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북경신학교 내적치유 사역 소감문 (정광훈 장로)

작성자 정정애 날짜2010.12.03 조회수1471

북경 내적치유 사역을 마치고...


2010. 11. 14(일) ~ 20(토)


 


11월 14일 주일 오후, 캄보디아선교팀과 북경내적치유팀이 동시에 출발하게 되었다.


나는 작년에 캄보디아 선교를 4번을 다녀왔으나 금년엔 사정상 한 번도 못 가서


캄보디아 선교에 참여할 마음을 먹었었다.


그런데 2주일 전 주일에 예배를 마치고 우연히 사무국에 들렸는데


이계대 안수집사와 오동철 장로가 북경신학교 내적치유사역 얘기를 하고 있어서


누가 가는지 물어보니 이계대 안수집사와 김경애 사모님과


정정애 집사 임희정 집사 4명이 간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야~ 이번에는 내가 가야하는 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나도 거기 배우러 따라갈까?”했더니


“장로님이 오시기만 한다면 저희는 엄청 힘이 되죠.” 하였다.


나는 회사 일정이 있으니 함께 출발해서 수요일쯤 돌아오겠다. 고 말했다.


14일 주일 오후 1시 반에 출발하여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는 과정 중에서


일행들이 북경에서 금요일에 성령 수양회가 있으니


기왕 발걸음 하신 길에 함께 성령수양회까지 마치고 오면 좋겠다고 권면했다.


그래서 회사 업무를 다른 임원에게 부탁하고 공항에 배웅 나온 여행사 사장에게


귀국 비행기 표를 토요일로 수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14일 밤 북경에 도착해서 15일 아침의 개회 예배 설교 말씀으로


씨 뿌리는 비유를 준비하는데 내 마음속에 뜨거운 감동이 밀려들었다.


테라피와 다른 해외 선교사역에서도 느낀 바 있지만,


‘아~ 하나님께서 나를 이런데 쓰시려고 그랬나보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가 신명기 설교로 총 정리하여 재교육하여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듯이


신앙생활 40여년의 광야훈련이, 가나안에 들어가 씨와 열매로 전파하도록


박승호 목사님을 만나게 하시어 재교육 시켜 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감동이 들었다.


 


학생들은, 게스트 하우스까지 합해 60평 쯤 되는 다섯 채의 아파트에서


한 학년에 약 20명씩 각 방에서 남녀가 나뉘어 기숙하며,


강의는 거실에서 의자를 놓고 한다고 했다.


우리는 선교사님과 통역요원을 포함한 10명이 3~4명씩 조를 나누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조심하여 4학년 아파트에 도착했다.


 


전 학년 학생들에게 준비해 간 가디간과 문구류를 나누어 주도록 전달했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상처 많은 아이들이라는데


열정과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 눈빛이 더욱 빛났다.


 


‘마음 밭을 옥토로 기경해야 복 받는 삶이 된다.’ 는 말씀을 나누고,


칭찬 팔찌를 나누어 주면서 하루에 3 사람에게 3 가지 장점을 찾아 칭찬하고,


3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3 사람에게 희망이나, 재능이나, 물질 등으로 도와주어,


아름다운 세상,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요지의 설명을 하였다.


 


사모님께서 여러분들은 각기 다른 천 개의 달걀과 같다고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60억 인구가 틀린 게 아니고 다르다는 내적 치유에 관한 총괄 설명해 주셨다.


이어 소그룹 4개 조로 나누어 기질테스트와 내적치유를 시작했다.


나는 사모님 강의는 처음 들었는데, 어쩌면 저렇게 마음과 양육패턴에 대하여


자기 경험에 비추어 학생들의 마음의 상처를 만져주시는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저렇게 좋은 강의를 이제야 들려주시는 지 궁금하고, 아쉬웠으며,


대학 교수가 되셨으면 명교수가 되셨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4학년 학생 중에는 전기에 졸업한 후 세상에 나갔다가 중국사회에서 인정하는


신학교가 아니라 공식적인 사역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좌절하고 이단에 빠졌다가


선교사님께서 다시 불러 재수강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정말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수업 중에 자기들의 아픔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질문하며


사모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나도 감동하였다.


