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학교 간증문
박선
얼마 전 급작스럽게 아버지 학교에서 간증을 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한편으론 당황스러우면서도 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올랐다. 우리 아버지가 아버지학교를 수료한 후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을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반면 아버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 아버지에 대한 어렸을 적 기억은 용인의 아담한 아파트에서 작은방에 하루 종일 TV를 보고 있는 모습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그 때는 교회도 다니지 않으셨고 우리와 하는 대화도 적었고 기억나는 것이라곤 술에 취하신 모습과 어머니와 싸우는 모습 TV를 보는 모습 술에 취해 해장국을 먹는 모습밖에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4학년에 광주로 이사를 한 후 어머니의 제안으로 집 밑에 작은 충신제일 교회를 다니시긴 하셨지만 앉아있는 시간은 30분 가량 되었고 밖으로 나오시거나 전화통화를 하러 나오셨다. 그렇게 교회를 대충대충 다니셨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우리가 전에 살던 용인의 생명 샘 교회를 다녀보자고 하셨다. 아버지는 별 다른 반응 없이 알았다고만 하셨다. 어머니는 첫 예배를 드리시고는 그 교회를 계속 다니자고 하셨고 아버지는 거리가 너무 멀다고 불평을 자주 하시곤 했다.
이래저래 우리는 생명 샘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형과 나는 불평 없이 교회를 따라다녔다. 2년 후 어머니께서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교회 교육을 받을 것을 요구하셨다. 샘파라는 교육이었는데 아버지께서는 완강히 거부하셨고 계속 강요하면 교회를 다니지 않겠다고 하셨다. 뭐 싸우실 때마다 매일 하시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계속 한번만 해보라고 하셨고 아버지는 나는 가더라도 아무 말 없이 앉아만 있다가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교육 첫날 괜히 내가 긴장이 되었다. 교육을 마치고 나오신 아버지는 전과는 다른 진지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보 이거 재미있는데? 형과 나는 서로 어이없다는 듯이 서로를 쳐다 보았고 어머니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셨다. 아버지께서 교회를 다니시면서 처음으로 입에서 재미있었다는 말이 나왔다. 그렇게 샘파를 하시면서 전과의 모습과는 좀 다른 아버지가 되었고 그렇게 아버지 학교를 하시게 되었다. 아버지 학교를 가실 때마다 달라지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정말 신기했다. 솔직히 다른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다정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정말 부러웠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그런 아버지로 변하는 것이었다. 일을 나가실 때마다 나의 머리에 손을 올리시고 아버지 학교에서 받은 자녀 기도문을 읽어주시고 출근 하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이 너무 좋았다. 아버지학교가 거의 끝나갈 무렵
아버지가 나에게 교회 끝나고 엄마 몰래 가야 할 곳이 있다고 말씀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AK프라자 옆에 있는 영풍 문고 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선물할 만년필을 고르셨다. 우리 어머니께서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하시던 말이 있는데 만년필을 가지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 아빠가
엄마가 가장 가지고 싶어하시던 만년필을 고르셨다.
만만치 않은 가격대였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정만 너무나도 좋았다. 우리 어머니에게 살면서 선물을 많이 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선물을 한다고 해도 꽃을 사준 기억밖에 나질 않았다. 나는 아버지께 왜 갑자기 만년필을 사는 거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이번에 아버지 학교에서 아내에게 선물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셨고 그래서 만년필을 선물할 마음이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또 놀랐다. 아버지께서 어머니가 만년필을 가지고 싶어 하시는 것을 알고 계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한번도 가지고 싶으신 것을 말한 적이 없는데 아버지께서는 무관심한 척 하면서도 다 알고 계셨다. 눈물이 나왔다. 아버지는 만년필을 사신 후 굉장히 들뜨신 얼굴로 차에 타셨다. 마치 결혼을 다시 하는 새신랑처럼 활기찬 표정이었다. 그렇게 엄마에게 만년필을 선물 하셨고 아버지학교를 졸업하셨다. 그 후에도 교회의 여러 프로그램을이수하셨고 샘파 섬김이도 오래하셨다. 지금은 어머니께서 너무 열심히 하신다고 걱정하실 정도로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신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교회를 잘나가신다. 그리고 주말마다 시간이 될 때마다 가족예배를 드리자고 하신다.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는 더 이상 어떠한 싸움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어떤 아버지보다 두 아들들에게 자상한 아버지가 되셨다. 어머니가 이해 못하시는 부분을 이해해 주시는 아버지가 되셨다. 남자 대 남자로써 마음껏 부탁할 수 있고 고민을 말할 수 있는 든든한 아버지로 변하셨다. 나는 지금 이런 아버지가 너무나도 든든하고 좋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께서 교회에서 기타를 가르치시고 계시는데 우리 아버지는 교회를 다니시면서 새로운 꿈도 가지셨다. CCM작곡가가 되겠다는 꿈이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음악을 전공하셨다는 것이 친구들에게 자랑거리가 되었고 집에서 열심히 컴퓨터 음악 프로그램을 공부 중이신 아버지를 볼 때마다 나도 내 꿈을 위하여 열심히 공부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나에게 가장 훌륭한 모델이다. 내가 살면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시다.
이렇게 우리 아버지는 변하셨다. 우리 집은 항상 행복모드이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나에게 이렇게 힘이 되고 따뜻한 존재였다는 것을 하루하루 새삼스럽게 느낀다. 아버지께
항상 하고 싶었지만 쑥스러워서 하지 못했던 말들이 너무나도 많다. 아빠는 언제나 나에게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아버지를 가장 존경합니다. 나는 책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보다 아버지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아버지를 완전히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셨습니다. 아빠 아빠가 내 곁에 있어서 너무나도 든든해요. 그리고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하고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스럽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아직도 계속 변하시는 중이시다.
나는 지금 이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무엇보다 어머니와의 관계가 많이 회복된 모습이다. 나는 아버지가 이렇게 많이 변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아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