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C; 마음을 지켜 살리는 사람이 되자. (수1:6-9)
06.08.04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개역판)
1. 설교 주요 내용 (제목: 마음 지키기 전쟁)
현실보다 지각에 반응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현실을 어떤 관점에서 지각하느냐가 중요하다. 약속을 붙잡는 사고의 reframe이 필요하다. 자꾸 비뚫어져 가려는 마음의 구조를 바로잡아 말씀을 통해 마음을 지키고 약속을 통해 입술을 지켜야 한다. 다른 것에 취하지 말고 말씀을 중심으로 살리는 삶을 살아가도록 행동해나가야 한다.
2. 내게 주시는 말씀
죄의 습성과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마음을 지키고, 말씀을 마음에 붙들어 매고 지켜 행하며, 나와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삶을 살자. 내 부모를 공경하지 않은 죄, 부모를 가르치려한 어리석음 다 회개해야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육신의 부모를 공경한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 내 삶이 말씀을 발의 등불삼아 살아가고 있는가? 주님과 동행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1) new thought; 나의 마음을 지켜나갈 때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릴 수 있다.
2) sins; 부모를 공경하지 않은 죄, 부모에게 선생이 되려한 어리석음
3) promise; “마음을 지키라 생명이 이에서 난다”
4) example; 부모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한 가지로 부모를 공경한 예수님을 닮자.
5) command; 말씀을 통해 판단하고 주를 기쁘시게 할 행동을 하라.
3. 소감
방학 중의 방학인 이번 주는 여유 있게 보낸 한 주였다. 월요일에 시골 부모님을 방문하려다 부모님의 사정으로 뒤로 미루고 며칠간은 여유롭게 보내며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마음을 지키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목요일인 어제 부모님을 뵈러 내려가서 저녁 식사를 함께 맛있게 하고, 다슬기를 잡으며 역시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은 저녁에 전화기 얘기를 하면서 깨지고 말았다. 전화기 얘기가 나오자마자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걸 때 받을 수 없는 상황, 가령 수업 시간이면 수업중이라고 말하고 끊든가 해야지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으면 되느냐고 말씀하신다.
언젠가 샘파 섬기미를 할 때였다. 조카 결혼식이 있어서 아내 혼자 결혼식장에 다녀왔었다. 도착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도착했다는 연락이 없자 집으로 전화를 하셨는데 통화가 되지 않고, 며느리에게 전화했지만 통화할 수 없어서 내게 전화를 하셨다. 소그룹 모임 중 전화 온 것을 확인하고는 열었다 그냥 닫고 다시 전화할 것 같아서 아예 꺼버렸던 적이 있었다.
그보다 얼마쯤 전에도 샘파 소그룹 시간에 사촌 형이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소그룹 모임이 시작되려고 방으로 들어가던 중이어서 전화기에 살며시 ‘형님,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제가 좀 있다가 전화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곧 이어 다시 전화가 왔다. 하는 수 없이 열었다 닫고 나서 전화를 꺼버렸던 적이 있다.
그 형이 시골에 내려갔을 때 내 부모님께 전화를 꺼버려서 서운했다는 말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혹 배운 동생이 못 배운 자기를 무시하는가 보다 하는 생각으로 한 말이었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도 학력에 집착한다.
언젠가 학교 수업시간에도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와서 그냥 끊은 적이 있었다. 전화를 열어 수업중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강의하고 있는 나의 소리를 잠깐 들으시게 한 뒤 껐었는데, 그때도 몹시 서운하셨던 모양이다. 사촌 형이 서운해 하더라는 말까지 붙여서 하시는 그 말씀은 예전에 내려가 뵈었을 때도 하신 말씀이다.
그 순간 머릿속에 ‘받아주기를 해야 할 상황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말은 그와는 다른 말이 나가고 말았다. 그 말씀을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만져드려야 한다는 생각은 까맣게 사라져버리고, 전화를 그냥 끊으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하고 생각을 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전화기에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 찍힐 턴데, 무슨 일이 있으면 그렇다고 말을 해야지 그냥 끊으면 전화를 건 사람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느냐고 말씀을 하셨다. 수업 시간에 전화 오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에게 미안한데 전화를 어떻게 받느냐고 했다.
‘그럼 전화를 받지 않고 가만 두면 되지 않느냐’ 하신다. ‘벨이 계속 울리는데 어떻게 가만 두어요’라고 하자, ‘그럼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끄고 들어가지 그러느냐’고 하신다. 하루 수업이 6시간씩인데 어떻게 매번 켰다 껐다 하느냐고 하자, 아예 하루 종일 끄고 지내면 되지 않느냐고 하신다.