4학년 학생들은 40대 초반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였다.


 


어떤 여 학생은 이혼하고 아이 둘을 키웠었는데, 아이 둘마저 죽었는데,


아픈 상처가 되살아나 통곡하며 몸부림쳤다.


중보 기도팀에서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며 작은 물질로 위로했다.


 


또 어떤 학생은 남편한테 늘 폭행을 당하다가 이혼하고 조그만 가게를 했는데


그 가게마저 시댁에서 빼앗아가 버려 절망 중에 이곳에 왔다고 한다.


또 어떤 남학생은 졸업하고 나가서 다른 교회에서 사역을 하였으나


인정받지 못하고 방황하다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그 아픔을 받아주고, 나누는 과정에서 그 사람들은 몸부림치고 통곡을 했다.


우리는 오직 함께 울어주고 사탄 차단기도와 회복기도로 위로해 줄 수밖에 없었다.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 나갈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학생들을 달래느라 마음 졸였다.


참으로 마음껏 울지도 못하는 그들을 보니 내 마음이 더욱 아팠다.


 


선교사님께서 내년 6월 4학년 졸업 수학여행을 걱정하시기에,


저희 회사가 있는 상해와 소주, 항주로 코스를 잡아


하나님의 비전을 붙잡고 꿈을 이룬 현장을 보여 주자고 제안을 했다.


그리고 그 비용을 제가 스폰서 하겠다고 했다.


선교사님은 너무 기뻐하시며, 정말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고 말씀하셨다.


아이들에게 굿 뉴스라며, 수학여행에 대하여 발표하자 탄성을 하며 기뻐했다.


 


이틀 동안 4학년을 마치고 수요일 3학년 내적치유 개회 예배를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사모님께서 화장실로 뛰어가 토하시며 고통스러워 하셨다.


급히 여 집사님보고 사모님을 모시고 게스트하우스로 모시고 가 쉬시게 하라고 했다.


 


오후 강의를 마치고 집에 왔을 때도 괴로워하시며, 힘들어 하셨다.


수요일 저녁 예배시간 이기에 급히 한국에 담임 목사님께 전화를 했다.


사모님이 아프시다는 말씀은 차마 드리지 못하고,


여기 방해 세력이 많아 어려움이 많으니 긴급 기도를 부탁드렸다.


사모님이 아프신걸 알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 생각하니 내 마음이 울컥했다.


 


목사님께서 빵빵하게 기도할 테니 염려 말고, 회개기도 먼저 시키고,


담대하게 능력사역을 하라고 하셨다.


조금 후 선교사님께서 이곳에도 한국 의사가 있는 병원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빨리 전화를 해보시라고 했다. 그러나 전화가 불통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나와 목사님이 먼저 병원에 가보자고 하니


운전기사가 그러지 말고 사모님을 모시고 함께 가자고 해서


여자 집사님들과 함께 중국병원으로 급히 이동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토하시며 힘들어 하셨다.


조선족이 있는 병원이었는데 8시에 문 닫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래서 좀 더 큰 왕징 병원으로 이동해 급히 접수를 했다.


내과의 여의사가 진찰을 하더니 쓸개가 나쁜 것 같으니 외과로 가라고 했다.


속이 아픈데 무슨 외과인가 싶었다.


외과의사가 진찰을 하더니 초음파 검사도 해야 하고, 피검사도 해야 하고,


소변 검사도 해야 한다고 했다.


사모님은 아파하시면서도 “검사를 그렇게 많이 하냐... 그냥 돌아가자.”


우리들에게 부담이 되시는지 그냥 돌아가자고 하셨다.


