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2012년10월5일이사무엘,오윤미(네팔선교귀국보고)소감문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2.10.06 조회수1101




네팔 선교 귀국 보고 및 소감문



이사무엘, 오윤미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한 실내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슬레트를 이어 만든 지붕에는 중간 중간 반투명한 비닐을 놓아 햇빛이 새어 들도록 했습니다. 이 비닐을 통해 실내로 스며든 카트만두의 겨울 햇살은 그저 앞사람의 실루엣 정도만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먼지와 얼룩으로 뒤덮인 차가운 바닥에 사람들이 웅크린 그림자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난방이 전혀 없는 작은 예배당 안엔 사람들의 입김이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왔습니다. 찬양이 시작되었습니다. 악기도 연주도, 그 무엇 하나 우리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괜찮은 것이 없었지만, 사람들이 입을 열어 찬양을 시작했습니다. 낯익은 멜로디, 언어는 달랐지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을요. 알 수 없는 문장들 속에서 분명히 들려 오는 한 단어 “예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외따로이 떨어진 이 땅에서도 사람들은 예배드리고 있었습니다. 비록 말은 달랐지만 우리는 함께 찬양하고 예배드렸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도 예배 받으시고 계시다는 사실이 감격이 되어 가슴 가득 한없는 뭉클함이 있었습니다. 주의 만찬을 나누었습니다. 포도주도 없고, 포도 쥬스도 없어, 포도 맛이 나는 아이들이 먹는 불량식품같은 가루를 물에 타 만든 성찬식 포도주를 나누어 마십니다. 이 곳에도 주님을 기념합니다. 말도 글도 생긴 것도 다른, 온통 다른 것 투성인 이 땅에서도 우리 주님을 기념합니다. 그 사실이 가슴을 때리고 적십니다. 어둡고 비좁은 예배당 안에서 온 세상 만민이 주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꿈꾸고 보게 하십니다. 저의 인생에 이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시간을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사무엘, 오윤미입니다. 저희는 청년부 파송으로 지난 1년 반 동안 네팔에서 지내며 선교를 경험하고 돌아왔습니다. 네팔에서의 삶과 감사를 오늘 이 시간 여러분과 함께 짧게 나누고자 합니다.



저희는 2006년 여름 함께 선교한국 대회에 참석했었습니다. 일주일을 그 곳에서 보내고 마지막 날 저녁집회에서 최소한 2년 동안 떠나는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서원서를 작성했었습니다. 그 날, 그 하룻밤의 사건이 늘 마음 속에 떠나지 않았고 주님 앞에서 했던 그 서원을 지키고 싶은 소망이 있었기에 아내와 늘 그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팔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네팔 공항에 도착한 순간, 저희의 눈 앞에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인 네팔은 정말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사실 한반도 보다 조금 작은 땅인 네팔은 선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힌두 왕국으로 불리며 인도와 함께 힌두교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서쪽으로는 이슬람 세계로 들어가는 길목이며 북쪽과 동쪽으로는 불교문화권과 접해있는 곳입니다. 세계 4대 종교 중 3대 종교가 만나는 교차로 같은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팔이 복음화 된다는 것은 힌두, 이슬람, 불교 문화권에 복음의 문을 여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인 것입니다. 하지만, 네팔은 복음을 전하기 쉽지 않은 곳입니다. 인구의 90% 이상이 힌두신자 이기 때문입니다. 힌두교의 가장 무서운 점은 3억 3천의 신이 있다는 그들의 말처럼 범신론을 믿기 때문에 다른 종교들이 힌두교 안으로 흡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네팔에 있는 크리스챤 중에서도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하는 그들이 유일하신 구주가 아닌 많은 신들 중 하나로 여기며 믿는 경우가 꽤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오래도록 이어져온 힌두교의 문화와 사상 때문에 기독교가 박해 받는 나라입니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뀐지 10년 가까이 되었지만 여전히 헌법 조차 수립되지 않아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세계 10대 빈국에 들만큼 가난한 나라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외국으로 떠나가서 나라의 발전이 더욱 더딘 상황입니다.



