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2013년4월10일수요박태영집사QT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3.04.17 조회수1433

QT 누가복음 16 19~31                     1진 윤은상지파 박태영셀 박태영집사


 


   누가복음 16 19절 말씀은 잘 알려진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부자의 삶은 진정 호화스럽고 풍요롭다. 반면에 나사로는 거지이다. 그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불리며 살아간다. 이것이 그들의 생전의 삶이라면, 22절부터는 그들의 죽음과 그 이후에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들어갔다. 이제야 비로소 그간의 고단한 삶에 대한 보상이 주어진 것이다. 반대로 부자는 음부의 고통중에 고민해야 한다. 그는 살았을 때에 이미 좋은 것을 누렸기 때문이다(25).


죽음을 기점으로 두 사람의 삶은 완전히 역전되어 버렸다. 부자에게는 더 이상 안락과 풍요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고 고통만이 계속된다. 부자의 굴욕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자신의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24) 애원한다. 그것도 거지였던 나사로에게 말이다. 나사로의 입장에서는 정말 통쾌하고 기분 좋겠지만, 부자였던 그는 몸서리치게 서럽고 분통했을 법하다. 짧은 이야기지만 우리의 삶에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반전을 가져오는 부자의 뼈아픈 실수는 무엇일까. 먼저 본문 속 부자는 형제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았다.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부자의 삶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가난한 거지를 돕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법을 어기거나,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거지 나사로를 그 부자에게 맡겨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고자 의도하셨을지 모른다. 부자를 통해 나사로의 고엘로서 그의 필요를 채워주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사로에게도 하나님의 음성도 무관심하였다. 얼마든지 도울 수 있었음에도 그는 도움을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부자의 물질관 속에는 하나님은 없었던 것이다.


본문의 부자는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죽음 이후의 또 다른 세계가 있고, 천당과 지옥을 실존함을 부정하며 살았다. 부자의 삶은 현실에 너무 충실했다. 미래지향적이고 내세지향적인 인생관은 조금도 없었다. 결국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맞이한 죽음 그 이후에 그는 음부의 고통을 당했다. 그 아픔이 얼마나 컸던지 그는 형제들이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죽은 나사로를 형제들에게 보내줄 것을 간청했다. 하지만 때늦은 부자의 조치는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만들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 없는 삶의 결말임을 짐작케한다.


결국 하나님의 없는 부자의 삶은 고통밖에 없음을 본문은 말해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맡겨주셨다. 가족, 교회, 시간, 직장, 제물 등…. 그 가운데서 모든 일에 하나님이 중심에 두고 살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그런 모습과 노력 속에 하나님은 내가 속한 모든 것에 더욱 축복하시기를 원하시고 계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