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제출자 : 김현주전도사
제출일 : 2012년 3월7일
QT본문 : 왕하 3장
<문단나누기>
①1절-3절 : 이스라엘 왕 여호람
②4절-12절 : 모압과 전쟁하기 위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와 에돔이 연합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다
③13절-20절 : 선지자 엘리사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물을 얻을 것과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듣다
④21절-27절 : 연합한 세 왕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모압 왕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다
<묵상하기>
7절b :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하는지라
이 말씀은 북이스라엘왕인 여호람이 동맹하여 모압왕을 치러가자는 요구에 유다왕 여호사밧왕이 한 대답이다. 놀라운 것은 이 답은 왕상22장 4절 말씀과 너무나 동일하다. 그 때도 아합왕이 길르앗라못을 되찾으러 함께 갈 것을 요구할 때 위와 동일한 대답을 했었다.
왕상22장의 전쟁에서 아합왕은 죽음을 당하였고 여호사밧왕은 죽음의 고비를 넘어 유다로 돌아왔다.
아합왕의 죽음은 이미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었던 일이고 이 죽음은 그 동안 아합이 여호와하나님을 배반하여 백성들을 영적 타락으로 이끌었을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타락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을 아내 이세벨의 계략으로 모함하여 죽게 만들고 그 재산을 차지했던 아합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다. 여호사밧은 그 사건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또 똑같은 선택을 한다. 그 때도 여호와께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아서 미가야의 예언이 있었으나 듣지 않았고 이번에도 여호와께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아서 엘리야를 통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었지만 여호사밧은 더 이상의 영적유익과 성장을 얻지 못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에 대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그 능력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우둔한 사람이었다. 이 우둔함을 왕상22:44에서는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의 왕과 더불어 화평하니라”로 설명한다. 44절의 말씀은 여호사밧이 적극적으로 우상숭배나 배교의 길로 가지는 않았으나 신앙적으로 애매한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 화평은 진정한 영적승리를 통한 화평이 아니라 그저 현실과 타협한 인간적 관계의 화평이었을 뿐이다. 이 화평이 여호사밧으로 하여금 똑같이 영적으로 무지한 행동을 반복하게 하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을 깨우는 하나님의 손길을 통찰하지 못했다. 영적 무지는 절대로 하나님의 사건을 이해할 수도 해석할 수도 없다.
나는 이런 무지함이 없는가? 하나님이 배열하신 사건과 만남을 통해 내게 주시는 메시지들을 바르게 통찰하고 있는가? 진정한 영적 승리를 통해 화평을 누리는가? 혹은 상황을 적당히 외면함으로 주님의 십자가에 내 실존을 직면하지 않고 외형의 경건만 갖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반복하여 무너지는 영역이 없는가 살피고 나를 세워나가야 한다.
13-14절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하니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여호사밧의 영적 무지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남유다왕 여호사밧, 다시 말하면 다윗의 혈통을 잇고 있는 이 혈통에 대한 하나님의 변개하지 않는 사랑을 나타내신다. 엘리사의 태도로 알 수 있다. 자신을 찾아 온 이스라엘 왕에게는 외면하려하고 비난하지만 여호사밧으로 인해 자신이 마음을 돌렸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은 이러하다.
그가 부족하고 어리석고 하나님의 구속사의 손길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백성들을 빛으로 인도하지 못하는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다윗에게 세우신 ‘언약’(삼하7:15-17)을 스스로 지켜나가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이 신실하심이 있기에 나는 죄인이지만 의인의 자리에 설 수 있고 부족하지만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주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이다.
26-27절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찬 군사 칠백 명을 거느리고 돌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가지 못하고
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모압 왕은 북이스라엘이 아합왕 시절에 강성함을 보고 조공을 바치다가 아합왕이 죽자 조공을 중단하고 북 이스라엘을 배반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 전쟁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쟁 상황이 불리해지자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드림으로 상황을 역전하고자 하였다.
인간적 신의도 없고 참 진리를 알지 못하는 인간의 선택은 언제나 ‘죽음’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상황은 언제나 변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본질적 실체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틈틈이 이 사실을 잊고 눈에 보이는 상황에 흔들리고 두려워할 때가 많다.
이것을 이기는 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길 뿐이다.
<적용과 결단>
내가 어떤 사건 때문에 실패감과 무력감에 빠져있을 때 사건을 되짚어보면서 발견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이 경험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고 또 있었고 또 있었다.
내가 왜 반복하여 동일한 반응과 선택과 실패를 하게 되는 것일까?
처음에는 나의 연약한 부분이 있어 사단의 공격이 이 영역에 집중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이 생각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처음의 실패는 그렇다고 하여도 반복하여 동일한 패턴으로 실패한다는 것은 내가 사건 속에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깨닫고 집중하는 것에 소홀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그 후부터 나는 모든 영역에서 침묵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 상황을 분별할 수 있도록 기도하였다.
실패가 없는 것은 아니나 반복의 횟수는 줄어들 수 있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질 수 있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속에서 해석하는 것이 승리의 길이다.
1) 사건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침묵기도를 지속하기 (잠자리에 들기 전 30분)
2) 하루를 마무리하며 일과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인하기 (감사기도 기록)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늘 신실하심으로 응답하시는 주님을 더욱 신뢰하며 보이지 않는 증거들을 확인할 수 있는 믿음의 크기가 나날이 커지는 자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