이러한 네팔에서의 생활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느리고 불편하고 무법천지였습니다. 사람들은 약속을 어기기 일쑤였고, 제때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정전도 매일 일어났고 심할 때에는 하루 20시간 이상 전기가 없기도 했습니다. 물도 부족하고 그나마 있는 물조차도 우물에서 끌어올린 불순물이 많은 더러운 물이었습니다. 가스와 기름이 동이나 연일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고, 극우힌두세력의 기독교 단체를 향한 폭탄테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지진이 일어나 집이 크게 흔들리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하루하루 건강하게 살아남는 것 자체가 그 당시에는 저희의 임무같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날마다 생활의 아주 작은 것들이 기도제목이었고 한국에서는 매우 사소했던 것들이 중요하고 감사한 일들이 되어 갔습니다. 매일이 훈련의 시간이었고 매일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끼고 알아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초기에 정착을 도와주신 선교사님께서 방향을 잘 설정해주신 덕분에 저희는 네팔어 훈련에 집중하며 네팔에서의 선교사역의 경험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고아원에 가서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습니다. 네팔의 학교에서는 음악, 미술, 체육 같은 예체능 수업이 없기 때문에 자칫 메마를 수 있는 아이들의 정서를 고려하여 영화감상, 레크리에이션 등을 통해 그 시간만큼은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쉬고 놀 수 있도록 돕는 일들을 하였습니다. 네팔 현지 아이들 뿐만 아니라 한인교회 성가대와 MK(missionary kids)라 불리는 선교사 자녀인 아이들을 중고등부 교사로 도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성경번역 선교회 소속의 선교사님이 진행하고 계시는 라디오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도 주셨습니다.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네팔은 국토의 85% 이상이 산악지대입니다. 때문에 신문이나 TV, 도서와 같은 미디어 보다는 작고 가벼워서 휴대하기 편한 휴대폰 내장라디오를 가장 사랑하고 즐겨 듣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팔에서는 라디오가 가장 중요한 대중매체입니다. 특히 지방인 경우에는 문맹률도 높기 때문에 라디오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선교 사역의 중요성이 매우 큰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중요한 사역에 동참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이 곳 라디오 방송국에서 현지인 스테프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집중했던 것은 네팔에 있든지 또는 네팔을 떠나든지 어디에서나 네팔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소망이 저희에게 있었습니다.



네팔에 처음 도착 할 때만 해도 ‘나마스테’ 이 한 마디 말고는 전혀 네팔어를 할 줄 몰랐었는데 일년 반만에 일상의 의사소통 뿐만 아니라 네팔어로 성경공부를 진행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경험과 배움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네팔로 떠나기 전 저희의 마음 속에는 ‘어려운 나라라 우리가 도우러 간다.’,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하러 간다.’, ‘우리가 주님께 했던 약속들을 지키러 간다.’라는 마음들이 알게 모르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네팔에 살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 덧, 방문자에서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어 가는 우리, 고아원 아이들의 “형”, “누나”, “오빠”, “언니”가 되고 도움을 주는 사람만이 아닌 도움을 주고 받는 이웃이 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선교란 떠나기 전 생각했던 것처럼 일방적으로 마치 나만이 많은 것을 그들에게 베푸는 것만이 아닌 그 땅에 거하며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이웃이 되어 그들과 함께 사는 것. 그들과 특별히 구분되어지지 않고 그들과 함께 앉아 예배드리는 것. 그들과 부둥켜안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 그들의 일상을 나 또한 살아보며 그들의 아픔과 기쁨에 대해 깊이 이해 해 보는 것. 그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네팔에 가기 전에는 비록 힘들겠지만 이 2년의 시간을 잘 보내고 나면 한국에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더 크고 많은 것들로 갚아주시겠지 하는 생각들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네팔로 떠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은혜와 감사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히말라야 그 오지에서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드려지는 현장을 생생히 목격하는 그것.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이루어져 가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생생히 피부로 느껴지는 것들을 목격하며 그 어떤 것 보다 큰 감격과 감동을 느꼈습니다. 매일 매일 힌두의 우상에게 제사와 제물을 바치는 이 우상의 땅에 예수 이름 앞에 함께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우리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이 곳에 있다는 사실.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여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라 고백하는 그 사실이 늘 가슴을 떨리게 하고 정말 이 땅에 살아있는 것이 그리고 이 땅에 오게 하신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언어와 타문화를 배우며 선교적 역량을 쌓게 하셨고, 많은 선교사님들과 교제하고 현장 방문을 통한 배움과 현지인들과 함께 일한 경험을 통해 앞으로 저희 가정이 살아가야할 선교적 삶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한 선물, 저희에게 아이를 주셔서 뱃 속에 아이를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많은 분들의 사랑의 기도와 후원이 있었기에 저희 부부는 네팔에서 건강히 지내며 많이 배울 수 있었고, 하나님을 더욱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머리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큰 사랑에 빚진 저희 가정은 평생토록 성실하게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통해 주신 큰 은혜를 낮은 곳으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웃들이 있는 그 곳으로 끊임없이 흘려 보내겠습니다.



이제 시작임을 깨닫습니다. 선교 현장에서 배운 현지 언어, 경험, 교훈 등을 잘 새기고 활용하여 평생을 선교적 삶을 실천할 수 있는 저희 가정만의 계획을 잘 세워 나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요. 또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 또 다음 세대들과 이러한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선교적 삶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일들을 해나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세기 12장 1절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75세가 되도록 그가 살던 본토를 떠나라 하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떠난다는 것. 그것은 설레이는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닿을 그 곳이 어디인지 모를 때, 또한 그 곳에 우리가 아는 그 누구도 없을 때 우리는 걱정과 염려, 그리고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네팔로 떠날 때만 해도 1절까지만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겨우 2절과 3절을 묵상할 수 있는 근육이 생긴 느낌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모험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책에서 저자인 폴 투르니에는 말합니다. 『인생이란 하나님이 지휘하시는 모험이다』. 우리의 지휘자 되시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리며 그 분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