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소통대화법 세미나 (애틀랜타) <소감문>
2013년 9월 18일 신윤일 목사
말을 통해 상처 받은 적도 많았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미워하고 속으로 저들의 인격을 폄하하면서 스스로 나 자신을 달래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만 다른 사람이 내뱉는 언어의 피해자가 아니라 나 자신도 언어를 함부로 사용함으로써 남에게 아픔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상대방 말의 진의와 관계없이 듣는 사람들의 내면의 문제로 말미암아 잘못 이해하여 서로 고통을 주고받는 경우도 많은 것을 보았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을 마를까 하노라고 했던 시인의 탄식처럼 이럴 바에는 그저 말 안하고 침묵하는 것이 최선이겠다는 자조적인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공소대 세미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속에 이 세미나는 상처가 많은 이민자들이 모인 이민교회에 꼭 필요한 실제적인 세미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 유치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세미나를 통해 나의 고정 관념을 깨뜨리게 되었다. 말이란 것은 나의 감정이나 생각을 전하는 도구거나 아니면 상호 유익을 위한 정보전달의 수단 정도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대화한 것은 상대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도구인 것을 알았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전하는 대신 먼저 말하는 사람의 입장과 느낌을 이해하고 더 나가서 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 회복케 하는 것이 참된 대화인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 나는 말로서 나를 자랑하고 상대를 논리적인 말로서 누르면서 우위에 설려고 했다. 언어가 남을 위한 축복의 도구가 아니라 나를 자랑하는 무기로만 주로 사용하였다. 때로는 일차적인 비난과 불평의 수준으로 시작했다. 좀 더 품위를 지키려고 충고 해석 판단하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나의 참된 모습이었다. 아내에게도 자녀에게도 동역자들에게도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들에게도 말이다.
진정으로 함께 울어주고 함께 기뻐하면서 공감하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그 일을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 말의 습관과 언어 사용하는 품위나 수준은 하루아침에 결정된 것이 아니다. 수년간 혹은 수십 년간 인생의 풍파와 시행착오 속에서 빚어진 인격의 열매라고 생각한다. 그런 언어 습관과 그리고 그 언행이 스며 나오는 원천지인 내 마음의 세계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그러므로 생명을 살리는 선한 것을 배웠으면 이제는 좋은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겠다.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면 그 말하는 자의 인생부터 무지개 인생이 될 것이다. 그 무지개를 보는 사람도 감탄하고 기뻐할 것이다. 내가 달라지면 나만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덕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후반기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배운 것을 실천해 봐야겠다.
세미나 내용도 좋았지만 서울에서 오신 여섯 분 강사님들의 열정에 또 다른 감동을 받았다. 장시간의 비행시간과 시차적용도 안된 상황이어서 말할 수 없이 피곤했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것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과 진지하면서 최선을 다 하시는 강사 분들의 모습은 이 세미나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수고하신 분들께 감사 그리고 좋은 세미나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