두세 번째 전화에 대한 얘기를 하시고, 받을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고 열었다가 아무 소리 안하고 그냥 끊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씀을 하시자 내 감정이 올라왔다.
‘아버지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돼요. 그냥 막 사는 사람들이야 모르겠지만 전화는 거는 사람이 받는 사람의 현재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요즘에는 전화를 걸어서 받으면 “통화할 수 있으세요”하고 먼저 물어보는 것이 예의입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나는 너와 차원이 달라서 잘 모르겠다만 어떻게든 전화가 왔으면 통화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끊어야지 그냥 끊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고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열을 많이 받으셨고, 나는 나대로 화가 나서 견디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아버지께서 나가시자 어머니에게 불평을 쏟아놓았다. 어머니는 ‘네 아버지가 하고 싶은 얘기는 꼭 해야 하는 분이시니까 네가 참아야지 어떻게 하느냐’고 말씀하셨지만 위안이 될 리 없었다.
다른 방으로 와서 ‘내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출발하여 집으로 돌아가자’고 아내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내 曰, ‘아버지께서 그러시는 것 이제 아는 것 아니면서 뭘 그러느냐’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게 당신의 가장 취약한 부분 아니냐’ 하는 말도 한다.
그렇다. 내가 당한 것이다. 나의 약점을 공격당한 것이다. 안되겠다 싶어서 벌떡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서 ‘제가 잘못 생각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고 말씀드렸다. 내가 아내에게 듣고 있던 사이, 그 방에서는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말씀을 하신 모양이다.
‘상대를 배려하여 행동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거군요’하는 말씀을 드리며 마음을 약간은 만져드렸다. 내 기분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은 상태였지만 그렇게 정리를 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밖으로 나와 아내와 함께 걸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나는 아버지가 말씀하실 때, 잘 받아주지 못한 편이다. 진작 그렇게 받아주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충분히 만져드렸더라면 이번에 다시 그 말씀을 꺼내지 않으셨을 것이다.
마음을 지키기가 왜 그리 어려운지... 최근 몇 년 동안 특히 우리 교회에서 매일 정해진 기도를 빠뜨리지 않고 할 때는 좀 여유 있게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마음도 만져드리곤 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와서 규칙적인 기도가 깨지면서 내 마음을 지키는 일이 더 어려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주일에 들었던 설교 말씀을 떠올려본다. 하나님 말씀에 마음을 두지 않고 다른 소리에 마음을 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처음에 분명 아버지의 그 마음을 받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나는 그것을 외면하고 내가 느끼는 감정적 지각에 반응해버린 것이다.
두 번 이상 같은 말씀을 또 하신다는 생각, 시도 때도 없이 잔소리를 하신다는 생각, 오랜만에 만난 자식에게 좋은 말만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 등의 선입견에 영향을 받은 나의 지각 반응이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의 사이를 힘들게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그동안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며, 또 말씀을 전하였던가?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신앙에 관한 얘기도 하며 매주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시는 것이 좋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었는데, 그런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오히려 아버지를 불쾌하게만 해드린 것이다.
마음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그와 관련된 QT를 하고서도 금방 무너져버린 내 모습을 보면서 초라하다 못해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두지 않고 다른 소리에 곧잘 마음을 빼앗기는 내 모습이다.
주님은 말씀을 가슴판에 새기고 손목에 붙들어 매고 미간에 붙여 표를 삼아야 한다고 하셨다. 육신의 소욕과 죄의 유혹을 이기고 성령의 소욕에 의해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그 부모 마리아와 요셉을 섬기고 따르며 순종하시는 모범을 보여주셨다.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눅02:51)
하나님이신 그분으로서는 그 부모들의 행동을 지적해주어야 할 만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순종하여 받드셨다고 성경에 말씀하고 계신다. 주님께서는 전화 예절을 가르쳐 드리고 싶어 한 나와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신 것이다.
4. 결단 및 적용
나는 지금까지 내 부모님을 진정으로 공경해왔는가? 공경과는 거리가 먼 내 모습을 발견한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다. 대화하면서, 받아주면서 그 마음을 만져드려야 한다는 것은 목사님을 통해 여러 번 배운 것이다.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실천해가면서, 제대로 하는 대화를 조금은 흉내내가며 그것에 재미를 붙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는 그것을 송두리째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느낌과 감정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마음을 지켜야 한다. 주님은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난다고 말씀하셨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난다는 것은 내 마음을 지켜 생명나무인 주님께 붙들려 있을 때 생명을 지킨다는 뜻일 것이다. 거기에 오늘은 내 마음을 지켜나갈 때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다는 해석이 새롭게 된다.
