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15년 2월 04일 - 수요저녁(안응희 집사)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5.02.06 조회수1215

QT 고린도후서 2장


2진 안응희 안수집사


분쟁으로 늘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고린도교회,고린도전서를 통해 그들을 가르치고 권면했으나
그 정도가 심하여져 재차 고린도교회를 방문했음.
그러나 여전히 교회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가운데 에베소로 귀환한 바울. 이 상황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생각하며 염려하는 마음으로 다시 자기의 마음을 실어 디도편에 편지를 보냄.
바울은 교회에서 범죄한자에 대한 치리로 인하여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성도들이
그 형제가 실족하지 않도록 위로하고 죄를 용서하라고 권면한다.

1.관찰
1-4절
고린도교회에 가지 않은 이유 : 바울은 그들을 근심하게 하거나 근심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만일 바울이 그들을 근심케 했다면 그것은 바울 자신에게 또한 근심이 되기 때문이다.
5-11절
근친상간자에 대한 사도의 언급 : 바울은 근친상간자에 대해 말하며 이 범죄자에게 가해졌던 벌이
족하였음을 그들에게 말하고 있다(6). 그래서 바울은 그를 황급히 무리가운데 받아 들일 것을 간청하고 있다.
죄에 대해서는 미워해야 하나 사람개인에 대해서는 사랑하라는 바울의 권고이다.
12-17절
복음전파에 있어 바울의 수고와 성공 : 바울은 자신의 여행과 수고를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바울은 자신이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지 못했을 때 자신의 심령이 얼마나 편치 못했는지를 설명한다.

2.해석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잘못을 책망하면서도 자신이 다시 근심으로 그들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는 바울이 전에 고린도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들의 잘못에 대해 심하게 책망하여 서로가
상처를 입은 예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자신이 성도에게 나아갈 때 기쁨이 되어야지 오히려 근심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권면한다.
대신 눈물로 이 편지를 쓰며 자신이 그들을 향해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나타내고자 한다.
바울은 교회에서 잘못을 행하여 책망받을 것이 많은 사람에게 이미 벌받은 것이 족하다고 말하면서
성도들에게 저를 용서하고 위로하라고 권면한다.
이는 교회에서 범죄한 사람을 책망하는 이유가 교회의 거룩성을 유지하기 위함이지 그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임을 말하며 그 사람이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라고 한다.
오히려 이런 자들에게는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라는 것이다.
아울러 바울은 자신들로 하여금 항상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신들의 승리가 철저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나 자신은 그리스도의 향기임을 강하게 선포한다.

3.적용
어떻게 하든 교회공동체와 한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바울의 애틋한 마음을 본다.
파당, 우상숭배, 근친상간 등 있을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죄가 복합적으로 뒤 섞여 있는
고린도교회를 보는 바울도 사람인지라 고린도교회에 대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자기가 눈물로 편지를 쓰며 고린도교인들에게 그 범죄한 자를 받아주고 사랑하라고 권면한다.
범죄한 한 사람이 상처받고 잘못되면 그 여파는 연이어 계속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고 결국 공동체가 망가지게 되어,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근거한 방법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생명의 향기를 뿜어야지 사망의 향기를 뿜으면 않되기 때문이리라.
바울의 이러한 모습에 비추어 영적공동체를 대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며 주님앞에 부끄럽게 생각한다.
우리 교회안에서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여러 개 있다. Follower로 있든, Leader로 있든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는
주님이 명하신 곳이며 여기서 내가 가져야 할 최 우선적인 자세는 사랑의 마음으로 거기에 속해있는
공동체 구성원들을 품고 사랑하고 돌보고 육성하는 것인데 나는 바울만큼,
아니 바울같이 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간다. 물론 그럴싸한 이유는 있다.
아무리 사랑을 줘도 Feedback이 없고 마음 문을 열지 않아 시간이 가도 밑 빠진 독에 물 붙기 식의 일을
되풀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일은 정말 의미 없는 일 같이 느껴져 어쩔 수 없이 따라가다 보니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등… .결국 어느새 반응이 있는 몇몇에만 집중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소홀해지는(또는 방치하는) 나의 모습을 본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적어도 바울은 나 같이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생명도, 그 공동체도 살리기 위해 바울 고유의 열정으로
특단의 방법을 만들어 냈으리라 생각된다.
반응이 없고, 늦고, 답답하고 때로는 속을 긁어 놓더라도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하여,
사랑하고 품고 기대하며 나아가리라. 설령 나의 기대가 빗나가는 일이 있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리라.
뿌리가 깊어 아직 기별이 가지 않았나 보다 생각하며 말이다.


“주님 제 셀원들 상황과 형편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품고 사랑하며 기도하며 가겠습니다.
다같이 셀예배에서 기쁜 낯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을 속히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