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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 (히 1장) 정체성을 확실히 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자

작성자 설진용 날짜2006.11.16 조회수3692


정체성을 확실히 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자.


(히브리서1장) 2006년 11월 14일 화요일


1. 본문 주요 내용



1절;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고


2절; 마지막 날에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아들은 만유의 후사요, 아들을 통해 세계를 지으셨다.


3절;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그 본체의 형상이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다.


4-7절; 아들은 천사들보다 뛰어나 모든 천사가 그에게 경배하며, 그는 천사들을 사역자 삼으신다.


8-9절; 아들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니,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부어 높이셨다.


10-11절; 땅과 하늘은 멸망할 것이나 주는 永存하신다.


13절; 아들은 원수 마귀를 발등상 삼으실 때까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


14절;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섬기라고 보내셨다.


⇒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해 오신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아들을 통해 말씀하셨는데, 그분은 만유의 후사요, 하나님의 형상이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신다. 그는 천사들을 사역자 삼아 부리시며, 마귀를 발등상 삼을 때까지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분이시다. 우리 역시 천사들의 섬김을 받는다.






2. 내게 주시는 말씀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통해 세상을 지으시고,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하셨다. 예수님은 천사들을 사역자 삼아 원수를 발등상 삼으실 때까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구원받아 후사가 된 나 역시 천사들의 섬김을 받고 그들을 부릴 수 있는 존재(New Thought)이다.


이것은 내가 당당하게 살 수 있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그런데 나는 세상을 매사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내가 하는 일들이 잘 되어가지 않을 때, 그 문제들을 다 주님께 맡기고 나아가지 못하는 때가 많다(Sins). 뿐만 아니라 최근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


아들을 그 우편에 앉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역시 아들 삼으시고 즐거움의 기름을 부어(Promise) 주신다. 이는 내가 어떤 일 앞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면, 하나님께서 즐거움의 기름을 부어주셨기에 내 삶에 즐거움이 넘칠 수밖에 없다.


내가 아들로서 어떻게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는가? 우리 후사들의 모델(Example)이 되신 예수님의 삶을 따를 때 나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고, 그것이 즐거움의 기름이 넘치는 삶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으로 배불러 하셨다. 하나님의 일을 하며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일로 연결 지어 생각하며 해 나가야(Command) 한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담임으로서 하는 여러 가지 업무를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로 생각하며 해나가자. 어떻게 일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지를 생각하며 일해 나갈 때 내게도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3. 묵상 및 소감


새벽에 꿈을 꾸었다. 영과 향이 어렸을 때의 모습이다. 어떤 정자에서 두 아이를 함께 앉고 걷다가 쌓았던 담요가 느슨해지면서 영이 쇠기둥에 머리를 부딪쳐 피를 많이 흘리고 죽어가는 꿈이었다.


어제 저녁에 향의 수행평가를 도와주었다. 음악가와 대표 음악에 대한 내용을 문서로 작성해 놓았는데, 편집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편집을 해서 출력까지 해주고 나니 12시가 넘었다. 영도 같은 과제를 해야 한다고 한다. 자료를 뽑아다 줄 테니 차례대로 필요한 것을 써달라고 했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게 되자 짜증이 났었나 보다. ‘말할 때 좀 잘 들어라’고 말하며 다시 말을 했는데, 순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것을 풀지 않고 그냥 잠자리에 들었기에 그런 꿈을 꾸지 않았나 생각된다.


꿈의 의미가 무엇일까? 내가 주님의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거나 주님 뜻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주님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는 말씀을 주셨다. 요즈음 내가 기뻐하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여러 가지 일들을 결정하며 해나가려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내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는 모습(요14:20)이 곧 나의 정체성이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과 함께 천사들을 부리며,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는 일을 할 사람이다.


확실한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살아갈 때, 내가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주님을 믿고 주님께 모든 일들을 다 맡긴다고 하지만, 실생활에서 그렇게 모든 일들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께서 주신 감동과 명령만을 순종하며 살기가 쉽지 않다. 많은 일들에 대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왔다갔다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신경 쓰이는 일이 많다.


