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꽂들은 나름대로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하고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좋았다`고 하셨던 사람은 서로에게 더이상의감동을 기대하지 않은채,오히려 그게 당연한양 살고 있는 현실이다.
얼마전, 하나님이 기획하신 그 사람은 과연 어느 경지에 이르러야 될까!를
묵상하는데 `집중` 이란 단에에 내 묵상이 멈추었다.
`그래. 목사님도 늘 집중하면 성령님을 감지할 수 있다 하셨지?
그렇다! 그리스도 밖의 사람들도 집중하면 부분적이지만 하나님의 경지에 이르는것을 볼 수 있다.
과학자들이 집중한 결과 하나님만의 영역이었던 생명의 영역까지 업적을 이루었다.
예술가들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듯한,깊은 영혼을 울리는 감동을 선물해 주지 않는가?`
그렇다면 사람이 집중한다는 뜻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지를 물었고 내안의 묵상이 그 상태를 번개처럼 나타내주었다.
삼위(성부,성자,성령)가 통합될때, 삼위일체이신 진정한 하나님을 만나듯이-
과거,현재,미래의 시제가 하나님의 시간대에서는 언제나 현재이듯-
지,정,의 기능이 하나로 통합될때,비로서 전인적으로 집중된 상태일거라고-
곧,이웃을 사랑해야한다는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없거나 약한채 의지적으로 결단하는것은 시행착오와 시간낭비의 연속이었다.그래서 우리는 아는대로,배운대로,옳은대로 살기보다는 느낌대로, 감정대로 살아지는것을 경험했다.
머리로 이해한것이 정서로 느껴지고 그것을 행동화 한다면 자기를 소외시키지 않고,자기갈등과 싸우는 방황없는,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란
전인적인 상태임이 아닐까 와닿았다.
머리로는 할것 같은데! 지적으로는 다 이해하는데! 이때 우리의 마음이 따라주기만 한다면 결단하고 행동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을까?
내마음을 막고 있는 거짖된 문장들을 찾아 인지오류를 찾고 합리적,성경적 문장으로 바꿔주기를 계속하면서 감정이 점차 변화되는 경이를 경험하고있다.
그리고 지금은 지,정,의가 합일되는 경지에 대한 비젼을 보고있다.
우리의 목자가 앞서 가시기에, 성령께서 나를 보게하시고, 성령의 음성을 듣게하시기에,마음을 열게 하시기에 난 세권째의 인지치유 노트를 오늘도 메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