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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4:32-35, 41-43 “상고해 보라!”
신명기는 애굽에서 40년, 광야에서 40년, 하나님을 따라 살며 40년을 살아 낸 모세의 유언과도 같은 설교입니다.
1. 하나님의 크신 일을 (상고해 보라)! 32-34절
지금까지 ‘하나님의 큰 일’이 아니었으면 우리 모두가 이 자리에 있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모세도 40년 전에는 하나님을 잘 몰랐었습니다. 그도 애굽에서 40년을 살고, 광야에서 40년 살고 난 80이 돼서야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양을 치던 목자에게 광야에서 만난 ‘스스로 있는 신’이라고 말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을 시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살아본 모세는 그 말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 소리인지 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애굽의 왕가에 살아 보았기 때문에 애굽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토해 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모세는 잘 아는 것입니다. 모세의 생각에 이스라엘은 애굽의 소유물이었기 때문에 빠져나올 가능성은 1%도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그 불가능한 일을 하신 하나님을 모세가 보았습니다.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애굽을 쑥대 밭으로 만들어 버리고 그들의 장자까지 죽게 함으로 애굽의 간담을 혼미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니까 애굽이 이스라엘을 향해 “가라, 다 데리고 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애굽은 하나님이 감당이 안되니까 가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또 다른 불가능한 일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거대한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을 건너게 하시며, 쫒아오는 애굽의 군대를 수장시키셨고, 무섭고 거치른 광야에서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먹이고, 입히고, 성전을 지어 주시며, 하나님을 가르치시고, 책임지신 것을 경험했습니다. 광야는 도저히 몇 백만명이 들어가서 살아 낼 수 있는 땅이 아니라는 것을 광야에서 40년을 살아 본 모세는 너무도 잘 아는 것입니다. 그의 인생 마지막 자리 모압 평지에 이른 모세는 ‘창조로부터 이런 일을 들어보았느냐!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을 있었느냐 어느 신이 와서 이와 같은 일을 했느냐’고 한 번 상고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제 모세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과거를 통해 현재에 이르고 보니 앞으로도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인도하셔서 살게 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뿐 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왔다면 앞으로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살길은 하나님만 붙잡고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 까닭에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순종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도피성)을 주셨습니다. 41-43
생명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생명을 지키고자 도피성을 주셨습니다. 도피성을 만들어 놓고 그 도피성으로 피하면 더이상 보복하지 못하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도피성은 어디로부터 도망을 해도 하룻길이면 도착하게끔 위치해 뒀으며, 빠른 걸음으로는 한 나절 안에 들어가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도로도 넓게 닦아 놓았으며, 가는 곳곳에 표지판(히/ 미클라트)을 세웠습니다. 위급하고 다급한 상황에서 누구든지 빨리 도피성으로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신 19:2-3, 6).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도피성에서 한 발이라도 나와서 보복하는 자들에게 죽임을 당해도 그것은 책임지지 않고 문제 삼을 수 없는 것입니다. 도피성에 들어가면 거기서 나오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 나갈 수 있는가? 대제사장이 죽으면 나가도 됩니다(민 35:26-28). 대제사장이 죽으면 모든 죄가 사면되는 이 놀라운 원칙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면 우리는 무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도피성을 경험하는 그 인생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도피성이 되어 주시도록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도피성이신 예수님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시편 46).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가 사면을 받을 수 있다는 놀라운 상징이고 실제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곳곳에 교회를 세우셔서 우리의 도피성이신 예수님을 만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