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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2수요예배-민정애집사RTC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1.03.05 조회수3274

설교제목: ‘안식년, 희년이신 그리스도’



말씀: 레위기 25:1-12


‘너희는 오십년째 해를 거룩하게하여 그 당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표하라, 이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 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엡 4:13-15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 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요약: 우리가 그리스도를 어느 분량만큼 누리는가? 라는 질문을 하시며 안식일→ 안식년→3. 희년의 삶을 누리는가? 생각하게 하셨고 7대절기(유월절, 무교절,초실절,오순절,나팔절,속죄일,장막절)의 성장이 있는 삶을 사는가? 라는 질문으로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하셨다. 희년이 오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희년을 미리 맛보는 것은 고엘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기업 무르기를 하셨기 때문이다.



소감: 레위기를 읽을때 7년째의 안식년과 오십년째의 희년은 단지 노예해방, 땅회복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의 피로 인한 죄 용서-유월절, 내가죽음- 무교절, 그리스도와 함께 삶-초실절 , 성령의 은혜를 맛보게 하심- 오순절등의 광야같은 인생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으로 인해 누리는 장막절의 기쁨을 말씀해 주셨다.


내나이 51. 믿지않는 가정에서 1남5녀의 막내로 태어나 늙으신 부모님, 언니, 오빠들의 순탄치 않은 삶을 보고 자란 나는 생각이 많고 조숙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아이였다.


크리스마스때 처음 가 본 교회는 8살의 아이에게 뭔가 신비하고 엄숙하고 설레는 곳이였다. 초등4학년때 친구의 권유로 여름 성경학교에 다시 다니게 되었고 찬양경연대회에서 상을 받은 기쁨은 열심히 교회를 다니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가 이사를 가고 교회를 안다니시는 부모님은 한집에 두가지 종교가 있으면 안된다면서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해 나는 교회와 멀어지고 사춘기를 맞게 되었다.


고등학교 진로 문제로 고민할 때 아버지와 큰언니는 점쟁이한테 물어보니 ‘너는 은행원이 되는 것이 좋겠다’며 상고를 가라고 하셨고 나는 인문계고로 가서 대학교를 꼭 갈거라고 고집을 피웠다. 고등학교에 가니 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스트레스가 심했다.


고2 부활절때 교회에서 자꾸 나오라고 권해서 오랜만에 간 교회의 찬양소리는 나의 가슴을 울렸고 나도 모르게 눈물, 콧물을 주체할 수 없이 흘리며 마음은 편안해져갔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였구나 하는 생각에 그 뒤에 부모님 몰래 교회를 나갔다. 학교 갔다오는길 교회에 들려 기도하고 새벽에 몰래 나가 교회를 가는 나를 부모님은 안되보였는지 그냥 모르는척 하셨다. 지금의 수능같은 예비고사 보는 날 엄마는 부엌으로 가시다 쓰러지셨다. 겨우 방에 모셔다 드리고 동치미 국물을 드시게 하고 부랴사랴 시험장으로 뛰어갔다. 정신이 없는 가운데 시험을 치루어 시험성적은 형편없었고 대학에 떨어지면 재수한다는 소리는 절대 할 수 없는 상황이였기에 나는 절망하고 힘들었다. 그러나 다행히 사범대에 갈 성적이 겨우 나왔고 나는 교사가 될 수 있었다.


믿지 않는 가정의 어려움을 너무 잘 알기에 나는 결혼은 꼭 믿음이 있는 남자와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대의 남자 총각들은 하나님을 만나기엔 세상을 너무 좋아했고 그러다 나는 30살의 문턱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믿음이 강해보이진 않지만 순수한 모습이 좋아 만나 결혼하고 첫달은 너무나 행복했다. 결혼 두달 후 임신한 아기를 확인하러 병원에 갔더니 난소종양이 있으니 유산해버리고 나중에 다시 가지라는 날벼락같은 이야기를 듣게된다. 유산하고 바로 임신이 되냐고 물으니 혹 잘 안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는 길 나는 내내 울면서 왔다. 그리고 임신한 여자들의 불룩한 배가 그리 부러워 보일수가 없었다. 나는 기도했다. 주님이 주신 생명인데 어떻게 유산을 시키느냐고 , 주님이 주신 생명이니 살려달라고 그리고 건강하게 낳게 해달라고.


서울대병원으로 검사를 갔다. 서울대병원에서는 낳고 싶으냐고 물었다. 날 수있으면 낳고 싶다고 말했다. 의사는 아기가 조금 자란후 종양을 제거하자고 말했다. 나는 너무나 감사했다. 그렇지만 임산상태에서의 수술은 아기에게 해가 가지않기 위해 최대한 약을 투여하지 않기에 수술 후 진통제를 맞지 못하여 생살을 도린 아픔을 고스란히 느껴야했다.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우리는 혹 마취주사에 의해, 내가 먹은 약에 의해 건강치 못한 아기가 태어날까봐 매일 새벽제단을 쌓을 수 밖에 없었다. 아기는 다행히 건강했다.


그러나 백일이 지난후 부터 장이 약하고 우유가 잘 맞지않아 설사를 하는것이 5살까지 반복되었다. 나는 그 아이를 놓고 매일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뱃속에서 불안했던 엄마의 마음을 닮아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는 키우기가 만만치 않았고 사춘기 때는 어디로 튈지 몰라 정말 불안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였고 20년을 한결같이 기도한 지금 미국대학교를 거쳐 KAIST로 편입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건너야 할 광야가 참 많다. 목마른시절(사춘기), 결혼, 자녀, 물질적 어려움, 이 모든 것이 누구나 건너야 할 광야인 것 같다. 자녀는 선물이기도 하지만 그 선물을 누리기위해선 갈등하면서 우리의 인격을 성숙시키신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말을 안듣고 내 마음대로 많이 했듯이 나의 자녀도 사춘기를 지나면 나의 생각과는 반대로 청개구리처럼 행동한다. 그럴 때 마음에 품고 기도하며 인내하며 기다리면 어느새 내 기도를 들으시고 키워주시며 내 품에 안겨준 하나님의 선물을 발견한다.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지만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그릇이 되기를 기도하며 희년의 기쁨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