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17년5월13일 토요샘파 간증(조명자 선교사)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7.05.18 조회수628
간 증 문
조 명 자 선교사
안녕하세요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신 목사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시간 저는 환경이 가져오는 영적전쟁이라는 내용으로 제목은 '마지막 병상에서의 행복했던 3개월‘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나누고자합니다.

저를 보는 분마다 간증이 많아 보인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제가 신앙의 1세대로서, 내 광야, 남의 광야까지 안고 가느라 그러했는가 본다

이 맘 때쯤이면 어버이날과 남편 기일도 되어 두 딸과 함께 산소에 다녀온다.
유난히 아빠를 많이 닮아 마지막 병상에서의 3개월을 그리워하는 둘째는 아빠와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지금도 무척이나 애쓴다.

결혼 후 저는 불교 집안의 시댁과 남편이 교회에 나가는데 동의하지 않아 평생 교회에 나가던 것을 자연스럽게 그만두었다.
결혼 7년째 되던 해, 병원으로부터 남편이 대장암과 간경화가 중증이라 가망이 없다는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염려와 좌절, 혼란스러워하는 저에게 하나님께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라는 말씀을 주시어, 교회를
 다시 찾게 되었다. 그간의 불신앙의 죄, 특히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불교에도 구원이 있을꺼라며, 불당에서 절했던 모든 
부분들이 필림처럼 생각나게 하시어서, 모든 것을 회개하게 하셨다.
이후 주신 말씀은(이사야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끊임없는 기도속에 남편에게는 점진적인 치유와 제게는 주님을 만나는 기적을 주시었다.
완치가 되니 불교 집안인 저의 남편과 시어머니는 부처님 운운하고, 세상 문화를 쫓으며, 교회에 대한 불신과 핍박을 쉬지 않으셨다.
제가 남편의 구원을 위해 새벽기도를 쉬지 않자, 시어머니는 아침 예불의 강도를 더 하셨고, 제사 상에 절하지 않는다하여 시댁으로부터
 많은 수모를 받기도 했지만 말씀으로 광야에서의 하나님을 만나는 기적을 맛보게도 하셨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불신의 친정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였을 때, 사둔 집까지도 구원받는 역사가 있어 지금은 오빠가 장로가 되고, 
믿음 없던 막내 올케는 회심하여 목사님이 되셨다.
신우회도 만들게 되었고, 교회에서의 사역도 이어졌다.
하나님의 남편에 대한 짝사랑으로 남편은 사업 실패 등. 많은 어려움을 겪게되어도 돌아 오지 않았다.
그 후 18년이 되던 해 남편은 다시 대장암 4기로 1년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되었다.
하나님의 기다리심과 오래 참으심, 당신이 택한 백성을 놓지 않으시는 그 분의 사랑으로 남편을 불쌍히 여겨시어 생명의 시간을 4년 더
 연장해 주시었다. 사실 소천하기 4개월 전부터는 심한 통증과 장의 유착현상으로 인해 식음을 전폐해서 저희 4식구는 1인 병동에서 
3개월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시어머님을 못 오시게 하고, 남편을 전도하였다. 마음에 확신이 없어하기에 목사님의 권유대로 7일 금식을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남편의 몸을 깨끗이 씻는 환상을 보여주시기도 하셨다. 그 후. 병상에서 세례식을 목사님께서 인도하실 때는
 남편이 무릎꿇고 눈물로 회심하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고, 하나님의 임재가 병실 안에 가득 채워지는 경험도 하게 하셨다.
이후 남편은 자신의 동생들을 목사님께 부탁드리며 천국으로 갔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작은 딸은 본인의 행복했던 순간을 이야기할 때, 병실에서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었던 마지막 3개월의 시간들 이라고 한다.
사실 저도 그렇다.
힘들었지만 온 식구가 한 마음으로 보듬어주고, 손잡고, 기도해주며 지냈던 그 시간들은 다시오지 않는 아름다운 기억들이었던 것 같다.

함께 할 수 있고, 손잡을 수 있는 가족의 소중함이 더 했던 순간이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