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2019년 11월 22일 생활 간증문_김민영 집사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9.11.23 조회수90

서의숙 지파 최유정 셀 김민영집사

저는 초등학교 2학년때 오빠의 손에 이끌리어 처음으로 교회에 나갔었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2014년 암에 걸리고 나서였습니다. 그때도 오빠의 손에 이끌리어 우리 교회 철야예배에 나왔었고, 정말 많은 분들의 기도와 돌봄으로 육적, 영적으로도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만나 삶도 변화하고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저는 친정부모님과 이웃하여 살고 있는데, 저희 친정 아빠는 가족 중 유일하게 교회를 안 다니시는 분이셨습니다. 정말 오랜 시간 온 가족들이 기도하며 여러 권유의 손길이 있었고, 심지어 제가 아플 때 나오실 줄 알았지만, 아빠는 교회에 나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신 아빠께서 지난 주일 72세의 나이에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것은 여리고성 함락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정복 불가능해 보이는 성과 같았던 아빠가, 교회의 ‘교’자도 못 꺼내게 하셨던 그런 아빠가 교회에 나오시게 되고, 세례를 받으신 것은 여러 사람들이 합력해서 이뤄낸 선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을 창칼로 정복을 한 것이 아닌 것처럼, 아빠도 직접적인 ‘교회가자’ , ‘세례받자’ 라는 말로는 오히려 더 거세게 반발하셨고 우리는 번번히 패배하였습니다. 아빠의 구원문제 앞에 철저히 낮아졌던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죄를 점검하며 회개하며 기도하는 것 밖에 없었고, 있는 자리에서 열심을 내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 길고 긴 시간 중에 어떤 큰 사건이 아니라, 작은 하나 하나의 일들이 조금씩 조금씩 아빠의 맘을 녹아 내리게 한 것입니다.

늘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가족들, 아플때 손을 얹고 기도하여주고, 식사할 때 손을 꼭 모으고 기도하는 손자, 서로 돕고 나누는 교인들, 목사님과의 따뜻한 대화, 무엇보다도 어려워 보이는 길을 열어주시고 그 길을 걸어가는 목회자 아들과, 그 곁에서 애쓰며 돕는 며느리, 그 자녀들을 하나님이 키우시는 모습 등… 어른부터 아이까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며 아빠는 마음이 변화하셨고, 2년 전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 나오셔서 첫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광야를 마쳤을 때 맞닥뜨린 것이 어마어마한 적이 있는 가나안이었던 것처럼, 교회는 나오셨지만아빠에게는 무너지지 않은 높은 성벽이 여전히 있었습니다. 교회를 나갔으니 더 이상 다른 것을 바라지 말라셨고, 맘이 상하시는 일이 있으시면 교회에 나가시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곤 하셨습니다.

그런 아빠께서 교회 나오신 그 다음 해에 아버지학교를 하셨습니다. 아버지학교를 하신 것은 물론 많은 사람의 기도의 힘이었지만 결정적으로 마지막에 우리 집에서 가장 신앙심이 적은 저희 남편의 공로도 있었습니다. 어쩐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남편이 아빠께 ‘아버님! 같이 아버지학교 가시죠. 저도 갈게요’ 라고 식사자리에서 얘기했고, 기도 드리며 권면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던 우리는 모두 숨을 죽이고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묵묵히 식사를 하셨고, 진짜로 남편과 아빠는 아버지 학교를 같이 갔습니다. 아쉽지만 남편은 첫날만 나가고 그 다음은 나가지 않았지만, 감사하게도 아빠는 수료를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왜 남편이 시킨 사람도 없는데 그때 그런 말을 했는지 신기합니다.

그 다음은 세례였습니다. 아빠는 세례 얘기가 나올 때 마다 성을 내셨고, 자꾸 이런 식으로 뭐를 더 하라고 하면 교회도 안 나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빠에게도 직장을 그만두면 어련히 할 테니 그 전까지는 세례를 받으라고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 다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였습니다. 답이 안 나오고 상황이 꽉 막혔을 때는 그것뿐 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겠지 하며 기도하던 어느 날, 제가 해외 출장 중이었는데 남편의 카톡을 받았습니다. 창립기념일에 최고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제 마음에 남편의 손으로 직접 감사헌금을 드리게 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편에게 조용히 하나님의 일하심을 말하며, 팀원들과 다 나누라고, 대신 감사의 십일조는 드렸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고 문자를 보냈고, 잠시 망설이던 남편에게 톡이 왔습니다. ‘그게 하나님께 효도하는 거지? 오케이’

저는 그 톡을 캡춰해서 아빠께 보내드렸습니다. 평소에 문자를 잘 주고 받지 않는데 그날은 그렇게 하여야겠단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아빠께로부터 잘했다고. 그게 맞는 거라고 답이 왔습니다.
그리고 출장서 돌아왔는데 집에 아빠가 안 계셔서 물어보니 세례교육에 가셨다는 것입니다!! 시차와 업무로 인한 피로로 지쳤던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듯한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네가 나의 일을 할 때 내가 너의 일을 한다’는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몇 년 전 교회에서 1진 어른들께서 무대에서 찬양하며 율동을 하셨는데, 보는 모든 사람들이 웃고 즐거워했는데, 저는 그때 혼자 울었습니다. 우리 아빠도 저기에 계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고, 자주 혼자 외로이 방안에 계시던 아빠가 생각이 나서, 저런 기쁨 맛보지 못하고 가실 거 같아서, 모든 사람이 웃는 중에 저는 혼자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례를 받으신 아빠를 보니, 그때 품었던 그 소망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아빠를 향한 언약의 모습을 그때 보여주신 것이라 믿습니다. 꼭 율동이 아니더라도 아빠는 지금 즐겁게 교회 화단에 꽃을 심고 계십니다. 그것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아빠만의 방식으로 드리는 예배요, 하나님을 향한 율동이요, 그로 인한 즐거움이니까요.

잠깐 딴 생각하면 실족하고 그로 인한 좌절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주저앉지 않겠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을 주신다고 이미 약속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언약의 말씀도 노력 없이는 이뤄질 수 없고,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배 때 졸고 딴짓하는 남편이지만 어떻게든 함께 오고자 남편의 맘을 얻으려고 노력 합니다. 십자가를 꽂으며 ‘김민영 교회’를 선포한 직장이지만 매초단위로 살아나는 자아를 부인하고자 분이 올라올 때 마다 예수이름 부르며 대적하고 있습니다. 문제와 갈등 앞에서 재빨리 돌아가는 저의 머리를 이제는 중단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습니다. 저에게서는 답이 안 나오는 것임을 이제 알고 있습니다.
3400년 전에 있었던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기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도 일어나고 있고, 분명히 정복되어 하나님과 교통하는 풍요로운 삶이 바로 이곳, 저의 삶 속에서 이루어 질 것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