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1장 QT 나눔
1진 안영수 지파 곽현구 집사
1. 말씀 요약
- 1~10절 : 새 예루살렘에서 함께 하시는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과 그 백성
- 10~21절 새 예루살렘의 구조에 대한 설명
2. 말씀 묵상
새 예루살렘은 길이와 너비, 그리고 높이가 각각 12000 스다디온, 한 변이 대략 2300km되는 정육면체라고 말씀합니다. 단순히 한쪽 면의 넓이만을 따지면 5,308,316km2 입니다. 사실 그 크기에 대한 감이 오질 않았는데, 이것은 세계에서 7번째로 큰 인도보다 조금 더 크고, 한반도보다는 24배 이상 큰 크기입니다. 벌써부터 은혜가 됩니다. 현재의 예루살렘보다 몇 천 배 더 크기 때문에 제가 들어갈 수 있는 기회도 훨씬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이 곳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요한계시록 7장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나온다고 말씀하는데, 그 무리는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기는 자들로 생명수와 새 예루살렘을 상속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기는 자들은 그 큰 환난 중에 끝까지 믿음으로 버티는 자들이며, 믿음을 포기하거나 버릴 때 패배하는 것이지 이 땅의 사단으로부터 권세 받은 자들과의 전쟁에서 죽는 것이 패배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즉 예수님의 죽음이 패배가 아니고 부활하심으로 승리가 되었듯, 믿음을 지켜낸 그들을 다시 살리심으로 그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은 두 번째 사망을 겪지 아니하고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임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세상적으로 보면 현 시대에 적응하며 권세 잡은 자들 곁에서 사는 것이 당장 편한 삶이 될 수 있지만, 그런 짧은 편안함 이후의 삶은 불과 유황의 연못에 던져지는 지속적인 고통을 당하는 삶임을 보여주십니다.
사역자 훈련원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지난 ‘창조 신앙과 복음’이라는 주제의 금요예배 말씀 중 받은 충격이 떠오릅니다. 지금 시대는 ‘나’라는 것이 우상이며 이것 때문에 창조론을 전하는 교회가 핍박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상황에도 믿음을 지키며 말씀 전하는 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나?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해도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나?’ 반문하게 됩니다. 아니 그렇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제 자신의 다짐을 짧은 간증과 가사를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QT를 준비하며 계시록 21장을 여러 차례 읽어도 아무런 감동이 올라오지 않아 답답하던 차에, 금주 주일 예배 중 어떤 멜로디가 스치듯 떠올랐습니다. 그 곡은 손영진 사모님의 ‘은혜로다’ 라는 곡입니다. 이 찬양을 반복해서 계속 들으며 계시록 21장을 묵상하는데, 처음에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이 곡을 왜 듣고 있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귀에 들어온 후렴구로 인해 주신 묵상과 찬양의 가사가 하나로 연결되는 하나님의 말씀이자 간섭하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십자가 무거워서 버리느니 십자가 짊어짐이 최후에 영광이라 십자가 짊어짐이~
은혜로다 은혜로다 은혜로다 십자가 짊어짐이”
3. 결단
- 하나님을 증거하고 그 말씀을 전하는데 기꺼이 목숨을 걸겠습니다.
4. 기도
- 이 세계의 창조자이자 절대자이신 하나님.
죄악으로 인해 타락해 버린 세상이지만,
최후 승리는 하나님께 있으며 그 때에는 땅과 하늘을 포함한 모든 것이 완전히 새롭게 될 것임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주신 말씀을 믿으며 말씀을 전하는 자의 삶을 기꺼이 감당해 나갈 것임을 결단합니다.
다시 뵈올 그날까지 깨닫게 하신 말씀들에 기대어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멸시를 능히 이겨 나갈 수 있도록 연약함을 붙들어 주소서.
이 고백을 드리기까지 기다려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