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20100414수요예배-정현숙집사QT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0.04.15 조회수3453


사무엘상 20장 Q.T


235셀 정현숙 집사




제 목 : 요나단이 다윗을 돕다




본문요약 : 라마나욧에서 도망한 다윗이 목숨의 위태로움을 요나단에게 호소하게 되며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의 의도를 알아보게 된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하게 됨을 알게 된 요나단은 다윗의 도피를 도와주고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 하나님이 영영히 함께 하실 것을 맹세하며 이별을 맞게 된다.




단락 나누기



1~23 :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맹세


 16절 말씀에서 사울 왕가의 후계자인 요나단이 왕권의 승계를 포기하고 오히려 다윗 왕가에 대하여 충성과 헌신을 서약한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집에 대해서는 계속 인자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한다.



24~34 : 사울의 의도를 알아보는 요나단


 30절에서 사울은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자기 아들이 자기를 거스르고 이새의 아들 다윗을 선택하였다고 꾸짖고 있다. 요나단이 사울 왕가의 후계자로서의 특권을 포기함으로써 사실상 사울 왕조가 끊기게 된 것을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35~42 : 다윗과 요나단의 이별


 요나단은 42절에서 평안히 가라고 이별을 하고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고 확신하고 다짐을 한다. 




소감 및 적용



흔히들 다윗과 요나단은 목숨을 나누는 친한 친구라고들 한다. 나 역시 요나단과 같은 친구가 되길 원하고 또한 그런 친구가 있길 기대해 왔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던 중 요나단의  사랑과 희생이 새롭게 다가왔다. 요나단은 사울 왕가의 후손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왕이 될 몸이었다. 그러나 그런 자리를 다윗으로 인해 위협을 받게 되는 입장이다. 어찌 보면 요나단 스스로가 나서서 다윗을 없애려 할 수도 있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요나단은 신앙의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세우실 왕조가 자기 아버지 사울이 아닌 다윗임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을 향해 깨어있었던 것이다. 인간적인 계산이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그 의도에 철저히 순종할 수 있는 신앙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것이 비록 자기 부모를 버리고, 자기 가족을 배반하는 입장에 서는 일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기에 따를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한사람의 깨어있음이 헌신을 낳게 되고 그 헌신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기초가 된 것임을 깨달았다.


나를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그래서 그 뜻에 순종하겠노라고 하면서 내 시선은 세상을 향해, 다른 사람의 판단에 꽂혀 있었다. 이렇게 하면 덕이 안 되니까,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이 불편하니까 등등. 하나님 보다는 사람 시선에 연연하느라 정작 돌아봐야할 하나님의 뜻은 쉽게 뒤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우리 시댁은 믿지 않는 가정이다. 제사는 결혼 전 남편이 선포를 해놓은 상태라 우리가 제사 지내지 않는 건 자연스레 받아들여 주신다. 그런데 주일이 겹친 명절이 은근히 걸린다. 결혼 초기엔 주일이 겹치면 이웃동네에 있는 교회엘 꼬박꼬박 출석을 했다. 다들 그러려니 했었고, 당연하게 받아 들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바쁘게 명절 준비를 하다 보니 예배시간을 놓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시댁에 내려가면 주일성수를 하지 않게 되었다. 다들 바쁜데 나 혼자 예배드리러 간다고 쏙 빠져나오는 것이 얌체 같기도 해서 한번 두 번 포기한 것이 이젠 주일날 예배드리고 간다고 하기가 더 민망할 지경이 되 버렸다. 처음부터 내가 하나님을 향해 깨어있었다면, 처음부터 내가 좀 더 성령에 민감한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주일이면 우린 아이들과 당연히 예배를 드리러 갔을 것이다. 아마 자연스레 어머니도 한번쯤 따라 나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혼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아가씨 가족도 합세해서 함께 교회 나가는 가슴 벅찬 풍경이 만들어 지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처음 한 두 번은 가시방석이었을 수도 있고, 눈치도 보였겠지만 지금 우리가 제사 안 지내는 게 자연스러운 것 처럼 주일이면 하던 일제치고 교회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텐데... 여러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요나단처럼 하나님의 뜻을 택하는 게 단창이 던져져서 목숨을 위협할 만큼 긴박한 경우도 아닌데 난 적당히 타협을 했다. 그땐 몰랐다. 적당한 타협이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들어 버릴 줄을... 지금 다시 주일 날 교회에 간다하면 왠 새삼스러운 짓? 이냐는 듯한 시선이 박힐 수는 있지만 더 늦기 전에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시부모님께도 복음을 전할 기회가 더 생기지 않을까. 성령은 사인을 보내는데 내가 머뭇거리면 지금처럼 세월만 흘려보내고 말 것 같다. 지금까지 허비해 버린 시간으로도 족하다. 매순간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분별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는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도 있다. 지금까지의 나처럼. 난 잘한다고 열심히 달리고 있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하나님의 의도와는 너무나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을 때가 참 많이도 있었다.  사울의 입장에서 보면 다윗이 자기 왕조의 걸림돌이니 제거하려는 게 당연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사울이 하나님 앞에 깨어있었다면, 사울이 성령에 감동된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쓰임 받다 버려지는 비참한 최후는 아니지 않았을까? 사울역시 큰 잠재력을 지닌 사람이었건만 부끄러운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건 하나님 없이 열심히 달린 탓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 5월이면 한차례 시부모님을 찾아뵈어야 한다. 주일을 지내고 가지 못할 상황이면 그곳에서 반드시 예배를 참석하겠노라고 결단을 해본다. 아이들이 부모 때문에 함께 주일 성수를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결단의 기도


하나님 매순간 성령의 세밀한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바로 순종할 수 있는 깨어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혹 희생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요나단의 신앙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