 


검사가 고통스러운 건 아니니까 받아보자고 말씀드렸고,


잠시 실랑이 끝에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렸다.


검사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에도 사모님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다행히 검사결과는 혈액에 염증이 좀 있으나 다른 부분은 괜찮다고 했다.


주사 네 병을 처방 받아 2층에 있는 입원실 침대에 누워 주사를 맞기 시작하셨다.


사모님이 덮고 계신 이불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 같고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선교사님이 북경 다른 교회 사모님께도 연락해 그 사모님도 오셔서 도와주셨다.


그 사모님 말씀은 요즘 북경 감기 증상이 토하고, 오한이 나는데 감기 같다고 말했다.


 


어언 밤 10시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선교사님께서 내일 사역도 있으니, 사모님은 자신들이 돌봐 드릴 테니


들어가라고 해서 우리 일행은 사모님을 병원에 두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나는 호텔로 다른 일행은 게스트하우스에 돌아 와 회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한 마음이 되게 하시려고 기도하게 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알아보니 주사를 맞는 과정에서도 속이 울렁거리고 토하셔서


다른 처방을 해서 그 주사를 다 맞고 4 시가 넘어서야 병원을 나왔다고 했다.


우리의 기도가 부족했다고 생각되어 마음이 아팠다.


하나님께서 날 왜 여기로 보내셨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내가 수요일 날 돌아갔다면 난 얼마나 힘들어하고 죄송하고, 자책했을까


하나님께서 예비하심이 신묘막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학년 수업 마지막 날 사모님께서 많이 회복 되시어


오후에 전체 정리하는 말씀을 사모님께서 하실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내일 있는 성령수양회는 학생들이 한 달에 한 번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한다.


평소 아파트에서는 바깥출입이 완전히 통제되어서


반장 한 사람만 필요한 생필품을 사러 바깥출입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사방이 막혀있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학생들의 기도는 뜨거워 ‘아멘’소리가 우리들보다 10배는 더 힘차고 컸으며,


비록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이 대단했다.


4학년 학생들은 현실적인 생각으로 몇 천 명, 몇 만 명의 영혼을 품겠다고 했는데,


3학년 학생들 중 어떤 학생들의 꿈은 오십만 명의 영혼을 품는 것이고,


또 어떤 학생들은 백만 명의 영혼을 품겠다고 했다.


1~2학년들은 얼마나 더 꿈이 클까? 궁금했다.


 


몇 달 전에 중국의 인구조사 때문에,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여학생 몇몇은 천진에 있는 공장에 임시로 취직을 하고,


남학생들은 다른 현장으로 나가 인구조사가 끝날 때까지 피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천진공장에 임시 취직해 있던 여학생 한 명이


함께 일하는 근로자 250명을 전도했다고 한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금요일 성령수양회의 우리들의 강의는 9시부터 배정되었으나


아이들은 아침 6시부터 기도와 찬양을 한다고 했다.


9시에 삼자교회인 중앙교회 입구에 도착해보니 찬양소리가 힘차게 퍼져 나왔으며


교회 안에서는 어떤 젊은 청년이 힘차고 열정적으로 찬양을 인도하고 있었다.


나는 어디서 초청 되 오신 전도사님이냐고 선교사님께 물었다.


선교사님께서는 전도사가 아니라 우리 학생이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 가져간 자켓으로 입고 찬양을 하는데, 열기로 온 교회가 뜨거웠다.


