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2013년6월16일캄보디아비젼트립소감(박판성성도)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3.06.20 조회수694
캄보디아 장년 3차 비전트립 소감문(세번째)

박 판 성 성도

캄보디아..! 캄보디아라는 나라는 올해 1월에 딸과 아들이 캄보디아 비전트립을 다녀온 후 매일 같이 들었던 나라였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서 그런지 장년 캄보디아 비전트립을 간다고 했을 때 지원할 생각이 없었다.
캄보디아에서 희망의 학교 아이들하고 놀아줄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서 고등학교를 짓는 것을 도와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아내의 설득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은혜 많이 받고 오라는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공항으로 떠났다.
처음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했을 때 덥고 습한 공기에 숨이 턱하고 막혔다. 딸아이가 ‘캄보디아 진짜 덥다.’라고 말은 많이 해줬었는데 이렇게 더울 줄은 몰랐다.
원래 땀이 많은 체질이라 계속 땀이 났다. 말로만 듣던 희망의 학교를 처음 가본 날 아이들이 나와서 환영해 주었다.
이렇게 열악하고 좋지 않은 빈민가에서 사는 가난한 아이들의 얼굴 표정이 무척이나 밝은 것이 신기했다.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난 후 일을 시작했다. 참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드릴로 깨고, 돌도 나르고, 블록도 나르고... 땀을 정말 많이 흘렸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가만히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흘러내릴 만큼 더운 날씨에 버티기가 힘들었다.
나만의 비법으로 수건을 뒤집어쓰고, 그 위에 모자를 써보아도 더운 날씨는 여전했다. 계속해서 일을 하고 호텔로 돌아와서 예배를 드리고는 바로 잠 들어버릴 정도로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이 고등학교에서 공부할 것을 상상하며 전력을 다했다.
수요일은 페인트칠을 했다.
나는 노란색 페인트를 칠했는데 놀이터의 미끄럼틀을 칠했다.
오동철 장로님은 빨간색 페인트를 칠하시는데 한 번도 쉬지도 않으시고 칠하시는 모습이 계속해서 쉬었다가 하는 나와는 비교되었지만 끝까지 열심히 칠했다.
앞으로 아이들이 깨끗하게 칠해진 놀이터에서 놀 것을 생각하니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목요일은 희망의 학교에서의 작업일정을 모두 끝내고 희망학교 주변 빈민촌을 돌아보았다.
딸과 아들에게 이야기 들을 때 굉장히 물이 많고, 다 더러운 물이라고 들었는데 비가 안와서 그런지 물이 많이 말라있었고, 물이 있는 곳에도 나무판자 같은 것이 다리처럼 되어 있어서 어려움 없이 건널 수 있었다.
빈민촌은 우리나라가 과거에 어려웠을 때를 보는 느낌이었다.
집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 아이들의 미소를 본 많은 분들이 그랬을 것이다. 나는 이 빈민촌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면서 하루에 얼마나 웃었을까?
주어진 환경에 순종하고, 긍정적으로 사는 태도를 배우게 되었다.
오후에 우리는 뚤슬랭으로 갔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200만명의 지식인과 부유층을 죽인 이런 엄청난 일들이 캄보디아에 일어났다는 것이 너무 끔찍했다. 기도가 많이 필요한 땅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생각해본 캄보디아는 나에게 많은 의미로 다가왔다.
희망의 학교가 있는 빈민촌은 우리나라의 5~60년대를 떠올리게 했고, 프놈펜 시내는 2013년을 느끼게 했다.
모든 시대가 공존하는 캄보디아 땅에 기독교가 자리를 잡고 성장하면서 그 나라에 부흥을 가져오는 상상도 해보았다.
어서 하루 빨리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들면서 나는 앞으로 보내는 선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가서 할 수 없으니 물질적으로 보내는 선교를 하며 주님의 일을 하고 싶다. 앞으로 또 캄보디아에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자녀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캄보디아로 매년 보내고 싶다. 아이들이 캄보디아 땅을 위해 기도했으면 좋겠고, 주님의 일을 하는 도구로 쓰임 받았으면 좋겠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