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2013년5월17일금요철야 공소대소감(안태희청년)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3.05.18 조회수747

나는 늘 내가 크리스챤이라고 말한다.


2년 전, 오랜시간 나를 괴롭혔던 많은 세속적인 것들을 끊었다. 금요일에는 클럽이 아닌 교회에 가고, 수련회에 가기 위해 연차를 쓴다. 이 모든 것이 나와 하나님과의 은밀하고 소중한 약속 때문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꽤나 열정적으로 신앙생활 하는 청년으로 보이고, 제법 그럴듯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실재로 내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한없이 부족한 나 자신으로 인해 아직도 부서지고 깨어져야 할 부분들이 퇴근길 강남대로를 한 가득 매운 차들처럼 빼곡하다. 대표적으로 관계에 있어서 그렇다. 나는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 나는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초라한 죄인이 된다. 가끔은 역으로 내가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상처를 주든, 받든 중요한 건 관계에 있어 여전히 나는 서툴고, 부족하고, 어리석다.



어느 날 나와 같은 바나바들은 공감소통대화법이라는 수업에 필수로 참석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강의명을 보고 공감하고 소통하고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마침 이 세 가지는 모두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었기에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수업에 임했다. 정말 아주 작은 기대였다. 첫 시간에 공감이란 말의 뜻은 상대가 원하는 말을 해주는 것이다.’ 라고 배웠는데, 나는 이 말에큰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공감이라는 것을 언제나 나 중심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흔히 공감한다라고 하면, 상대가 생각을 표현했을 때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정도로 인식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원하는 말을 해주는 것이 공감이라니공감에 대해 들으면서 마치 상대방이 나와 같은 생각을 얘기했을 때, 그래맞아! 공감해! 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다가가서 상대의 마음을 읽고, 그가 공감을 할 수 있는 말들을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같았다. 그러면서 상대방을 대하는 지난날의 내 태도와 모습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가끔씩 상대방이 무엇을 의도하는지 알고도 일부러 그 말을 해주지 않았었다. 상대방이 얄미워서, 때로는 귀찮아서, 어쩔 때는 나 자신에게 뭔가 여유가 없어서 그랬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모두 내가 이유였다. 내면의 질서가 어지럽기 때문에, 정돈되지 않고 흐트러져있는 감정과 생각들이 상대방을 향한 마음을 허락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반복되는 수업을 통해 상대방과 닿아있는 그 순간. 내 감정과 생각들을 이기고 상대방을 향해 사랑의 언어를 던졌을 때 어떤 놀라운 결과를 낳는지 알아갈 수 있었다. 매주 수업이 끝나면 일정한 시간 동안 소그룹으로 모여 한 사람을 여러 사람이 칭찬하고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시간이 있는데, 나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잘 모르는 상대방을 만났을 때 필사적으로 상대의 장점을 찾아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이 어찌나 감격스럽던지사실 친구들이 칭찬하고 격려해줬던 장점들 중에는 그동안 나 스스로 고치고 싶고 바꾸고 싶어 기를 쓰고 노력했던 많은 부분이 들어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그런 부분들을 칭찬 해줄 때면 마치 내 노력을 알아준 것 같아 정말 큰 감동을 받곤 했다. , 아직은 이것들이 진정한 나의 장점이라고 할 수 없지만, 언젠가 반드시 이 부분들을 진짜 내 장점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의지와 결단이 함께 찾아왔다. 매 시간마다 위축된 영과 육이 위로 받고, 격려 받고 눈물이 날만큼 가슴 찡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공소대를 배우는 목적은 상대방을 살리기 위함이다. 상대의 영혼을 기분 좋게 해주고 힘을 얻게 도와주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결국 내가 산다. 내가 살면 나는 또 다른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 결국은 누군가를 세워줌으로 나도 세움을 받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섬기고 세우는 일에 시간과 열정을 쏟는 것이.


그리고 나와 이곳에 있는 청년들이 그 방법을 배우기 위해 모였다는 게.


 


두 달이 조금 넘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강사님들의 훌륭한 가르침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방법과 이해하는 방법. 그리고 내 감정과 기분을 뛰어넘어 감사의 단계까지 나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그러나 방법을 배웠다는 것보다 이 일들의 필요성을 인식함이 나에게 더 큰 의미를 주었다. 문득,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라는 한 구절의 노래 가사가 맴돈다.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내 안에 내 생각, 내 감정, 내 욕구들이 가득차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전에 먼저 내 속을 비우는 연습을 해야겠다. 누군가 내 안에서 쉼을 찾고 나로 인해 그 영혼이 힘을 얻는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크리스챤으로서 세상속의 내 모습이 늘 부끄러웠는데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달려주고 격려하여 그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뛴다.


이 귀한 가르침을 나눠서 더 많은 이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싶다. 사람은 깨달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대로 산다고 했다. 결국 내가 아무리 귀한 가르침을 입어도 그것을 온전히 내 삶속으로 적용 시키지 못하면 그것은 시간에 밀려 사라지고 만다. 배웠으면 실천해야 내 것이 된다. 머리로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행동으로 해야 한다.


 


나의 이 결심과 앞으로의 사역을 우습지만 스스로 응원하고 격려한다. 태희야 넌 할 수 있어 임마. 잘 안되면 더 많은 시간 노력하고 부딪히며 씨름할거다. 왜냐면 나는 크리스챤이니까.


끝으로 공감소통대화법을 통해 귀한 깨달음을 주시고 멋진 도전을 심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늘 최고이신 그 분의 방법과 일하심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