 


목사님 말씀 인도 후에 나의 인생 곡선과 비전강의가 시작되었다.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바라볼 때 지난 수업 중에 들었던 그들의 비전이 떠올랐다.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면서 “아~ 한 명이 백만 명씩이면 열 명이면 천만 명인데


이 팔십 명의 학생이 백만 명씩 품으면 팔천만 명 아닌가?“


“내가 천만 명을 2030년까지 희망과 재능과 물질로 꿈을 이루도록 돕겠다고 했는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열악한 학생들이 팔천만 명을 품겠다고 하니”


내가 너무 외소하고 부끄럽고 학생들을 보기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 뒤에 팔천만 명의 많은 사람들이 끝없이 구름지어 몰려오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들한테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그들의 꿈과 내 꿈과 하나님 나라의 꿈을 이루어 갈 저들을 보라!


내 자신이 부끄럽고, 자랑스럽고,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어 한참 엎드려 있었다.


내가 일어났을 땐 내 얼굴이 상기되고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그들과 눈을 맞출 수도 없었고 말을 이어가기도 힘들었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후로 나는 무슨 얘기를 전했는지 세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내 꿈을 수정하라는 얘기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저 열악한 환경에서도 팔천만 명을 품는데, 너의 꿈도 수정하라!


업그레이드하라! 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듯 했다.


 


내적 치유 소감문과 수강 태도에 대한 시상을 했다.


3학년과 4학년 각각 금. 은. 동을 선정하여 상품을 주고,


전체학생들에게 성경책 한 권씩을 참가상으로 수여했다.


 


오후에는 사모님께서 마음과 성령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 능력사역, 치유사역을 하였다.


아픈 사람들을 나오라고 하고 두 명이 짝을 지어 마주보게 하여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상대 아픈 곳에 대해 기도를 해주도록 했다.


다 나았느냐 서로 물어 보라고 했고, 조금 나았다고 하면 몇 %쯤 나았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그대로라고 하면 다시 또 기도를 하라고 했다.


 


우리 사역자들은 옆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사역이 끝난 후 자리로 돌아가서 각기 체험한 것을 발표하게 했다. 많은 학생들이 아픈 게 나았다고 간증했다.


조금 나았다고 한사람도 있고,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서


감사하다고 얘기하는 학생도 있었다.


 


전 학년의 기도시간에 이어, 찬양과 축복기도 시간이었다.


선교사님께서 나에게 학생들을 위한 축복기도를 부탁했다.


학생들을 한 줄로 앉게 해서 내 앞으로 한명씩 나와 무릎 굻고 기도 받게 했다.


나는 사양했으나 선교사님의 강권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축복기도를 했다.


80명에게 축복 기도를 해 줬는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어느 순간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갔으며, 전체 일정을 마무리하는 말씀과 기도로 하루일정을 마쳤다.


 


토요일 아침 7시 30분 게스트 하우스를 출발했다.


천안문 광장을 돌아 시내 몇 군데를 자동차로 투어하고, 공항으로 직행했다.


나는 중간에 비행기 티켓을 별도 구매 하였기에 일행과 같이 돌아올 수 없었으나,


한국 여행사에 연락해서 일정 조정이 잘 이루어져 함께 올 수 있어 감사했다.


 


한국에 도착하니 12인승 벤으로 함께 모든 짐을 싣고 교회로 올 수 있어 감사했다.


땅거미가 어둑어둑 깔릴 무렵, 교회에 도착하니 샘파팀들이 마당에 있었고


마침 담임목사님도 계셔서 귀국인사까지 곁들일 수 있어서 감사했다.


 


북경 내적치유 사역 일주일간은 우리 계획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고, 상황을 만들어 주시고 인도해주셨음을 고백하며,


감사드렸다.


이 부족한 종들을 하나님 나라의 도구로 사용해 주심을 감사드린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기도제목들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1. 신학교 허가가 나오기 전에 학생들이 졸업을 하고 세상에 나가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2. 신학교 허가가 빨리 나올 수 있게 하시어, 중국 사회가 인정하는 자격을 얻어,


그들의 꿈을 제대로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합니다.


 


3. 우리가 합심으로 기도하게 하시고, 그들을 인도해 줘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다 함께 말씀대로 실천하여, 아름다운 세상,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가는


도구로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