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러시아.선교를 다녀와서

작성자 이은숙 날짜2003.11.04 조회수5116
2000.11.23

나는 선교라는 단어가 부담스러웠다. 나에게는 그냥 관광 일 뿐이다. 나는 이 여행을 위해서 기도 한 적이 없다. 여행 날짜가 차질이 생겼다. 가지 말아야 될 내가 가니까 이런 일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갈까 말까 망설여진다.

안 집사님은 기도하지 않은 것은 회개한다고 한다. 나는 기도 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18일날 가는 것으로 확정이 났다. 김안순 집사님이 못 가시게 되어서 못내 아쉽다. 가기 전날 옷을 챙겼다. 기분이 들뜨지도 않 고 차분하다 못해 우울하다. 남편생각이 많이 났다. 내 마음속에 계속해서 남편이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 이다. 남편이 있었으면 나는 러시아에 갈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 사모님 생각이 났다. 남편과 같이 여행하 시는 사모님은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할까? 호산이는 속도 모르고 엄마를 놀려댄다.

러시아가서 바람나지 말라고 코 큰 남자와 같이 들어오는 거 아니냐고 하면서 농담을 한다.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아들이 대견스럽다. 18일 다음날 우리 일행은 공항에 전송 나오신 이 목사님이 내외분과 장로님 최 집사님의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받으며 출구를 빠져 나와 11시쯤에 탑승했다. 그리고 비행기는 11시40분에 이 륙했다.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이 오고갔다. 나는 83년에 비행기를 처음 탔다. 그 때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 쳐간다. 그 당시 나는 갓 결론한 새댁이었다.

깨끼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새댁 지금은 그 모든 것이 대조적이다. 그때 일들이 한낮 꿈만 같다. 10시간 걸리 는 시간이 조금 일찍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러시아 특유의 냄새가 날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냄 새가 나지 않았다. 다행이다 구역질이 나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공항을 나오는데 4시간이나 걸렸다. 비행 기가 한꺼번에 3대가 착륙해서 그렇다고 했다. 거기다 공항이 비좁고 시설이 낙후되고 서비스가 엉망이 다. 두 번다시 올 데가 못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를 맞이하는 분들은 고려인 3세가 로쟈 라는 분과 이 장로님 이 세 째 사위 되는 송대진 과장님이라는 분이었다. 그 분들의 안내를 받아 장신 대에 도착해서 저녁식사 를 하고 장신 대 기숙사에서 잠을 잤다.

이튼날 아침을 먹고 로쟈의 안내를 받아 붉은 광장과 레닌 시신을 구경했다. 바실레이 성당 전쟁기념관 을 보고 점심을 피자와 치킨으로 식사를 했다. 그리고 레닌 언덕을 구경하고 사마라로 가기 위해 공항으 로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식사는 대진과장님이 전기 밥통에 밥을 해 가지고 왔다. 공항에서 정뽈리 나 목사님도 함께 동행했다. 1급 통역사 란다. 여기서부터는 대진 과장님이 우리를 인내했다. 그 공항에서 제시간보다 40분을 더 기다렸다. 아주 짜증스러웠다. 앉을 의자도 부족하고 얼마나 다리가 아픈지 공항이 우리 시골 터미널만 못한 것 같다. 8시가 다 돼서 탑승을 하는데 비행기안이 지져분 해 보였다. 비좁고 의자 에 토해놓은 것은 치우지 않아 이봉순 전도사님과 몇 분이 다른 의자에 앉기도 했다. 저녁식사가 나왔는 데 나는 비유가 상해서 못 먹었다.

사마라는 러시아에서 4번째 큰 도시로 2차 대전 때 임시정부로 쓰여졌고 또 스탈린 지하벙커가 있는 곳이 란다.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로 2시간정도 걸린다고 했다. 10시가 넘어 사마리아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를 마 중 나온 아나톨리 목사님, 알렉세이 전도사, 샤샤 전도사, 빠쌰 여러분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아나톨 리 목사님은 박 목사님을 마이 빅 부라더라고 하다고 목사님이 말씀해주셨다. 큰 형님이라고 부르는 아 나톨리 목사님은 자기승용차에 박목사님 사모님 뽈리나 목사님을 모시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갔다. 버스 속에서 나는 알렉세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버스 속에서 나는 알렉세이와 많은 대화를 나 누었다. 알렉세이는 박목사님 펜이라고 했다. 그는 박승호 목사님을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 집회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이집화를 위해 기도를 많이 했다. 한 500명쯤은 모일 것이다. 다들 심장이 열 려진 상태이다. 우리는 목사님의 말씀을 사모한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정말 목사님을 좋아하고 기다렸 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일 주일예배가 기대가 된다. 11시에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장신대 기숙사보다 좋았다. 우리나라 일반 여관 수준이다. 이곳에서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이 쉬는 휴양소란다. 목사님께서 방 하나에 두 명씩 배정하셨다. 나는 짝이 없어 혼자 남게 되었다. `왜 여기까지 와서도 혼자 잠을 자야 되나`. 나 는 방에 들어오면서 가방을 던지며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러시아에까지 와서 내가 혼자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겁니까.` 나는 허공을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계속 질문하고 있었다. `하나 님 왜 나를 러시아에 오게 했습니까? 왜 여기에 나 홀로 누워 있습니까? ` 이 질문이 계속 머리 속에서 반복되 었다. 순간 나 혼자 방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편안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 집사님 푸푸대는 소리, 황 집사님 코 고는 소리가 안 들리니 말이다. 나는 잠을 자다 깨어 시계를 보니 5시 다. 2시가 넘어 잤는데 졸리지도 피곤하지도 않다. 더 누워 있다가 6시 반쯤 창문을 열어보았다. 공기가 아주 상쾌하다. 기분이 좋은 아침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대진 과장님이 해주신 아침을 먹고 교회로 갔다 . 그 교회는 사마라 통합 2교회라고 했다. 바실리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다. 맨 앞줄에 목사님 사모님 전도 사님, 집사님들이 앉고 나는 둘째 줄 의자에 대진 과장님과 앉았다. 나는 될 수 있으면 대진 과장님과 같이 앉으려고 했다. 그가 통역을 할수 있기 때문이다. 뒤를 돌아다보니 자리가 꽉 찼다. 의자가 모자라서 뒤에 다 의자를 새로 마련해서 앉기도 했다. 500명이 넘어 보였다. 오늘 예배는 박목사님 오셨다고 여러 교회가 함 께 부흥집회 같이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그들은 찬양을 아주 신명나게 부른다 할머니들도 몸을 흔들면 서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찬양을 한다. 바실리 목사님, 아나톨리 목사님 번갈아 가면서 말씀하시고 찬양 하고 기도하고 그런 시간이 반복해서 몇 번 있었다. 나는 대진 과장님 께 물었다. 이제 예배가 다 끝난 거냐 고. 대진 과장하시는 말씀.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한다. 내 생각엔 두 신간이 넘은 것 같은데...

