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C(3월 10일) 고종훈집사(안영수지파/셀)
본문: 눅 22:54-62
제목: 닭이 곧 울더라
*말씀요약
예수님이 잡혀 가실 때에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갑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세 번 부인을 할 때 예수님의 눈빛과 베드로의 눈빛이 마주쳤습니다. 예수님의 눈빛은 변절자를 보는 시선이 아니라 베드로의 참회의 회개에 더 관심을 두는 사랑의 시선입니다. 예수님과 마주치는 시선이 바로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지키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희롱하고 때리고 욕도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군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하나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앎에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예수님을 부인하며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가다 보면 예수님을 부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예수를 죽이고자 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유월절을 맞이하여 백성들이 유월절을 잘 기념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자기 본연의 일을 하지 않고 되려 예수를 죽이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맡긴 일을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반대하는 일에 앞장서게 됩니다.
*삶의 적용 및 결단
일상 생활 속에서 많은 부분에 나는 죄된 상황에서 예수님의 눈빛을 만나게 됩니다. 죄된 상황 속에서 마음에 이러면 안되지..라는 성령님의 말씀도 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말씀으로, 때로는 권면으로 많은 장면에서 예수님의 눈빛을 마주치게 되는데.. 숱한 순간에 그 눈빛을 무시하고 못 본채 하면서 혹은 못 들은 채 하면서 그 순간을 모면하게 됩니다. 그럴수록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더 멀찍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지요..그러나 고난의 시간을 거치면서 분명하게 깨닫게 하신 것은 그 순간 내가 예수님으로부터 더 멀찍이 떨어지면 후에 내가 감당해야 할 짐이 더 커진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예수님 눈을 보고 싶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내 감정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고 싶지만 예수님으로부터 올 후환이 무서워서 그러지 못합니다. 그렇기도 하고 실은 그 숱한 상황에서 동행했던 예수님과의 의리 그리고 사랑이 너무 커서 배신하기가 어렵습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멀찍이 떨어져 가는 것이 아니라 바짝 붙어서 계속 같이 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나 스스로는 굳은 의지도 없고 신앙도 없어서 떨어지면 한 없이 거리를 둘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교회 옆으로 이사하자고 했을 때 너무 옮기기 싫었지만 그 목적이라면 바로 실행하자라고 하고 옮기게 되었고, 교회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 교회 중심의 라이프를 누리게 되니 코로나로 교회를 못가게 되더라도 너무 든든하고 가까움에서 오는 누리는 축복이 컸습니다. 이제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영적거리를 더 좁혀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더 가까이 하고 내 일상생활에서의 말과 행동에서도 예수님의 눈빛을 마주 보면서 하나씩 고쳐 나가고 순간순간 순종해 나가야겠습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주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주님을 따르고 쫓을 수 있는 믿음이나 의지가 있는 사람이 아님을 주님께서도 너무 잘 아십니다. 저를 모든 악한 것으로부터 지켜주시고, 모든 순간에 주님을 의지하고 따를 수 있도록 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