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소감문
마가복음 13장 4진 황기현지파 강호준셀 이배춘
말씀 요약
1.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1~4)
2. 재난의 때 (5~13)
3. 말세의 징조(14~23)
4. 주님 재림에 대한 예언(24~27)
5. 그날을 예비하라(27~37)
소감 및 적용 깨어있으라.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바로 ‘깨어 있으라’이다.
왜 깨어 있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언제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본문을 통하여 보면 그 징조는 알 수 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28)
징조가 일어나면 그 징조를 통해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를 분별해야만 한다.
하지만 징조는 징조일뿐 실제로 언제 어떻게 인자가 오실지를 알게 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항상 깨어 있는 것이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항상 예수님의 이 말씀들을 마음에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35)
그들은 그들의 시대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믿었고, 그래서 순교의 자리에서도 곧 오실 예수님을 찬양하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 부활할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죽음은 그저 통과의례였을 뿐이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어떠한가? 예수님께서 2000년이 넘도록 아직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무뎌진 것은 아닐까? 너무 오래도록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림의 관성이 우리로하여금 ‘지금은 아닐 거야’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내 영이 깨어 있어야 하는데도,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를 생각하며 늘 민감하게 살아야 하는데도 너무나도 무뎌지고 너무나도 타성에 젖은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세상이 점점 악해지고 있는데도 거기서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나 자신을 악한 것들로부터 지키기에만 급급하지 않은가?
깨어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나 자신만 말씀 위에 서서 나를 잘 지키고 잘 살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나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 모두가 함께 영적으로 예민하게 주님을 섬기며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가족과 교우들과 이웃들을 더많이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내가 먼저 깨어있지 않는다면 주님과 깊은 사귐의 시간이 없다면 주님께서 곧 다시 오실 거라는 절실함과 긴박감이 없다면 정말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랑은 주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다시금 마음에 다짐은 매일 새벽 말씀을 대할 때 습관적이지 않는 깊이 있는 묵상과 기도시간을 더많이 갖도록 힘쓰며 삶의 우선순위를 끝날까지 지킬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기도
깨어 있는 자로 오늘을 살기 원합니다,
기다림의 관성으로 내 삶이 무뎌지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과의 관계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사랑으로 깨어 있게 하시고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머금은 말과 표정으로 대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