그리고 바실레이 목사님이 목사님을 소개하는 것 같았다. 대진 과장한테 목사님을 어떻게 소개하는냐 고 물었다. 한국의 조용기 목사남 버금가는 박승호 목사님을 소개한다고 했다. 나는 목사님이 외국인들 앞에서 집회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어떻게 말씀을 전하 실까 궁금했다. 목사님은 단 상에서 러시아어로 인사를 하셨다. 그리고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 시는 모습이 아주 멋져 보였다. 또 자랑스러웠다. 나는 눈물이 나 오려고 해서 눈을 크게 뜨고 꾹 참았다. 나 는 속으로 나도 모르게 목사님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라고 외쳤다. 목사님의 말씀과 뽈리나 목 사남의 통역과 말씀을 받는 우리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을 느꼈고 성령님이 이 집회를 인도하신다는 것 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그 날 목사님 말씀에 은혜가 되어 푹 빠져 있었다.

내 안에 빛이 들어와 내 마음가운데 역사하고 계셨다. 혼돈한 것이 정리가 되고 공허한 마음이 채워지고 어두웠던 마음에 밝아짐을 알 수가 있었다. 말씀이 선포되어 질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져 가는 것 은 알 수가 있었고 내 마음이 새로워지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인식할 수가 있었다. 마음이 편 안하고 외롭지가 않았다. 늘 나를 따라다녔던 남편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이들 생각도 컨디션도 아주 좋 았다. 감사가 내 마음속에서 나왔다.

남편의 일을 격은 후로는 나는 감사가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집회 날은 내 귀가 열려지고 내 눈이 밝아짐 을 알 수가 있었다. 강퍅한 내 마음이 녹아 내리고 빈 가슴에 말씀이 새겨지고 텅 빈 머리 속에 말씀이 들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의 고난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나는 이 고난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 나님께 얼마나 항변했던가 하나님 왜 그러셨나요 왜 그러셨나요 하면서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했던가 이제는 왜 라는 단어를 쓸 필요가 없게 됐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의 가슴을 보게 하셨다.

하나님의 갈망, 고통, 아픔, 눈물을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내 속에 있는 것들이 밖으로 표출되었다. 하나님은 나에게 사랑을 주셨다 . 러시아 사마라에서 왜 하나님을 만나게 하셨는가를 나는 그들을 사랑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은 사랑한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함께 동화되어 가는 것을 그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 이 됐다.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리라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한 적이 없다. 집회 마지 막날 바실리 목사님이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 말씀이 있었다. 여러분 이곳에 나쁜 것은 다 버리고 좋은 것 만 가지고 가십시요. 하시는 말씀에 나는 이미 당신의 볼가강 맑은 물에 깨끗이 씻고 바람에 날려 버렸노 라고 했다. 이제는 그들과 이별하는 시간이 왔다. 나는 그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고 눈물이 났다. 바실 리 목사님은 공항까지 나오셔서 우리를 한사람씩 포옹하면서 내 보냈다. 나는 그에게서 노랑 내를 맡을 수가 없었다. 바실리 목사님한테는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었다. 지금은 다르다 그를 사랑한다. 그들은 영 적으로나 육적으로 배고파하고 목 말라있다. 그것을 채워주고 해갈 할 분은 목사님이라는 생각이 든다 . 나는 목사님께 러시아에서 사시라고 했다. 사모님도 러시아 음식이 맞는다고 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많은 것을 얻었고 보았고, 들었고 느꼈고, 경험했고, 체험했고 영과 육적으로 풍성하 게 누렸다. 내가 왕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돈을 내고 여행을 한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행사를 통 해 여행을 한다면 어찌 이런 대접을 받을 수가 있겠는가 영적인 부모를 잘 만났기에 목자를 잘 만났기에 지도자를 잘 만났기에 축복이 아닌가!

목사님은 우리 목사님만이 아니시다. 목사님은 만인의 연인, 만인의 목사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