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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1월11일수요오후백일순권사RTC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2.01.12 조회수1590


열왕기상 17장 QT


2진 백일순셀 백일순 권사


1.내용요약


(1-7) 영적 암흑기인 아합 시대에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어 말씀을 전하게 하심. 그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값으로 기근을 당할 것이라고 선포함.


(8-16)기근을 피해 사르밧으로 가 거기에서 거함. 그곳에서 도리어 한 이방 여인이 하나님께 순종 한 결과 놀라운 축복을 받음.


(17-24)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린 엘리야.



2.소감 및 결단



열왕기상 17장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닥칠 수 있는 거의 모든 한계를 다 보여 주고 있다. 우로가 내리지 않음은 환경의 한계가 있음을 증거 하고 먹을 것 ,마실 것이 자유롭지 못한 것은 물질의 한계를 보여 주며 17절에 나오는 아들의 죽음은 죽음의 한계와 상실의 한계라는 극한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남편도 없는 과부에게 아들의 죽음은 가장 극한 스트레스를 가져오는 한계일 것이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엄청난 고난을 허락 하실까? 순종하며 사는데도 말이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훈련을 좋아 하실까? 이것은 그 동안 내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딜레마였다. 수많은 질곡과 애환을 겪으면서 꾸역꾸역 여기까지 왔는데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할 때 또 다른 훈련이 어김없이 준비되어 하나님과 독대하며 씨름해 온 세월들이 나를 키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음을 이제는 감사하며 고백한다.



98년도에 처음 우리 생명샘교회에 와서 들은 목사님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시원한 청량음료 같았고 나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강한 메시지를 들으면서 삶의 해답들의 찾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산다는 것은 황홀한 것이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이 나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산다는 것이 황홀할까?’ 나는 힘든데......


정말 하나님 잘 믿고 뜻대로 나름 순종하며 산다고 사는데 풀리지 않는 환경, 관계의 버성김 등 그릿 시내처럼 메마른 시내로 인해 야곱처럼 씨름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드디어 생사를 넘나드는 죽음 앞에 직면케하셨다.


‘하나님 정말 왜 이러십니까?‘너무 하십니다’ 절망하며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던 아픔을 통해서 그 동안 내가 의미를 두며 붙잡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놓게 하셨다.


내 안에 있는 우상들을 하나씩 내려놓게 하시는 작업을 통해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 하나님께서 좌정할 자리가 비좁음을 알게 하셨다. 엘리야처럼 숨어서 하나님과 독대하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하나씩 막힌 것들을 풀어주셨다. 시내가 마르는 것이 하나님이 나를 응답하시는 과정 속에 나를 몰아 넣으셨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말 할 수 있다. 당당하게!‘산다는 것은 참 황홀합니다.’환경보다는 내 안에 하나님으로 부요하니 더욱 황홀합니다.


이렇게 훈련과목을 혹독하게 치루게 하심은 영적인 그릇을 넓히고 생명의 부양자로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요 방법이다.



더욱 감사한 것은 신년 초 기도제목에 송 집사가 버성겨진 관계회복을 써서 올려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하나님께 메달리자고 결단했는데 하나님은 너무도 빨리 일주일 만에 응답해주셨다. 그 동안 불편하게 지내온 동서네 가족이 안부전화도 하고 선물도 보내왔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어서 어리둥절하며 서로가 얼굴을 바라보며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뻐했다. 역시 하나님은 이해가 되지 않아도 끝까지 기도하게 하시고 품게 하시더니 그 마음을 움직이시고 동서네도 신앙생활을 예쁘게 하고 있어서 감사하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때로 부당한 비난과 불평 앞에 설 때가 많다. 사르밧 여인은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의 책임과 잘못을 엘리야에게 돌리고 있다. 아이의 죽음이 엘리야의 책임이라니 너무 황당한 일이다. 아이의 죽음은 엘리야에게도 아마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엘리야는 변명이나 피해가기 보다는 자기의 문제로 여기고 끌어안고 그 한계 너머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여인에게 대꾸하지 않고 죽은 시체를 품에 안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 죽은 아이를 침상에 누이고 하나님 앞에 독대하게 된다. 사람을 향해 내 심정을 토해 놓지 않고 사람들을 향하여 내 마음 내 감정을 말하지 않았다. 단지 그 한계를 쥐고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 그 한계 너머에 계신 초월자 되시는 하나님 그분을 향하여 엎드려 손을 들고 있다.


우리도 문제가 생길 때 이것이 나의 문제라고 끌어안을 수 있는 하나님의 심장을 가져한다.


어떤 질문이나 사심 없이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엘리야나 엘리야를 만난 가난한 사르밧과부가 생활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사심 없이 내주며 순종하는 모습을 보며 순종이 참으로 귀함을 다짐해 본다


여호수아프로젝트가 사실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사심 없이 합심,침묵,순종하며 나아갈 때 주께서 분명 사르밧 과부가 경험한 통의 밀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축복이 우리 교회 안에 넘쳐날 것을 확신한다.


시대적으로 다들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엘리야를 만난 여인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나의 행동과 관심이 필요할 때다. 가난한 영혼들을 잘 살펴서 손과 발이 가는 수고를 베풀며 살아야 겠다.



기도: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까마귀를 들어서도 우리의 의식주를 책임져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는 이생의 염려로 인해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의 신실하심을 바라보며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그리하여 하나님의 목적대로 쓰임 받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