학교 보충수업 수강 신청을 하는데, 내 반에 지원자가 별로 없다. 윤리 과목이 앞부분은 어려워서 보충수업이 필요하지만, 뒷부분은 쉬워서 보충수업이 많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보충수업을 하지 않으면 내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어서 좋다. 그렇다고 강좌를 개설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대입수학능력고사에서 윤리를 선택하려면 「윤리와 사상」과 「전통윤리」 두 과목을 다 공부해야만 된다. 근래 윤리 책에 동양과 한국 전통 사상을 강조하면서 은근히 그리스도교 사상과 서양 사상을 함께 묶어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더구나 전통윤리 과목에서는 제사 등 미신과 관련된 내용들을 전통이라며 버젓이 기술하고 있다. 그것을 생각하면, 내 과목이지만 학생들이 선택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윤리 과목을 특별히 공부하는 대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교과서를 여러 번 읽는 것이 대비책이다. 딸들이 시험 기간이 되면 도덕책을 들고 와서 중요한 부분을 뽑아달라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중요한 부분을 뽑을 수 없을 만큼 도덕은 공부하기가 쉽지 않은 과목이다.


특별히 어려운 것도 아니면서 공부해도 성적이 그에 비례해서 올라가는 과목이 아니다. 그렇기에 학생들이 윤리 보충수업을 선택하지 않는 점이 있다. 그러나 강좌 개설을 해놓고 지원하는 학생이 적을 때는 마음이 편치 않다. 자꾸 나에 대한 평가로 여겨지기에 그렇다.


지난 10월 30일 월요일 셀모임에 셀원들이 참석하지 않았다. 어제 11월 13일 월요일 셀모임에는 두 분이 참석하여 3명이서 예배를 드렸다. 각각 사유가 있긴 하지만, 참석율이 낮은 것은 셀예배 방법과 관련이 있다.


전에는 5w교재로 셀예배를 드렸다. 셀예배 5w교재가 월요일에는 미처 나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내가 교재를 만들어 써왔다. 그것이 내게 부담이 되었다. 학교에서 셀 교재를 만들어야 하는데, 집중하여 만들기 어려웠다. 만들어 사용하면서도 그 내용에 자꾸 신경이 쓰여 셀원들과 충분히 마음을 나누는 모임과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느낌이 들곤 했었다.


목사님께서는 셀모임의 방향을 5w교재 중심에서 QT중심으로 바꾸어나가라고 말씀하셨다. 셀모임이 월요일인지라 5w교재로 인해 부담스러운데다 목사님께서 QT중심으로 셀모임을 운영해가라는 말씀이 있었기에 2차례에 걸쳐 여호수아 말씀을 가지고 QT를 하고 소감을 나누는 예배를 드렸다. 그때 셀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것을 두고 여러 날을 기도하며 QT중에 묵상하기도 하면서 매일성경 교재에 나와 있는 GBS(Group Bible Study)로 방향을 잡았다. 기도하면서, 적게 나와도 주님께 감사, 안 나와도 주님께 감사한다는 고백을 하고, 또 그렇게 다짐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 방에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은 안타까움과 자책감 그리고 서글픈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4. 결단 및 적용


그러고 보니 내가 최근에 기뻐하지 못한 것은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셀모임을 잘 이끌어가야 한다는 강박감, 보충수업 강좌에 학생들이 지원하지 않는데서 오는 stress로 인해 내가 기쁨을 잃고 지내왔던 것이다. 그렇다. 내가 하는 일을 다 주님께 맡긴다고 하면서도, 또 그렇게 주님 앞에 기도하면서도 돌아서면 나는 그런 일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을 다시 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예수님의 공로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사람이다. 내 뒤에는 많은 천사들이 나를 돕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어디 그것뿐인가. 주님께서 내 등 뒤에서 나를 돕고 계신다. 나를 보고 미소 지으며 힘내라고 하신다.


주님께서 나를 이렇게 도와주시고 내 자격을 높여주셨는데, 나는 여전히 주님께서 내 일을 다 책임져주신다는 사실을 순간순간 착각하며 마음 편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지내온 것이다. 왕이 되어서도 여전히 나무꾼으로서 자치기하며 지내던 강화도령 시절을 생각하고 있던 철종 임금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였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어가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신다고 하셨다. 천사들이 나를 섬기기 위해 나를 둘러 따르고 있다. 내가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주님만을 의지하자. 주님께서 내 뒤에서 나를 바라보시며 밀어주신다. 힘을 내어 날아오르라고 말이다.




5. 기도


주님! 최근 몇 가지 일들을 가지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지 못했고, 그래서 기뻐하는 생활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저는 주님께서 도와주시고 밀어주시며, 또 천사들이 나를 섬기기 위해 나를 둘러싸고 있음을 생각지 못하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주님 안에서 저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것을 생각하면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슴 벅찬 기쁨을 누리며, 그것으로 인하여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도록 주님께서 붙들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