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장 QT
5진 안수집사 하 길 동
말씀요약
1-14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하심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함
3-10 사흘길을 걸어 모리아 산으로 걸어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침
11-14 수양을 대신 번제로 드림
15-19 하나님이 다시 아브라함을 축복하심
15-16 하나님이 사자를 통해 아브라함이 순종한 것을 칭찬함
17-19 복의 근원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축복하심
20-24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족보
묵상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친 일은 순종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성경의 대표적인 사건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겨우 낳은 약속의 아들 이삭, 그런 아들을 하나님이 이제는 온전히 불태우는 번제로 바치라합니다. 너무나 순종한 나머지 정말로 칼을 들어올린 아브라함을 여호와의 사자가 다급하게 부르며 손대지 말라고 말리는 동화이야기 같은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아브라함이 참 믿음이 좋은 사람이구나’ 또는 ‘아브라함은 대단한 사람이구나’하며 전설적인 인물로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아버지와 함께 우상을 섬기던 사람이었고 자기의 신변보호를 위해 아내를 두 번이나 누이라고 속였던 사람이었고, 아들을 준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못기다리고 이스마엘을 낳은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와 비슷하거나 우리 보다 못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인 순종의 스토리는 우리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그런 아브라함의 순종이기에 더욱 그 의미를 새겨보게 합니다. ‘어떻게 순종했을까?’, ‘삼일간 모리아산을 향하여 가는 심정이 어떠했을까?’, ‘제단에 드릴 제물이 너다 라고 이삭에게 말하는 마음이 어떠했을까?, ‘이삭의 손과 발을 쉽게 결박할 수 있었을까?’ 아브라함 자리에 나를 집어넣고 생각해보면 한 가지 순종하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더 나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이삭의 태도입니다. 새벽길에 아버지를 따라 나선 이삭, 양도 없이 제단을 쌓는 길을 삼일동안 걸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브라함이 손발을 묶을 때 성경엔 이삭의 행동에 대한 기록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할 때도 이삭은 제단 나무위에 올려져 있었습니다.
이게 순종인가 봅니다. 우리의 생각과 달라도 요구하시면 그냥 드려야하는 것이 순종인가 봅니다. 그 분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왜라는 질문도 없었기에 더욱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나의 결단
주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때라도 주님의 일이라면 절대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조금 아는 것으로 따지지 않고 모든 일에 묵묵히 순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