남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완전히 자아를 포기하고 주님을 따르기로 결단하는 순간 지성소로 옮겨진 자신을 보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던 것이다. 성령이 들어오자 말재주가 없고 사람 앞에 나서지 못하던 그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에게 임한 성령에 대해서 간증했다. 성령의 내주를 통해서 생수의 강 이 흘러나오게 된 것이다. 성령을 받은 이후 그는 일평생을 중보기도의 사람으로 산다. 그동안의 기도가 자기의 생각대로 하는 기도였다면 이제는 성령께서 주시는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기도란 곧 응답이다.
중보기도는 응답 받을 수 있도록 먼저 자기 것을 온전히 내어 드려야 한다. 내어 드리지 않고 기도하는 것 은 시간 낭비다.
전혀 사랑할만한 가치가 없어 보이는 사람도 성령께서 사랑을 갖고 내안에 들어와 계실 때 정말 사랑할 수 있다. 주님이 한 영혼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는 나를 통해 한 영혼을 사랑하시는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전혀 변할것같지 않던 막돼먹은 사람도 3년을 꾸준히 섬긴결과 전혀다른 새사람이 되었다. 말로 만이 아닌 실제적으로 자기에게 있는 것을 희생하고 섬기는 사랑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한다.
수중에 돈을 한푼도 없게 만드심으로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종이 되게 하셨다.
은행잔고의 자리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다.
금식하며 기도하게 하셨고 철저하게 자기를 버리는 작업을 시키셨다.
가난한 자를 위해서 기도하면 그가 가진 것을 다 내어주고 그 가난한 자리에 똑같이 동참하게 하셨고 부 랑자를 위해 기도하면 부랑자와 같이 생활하게 하셨다.
성령은 그의 삶을 일일이 간섭하셨다.
그도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처럼 교회생활 열심히 하고 신앙생활 잘 하면서 그냥 살수 있으면 얼마나 좋 을까 하면서 매 순간 성령께 철저히 인도함 받고 순종하는 삶에 대해 힘들어했지만 그가 성령께 자신을 내어 들이기로 결단후 철저한 중보기도의 삶을 산다.
사단에 매어 있는 자들이 자유함을 얻게 되고 병자들이 치유를 받는다.
성경대학과 선교사 자녀들의 거처와 유대인 자녀들의 거처를 위해 땅을 사고 건물을 지은 것도 철저히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다.
제2차 세계대전 독일의 나치군을 패망케 한 것도 웨일즈 성경대학의 끊임없는 중보기도의 능력이었다 .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지만 가족에게 매이지 않고 선교 사역을 위해 아이를 포기했다. 그는 그렇게 일평 생을 중보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사랑을 실제로 나타내 보였다.
소감
우리는 지식으로는 잘 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것을,
그러나 실제적인 기도의 삶에 있어서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믿지 못하고 있나,
기도는 곧 응답이라고 했는데,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은 알면서도 거기서 성화의 단계로 나아가 기에는 너무나 더딘, 주님의 십자가는 생각하면서도 내 십자가는 너무 힘들고 두려운 내 모습, 나의 전 존 재로 그분을 사랑하고 아내의 자리, 엄마의 자리, 가정주부의 자리, 그리고 온 세상의 자리를 그분께 내어 드린다는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나의 신앙생활.
가정을 섬겨야 한다고, 내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것이 주님을 위하는 것이라고, 합리화시키면서 나를 부인하는 일에, 철저히 순종하는 일에 너무 게을렀던 자신의 모습을 봤다.
적당히 세상에 섞여 살고 적당히 교회생활하고 적당히 기도 생활하는 그런 삶 가운데 주님은 당신의 전 부를 내게 의탁해 오실 수 없었다.
지신의 것을 내어 드리지 않고 목자를 위해, 교회를 위해, 지체를 위해,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말로 드리는 기도가 중보기도 인줄 알고 시간을 허비하고 주님을 피곤하게 했다.
가난한 자를 위해서 기도 할 때는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제공해주며 기도해야 하고 천한 자를 위 해서 기도 할 때는 나 또한 천한 자의 위치에 있어야 하며 전쟁을 위해 기도 할 때는 실질적으로 전장에 나 아가 싸우는 군인보다 중보기도의 자리에 있는 내가 더 편해서는 안된 다는 사실들이 중보기도의 사명 이 있지 않나 생각했던 나에게 쇼크를 가져다 준다.
내가 철저하게 자신을 비우고 그분 앞에 내어 드리지 못하면서 나의 필요가 곧 그분의 필요라고 우겨봤 자 주님을 시험하는 꼴 밖에 더 되겠는가/
그러나 하월즈는 자신의 필요가 곧 그분의 필요였고 그러므로 하늘 보좌를 움직였다.
놀랍다. 백 여년 전에 그분을 통해 역사 하셨던 성령은 오늘날도 그와 같은 성령의 사람을 통해 역사 하실 것이다. 도전을 받는다. 그렇지만 주저되고 두렵다. 그냥 한 권의 책으로 끝나서는 안될것 같은데 너무 엄 청나서 어떻게 결단해야 할지 자신에게 있는 문제도 알겠고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를 원 하시는지도 알겠지만 응답하는 것은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주님은 주님이 계획하신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기도를 통해 그 일을 성취하신다.
상대의 아픔에 동참하며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달되는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기도 해야 한다.
< 믿음의 삶에 있는 하나의 황금률-자신이 먼저 드렸거나 기꺼이 드릴 마음이 없는 한 하늘 보좌를 움직일 수 없다.>
지금 성전 건립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우리들이 이 말씀 앞에 어떻게 결단해야 할지.
그리스도의 몸을 입고 이 땅에서 사셨듯이 나의 몸을 통해 이 땅에서 시시며 당신의 뜻을 펼치기를 원하 시는 성령 앞에 결단하고 싸워 나가야 한다.
그분은 인격이시기 때문에 강제하지 않으신다고 했다. 나의 허락이 있을 시에만 역사 하실 수 있다.
하월즈처럼 특별하게 사용되어지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항상 그분의 내주와, 함께 하심을 체험하며 그 분의 일을 성취하는 기쁨으로 살고 싶다.
부족할지라도 내가 한 영혼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고 도와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 순종하므로 나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고 싶다.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삶이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삶. 과연 그런 비젼이 내게도 주어지길 소원한다.
내가 감당 할 수 있는 분량은 얼마만큼 일까?
처음부터 끝까지 부담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