어제 저녁에 내가 내 마음을 지키고 아버지의 말을 받아주며 그 마음을 만져드렸더라면 전화를 받지 않아서 속상했던 그 마음을 돌려 주님의 복음으로 대화를 연결시켜 아버지가 신앙생활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SOL 2학기에 공부한 내용은 경청과 공감이었다. 공감훈련을 통해 우리는 의사소통만하는 수준을 넘어 상대방의 내면 감정을 만져줄 수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성장 동기를 격려해주는 수준의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배운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고 그것을 실제 생활에 적용을 해야 하는데, 번번이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깨지는 우리의 모습이다.
내가 마음을 지켜 나갈 때 나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 될 뿐 아니라 내 주위 사람들을 살려나갈 수 있게 된다. 마음을 지켜나갈 때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말씀하신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여 가나안이 뒤로 밀려나는 어리석은 일을 범해서는 안 되겠다. 느낌과 감정에 의존하지 않고 주님을 기쁘시게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행동에 옮겨야 할 것이다.
저녁에 기도할 때 주님께 철저히 회개하는 기도를 해야겠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내가 잘못했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써야겠다. 내가 잘 되고 이 땅에서 장수하는 비결이다. 주님을 사랑하고 내 부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 내 감정을 이기는 것이 쉽지 않다. 그 때마다 앵커링하면서 reframing 해나가자.
편지 : 사랑하고 존경하는 부모님께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것만으로도 좋은 부모님께 올립니다.
내려가 뵙고 함께 지내는 시간은 좋은데, 막상 떠나 올 때는 늘 서운해 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뒤로 하고 올라오는 저희들의 마음이 늘 무거운 것을 느끼곤 합니다.
고생고생 해가며 키운 자식들, 못 드시고 입지 못하시고 키운 자식들이 모두 뿔뿔이 나가 살고, 명절에 만난다고 해도 함께 모였다가 한꺼번에 다 떠나고 나면 텅 빈 집에 두 분만 쓸쓸하게 남게 되어, 늘 안타깝고 애처로운 생각이 드셨을 부모님을 생각해보면 제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어제 저녁에 아버지께 제가 잘못 되었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너무도 부모님께 죄송한 생각이 들어 편지를 드리게 됩니다.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이 무슨 뜻을 가지고 어떤 감정 상태에서 말하는가를 늘 주의하면서 얘기를 들으려 노력하면서도, 정작 제 부모님과 대화를 하면서는 그러한 생각을 잊어버리고 부모님의 말씀을 듣게 되어, 부모님을 불편하시게 하는 경우가 많은 제 어리석은 모습을 보곤 합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제 부모님께 제가 왜 그렇게 대했는지 정말 제가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입니다. 늘 부모님의 신앙과 건강, 장수를 위해 기도하며, 자주 찾아뵙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도 말상 뵈올 때는 왜 그리 공손하게 대하지를 못 하는지 제가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모골(毛骨)이 송연(竦然)하게 사무칩니다.
전화를 끌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좀 더 좋은 방법으로 말씀을 드릴 수 있고, 부모님께서 그것을 모르시면 또 무슨 일이 난다고 그것을 굳이 말씀드리려다가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렸는가 하고 생각하니, 공부를 많이 하고 또 학생들 앞에 서서 가르치는 제 모습이 초라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의 생각 깊지 못한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나이가 50줄에 가깝지 않느냐고 말씀하신 어머니의 뜻을 알겠습니다. 지식적으로 가 아닌 삶의 경륜에서 묻어나는 부모님의 지혜를 제가 어찌 다 따라가며 다 배울 수나 있겠습니까?
제가 아직도 어리석어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지 못한 것을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고, 다음에 뵐 때는 좀 더 편안하게 기분 좋게 인사드리고 말씀 나누게 될 것을 다짐하면서 이만 맺을까 합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특히 음식 조심하셔서 더운 여름을 잘 넘기고 추석에 건강하신 부모님을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늘 마음만 있지 효도를 다하지 못하는 큰아들이 편지 올립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제가 어찌 다 갚겠습니까만 한걸음씩 갚아 나가기 위해 애써보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애비가 큰 절 드리며 올립니다.
(2006년 8월 4일)
5. 기도
주님! 어리석은 제 모습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주님께서 강조하셨건만 저는 제 부모를 제대로 공경하고 있지를 못합니다. 제가 더 선생이 되어 부모를 가르치려 들었습니다.
사람이 지식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하면서도 지식 의존적인 생각을 하였습니다. 제 아버지가 전화 예절을 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떻습니까. 그런데도 저는 전화예절을 말하고 싶어서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참으로 넓은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좇아 저의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주님! 마음을 지키는 것이 제가 살고 사람들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살리는 사람, 평화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평화를 깨치고 살리지 못하는 일을 한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해주십시오.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주님! 시야 좁은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참으로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사람들을 바라보게 해주십시오.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