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파 간증문
2017.05.27 임기환 안수집사
제가 치유간증을 한지 10년만에 다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서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고 구전으로 전하는 진천의 한 시골 마을에서 3남4녀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농사일에 늘 바쁘고 먹고 사는 일에 온 전력을 다하는 많은 시골의 부모님처럼 저의 부모님도 다르지 않아서
충분히 사랑받고 교감하며 살아가는 것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지병으로 늘 몸이 불편하셨던 아버지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존재였습니다. 급기야 제 나이 스물에 돌아가셨고 모든 생활을 어머니가 홀로 감당하셨습니다.
부모님보다 더 막강한 할머니로 인한 어머니의 시집살이는 눈물없이 볼 수 없을 정도였지만 유약한 아버지는
힘이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전통적인 유교의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할머니 슬하에서 여자형제와의 심한 차별대우를
받으며 뭔가 화합되지 못하고 부조화속에 성장 한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왜곡된 사랑을 받으며 가족 개개인과 소통하지 못하고 독불장군으로 저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이러한 성장 배경의 문제는 전혀 문제가 아닌 것처럼 살았지만 되짚어보니 온전한 가정을 꾸릴 수 없었던 제 의식의
기초가 그것에 기인하고 영향을 미친 것을 알게 됐습니다. 결혼 후 아내와 하나되지 못하고 철저히 나홀로의 세계를
살면서도 단 한 번도 인지하지 못했고 잘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내 생각의 중심은 일과 가정밖의
사람들, 그리고 향락뿐이었습니다. 많은 인맥을 자랑하고 열심히 일에 매진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부족함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자부했습니다. 업무가 일찍 끝나건 늦게 끝나건 술자리는 필수 코스였고 귀가시간은 늘 새벽이었습니다.
광화문과 강남일대의 술집들을 전전하며 울고 웃으며 철저히 세상의 사람으로 삶을 채웠습니다. 가정은 방해받지
않고 쉬고 자고가는 숙소에 불과했고 가족과 놀러 갈라치면 맘에 맞는 친구 가족들을 붙여 술판을 벌였습니다.
따뜻하고 평온하며 행복한 가정에 목마른 아내는 저의 비뚫어진 생각과 가치의 중심을 바꾸기를 요구하고 문제투성이의
가정형태를 제대로 봐주기를 갈망하며 기다렸지만 돈벌어다주는 가장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데 왠 잔소리야 하며
무시하기를 반복했습니다. 변화될 기미가 없는 생활이 지속됨에 따라 부부간의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점점 없던 주사까지
늘면서 아이들과 아내로부터 외면당하고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에게 깊은 상처로 아로새긴 93년부터2006년까지
13년간을 근근히 버티며 결국은 벼랑끝에 서 있었습니다. 남편과 아버지로서 최소한의 도리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해 2006년 오랜시간 혹사시킨 저의 만신창이 된 육신에 생긴 암덩이들을 발견했고 대장과 림프절을 거쳐 간까지
전이되는 말기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도 믿음이 없었던 제가 잘못된 내 삶을 반성하거나 가족에 대한 미안함보다
수술후통증 및 암발병에 대한 분노와 세상에 대한 미련의 잔재가 내면에 남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수술후 요양병원에서
요양하며 총8회중 6회차의 항암치료를 받던 중 암이 복막과 폐에 전이되며 병원과 의사는 저에게 6개월 시한부를 선고하고
저를 놔 버렸습니다. 솔직히 젊으니 충분히 회복할 거란 자신이 있었는데 죽음이 코앞이라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파노라마처럼 과거에서부터 제가 사라진 미래의 모습까지 그려지며 새로운 생의 확고한 의지로 불타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차려보니 제 자신도 아내와 아이들도 그렇게 불쌍할 수 없었습니다. 잘못되고 오류투성이의 저의 생각과 삶의 태도를
버리고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었고 절실함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저의 잘못된 40년 반생애와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붙잡고 매달릴 곳은 오직 그 분 뿐이었습니다. 20년동안 저를 구원코자
기도해 주신 형수님과 아내를 뿌리치고 세상의 달콤함에 젖어 이기심과 향략에 빠져 주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이런 저를
주님은 저에게 감당할 만큼의 고통을 주며 악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하는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시겠죠?
요양병원에서 퇴원하여 하나님께 온전히 첫것을 드리기 위해 새벽기도를 다니며 회개하며 간구했고 항암으로 인하여 굳어진
근육과 뼈를 풀어주는 운동을 매일 조금씩 시작했고, 아내는 항암음식에 대한 공부를 하며 항암 음식으로 식이요법을
시작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현실화 될까 염려하며 조금씩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딸들과 대화하며 반드시
살아 좋은 아버지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 한번 제대로 쏟지 못한 미안함에 게다가 병들어 심적
고통까지 안겨준 것에 가슴이 쓰라렸습니다. 시한부 선고에 당황하고 슬퍼하던 친구들도 가끔 전화 통화만 할 뿐 병들어
보니 그리도 자랑하던 인맥의 흔적은 사라져 버리고 남은 건 그토록 고통주며 힘들게 했던 아내와 자녀들 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해피엔딩의 소망없이 저를 버리고 도망 안가고 지켜준 아내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앞에
담대케 하시고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게 하신 은혜로 복수가 눈에 띄게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일찍
만났더라면 아내도 저도 가슴을 쥐어짜는 슬픔에 직면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없이 우리의
상황과 조건에 감사할 뿐이었고 간절한 저의부부의 기도에 가정에 보이지 않던 문제 하나하나를 손보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시한부 선고후 6개월이 지나고 생명샘교회에서 샘파 수료를 거의 앞둔 2007년 7월 드디어 복막과 폐에 전이됐던 암세포가
티 없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만을 믿던 제 안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가족과 하나 되어 이룬 기적이었음을 믿습니다. 비로소 저는 새 생명을
부여받고 새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남편과 아버지로 인해 받은 상처, 미움, 원망을 떨궈내기 위해 저의 잘못을 계속 찾아냈고
용서받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저의 기도에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벌써 치유된 지 만 10년이 지났습니다. 지파장으로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기를 소망하며 하루하루를 감사함으로 살고 있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적유산을 확실히 전하고 죽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말씀공부와 구속사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지럽고 혼탁하고 오염된 이 세상에서 든든히 자녀들이 자라나고 자리매김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사랑으로 보살필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주님은 제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저의 내면과 태도, 행동의 문제들을
직면케 하고 죽음에서 건져내심을 통해 하나하나 해결해 주셨습니다.
2010년에는 큰딸 은애와 15살, 둘째 은서와 10살 차이인 늦둥이 아들 은후를 셋째로 주셔서 우리가정을 더욱 향기롭게 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자기부인을 통해 나 자신을 죽임으로 세상속에서 절대 맛보지 못한 참평안과 은혜를 베풀어 주신 그 분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