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조희정 집사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0.04.02 조회수2486


나의 신앙간증문


(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순종교구. 251셀. 조희정 집사



지난 주일예배시 목사님의 설교가 정리될 즈음, 내안에 성령님께서 “나누라”는 강한 느낌을 주셨다. “예? 무얼 나누나요? 하고 물었지만, 그냥 ”나누라“는 말씀뿐이었다. 무슨 특별한 간증거리가 있는 시점이 아니기에 생소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내게 깨닫게 해주시기를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한 사람을 이끌어 가시고 기업을 얻게 하시는지를 알리라는 것 같았다. 그리 대단해서도 굳이 내세울 것이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은 무한한 자비와 인내와 사랑과 능력이 있으시기에 내 삶속에 계셨던 그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순수하고 개구졌던 12살 소녀에게 성추행과 따돌림이란 크나큰 상처는, 혼자 감당해 내기 어려웠던 일이었다. 시골에서(그 당시 신갈은 아주 시골이었다) 예쁘장하고 똘똘하고 재능이 많던 여자아이는 선생님들과 남학생들의 애정을 많이 받았다. 그것이 내게 그리 좋은 기억이 되지 못하는 것은 그로인해 거친 머슴애들의 귀찮은 장난이 잦았고, 유독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아 친구들의 질투로 속앓이를 많이 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왕따와는 다른 성격의, 따돌림의 상처로 사람들에게 깊이 있게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이 만들어진 듯 싶다. 그 때는 그것이 얼마나 큰 상처였는지, 도시락을 혼자 먹기 싫어 버리고 오는 때도 있었고, 가끔씩 눈치를 보는 버릇이 생겨난 듯 싶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아이들도 서로 성숙되지 못했기에 그랬던 일들인데, 내겐 그 아픔을 오랜 세월 묻어두고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상처로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때 주님이 내 곁을 지켜주지 않으셨는지, 왜 그 일들을 막아주지 않았는지 원망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게 홀로 있는 시간들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찾을 수 있었고, 그 분과의 교제를 더 깊이 갖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외 여러 아픔 속에서도 고등부때 수련회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교회가는 것이 너무 재미있는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주일에 자율학습을 나오라는 학교 방침을 어기고 예배 드리는 것이 너무 즐거워, 선생님이 “너 그럼 대학 떨어진다”는 위협(?)에 “제가 주일날 교회에 가서 대학에 붙으면 선생님이 교회 다니셔야 되요!” 하며 배짱을 부리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그 시절 함께 봉고차를 타고 학교에 다니던 친구들이 시험 전 77주를 마시라고 했지만 마시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대학에 붙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학창시절, C.C.C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유독 작고 똘똘했던-성격은 많이 독특했던-남학생이 따라다니며 내게 그렇게 귀찮을 정도로 성경을 가르치려 애썼는데, 그 당시 그 친구는 내게 구속사적인 성경관과 예수님의 이름에 대해 늘 설명해 주었고, 성경을 창세기부터 풀어주었다. 어느 하루 성경이 이해되기 시작하자, 세상이 달라 보였고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행복했었다.


청년의 시절, 교회를 열심히 섬기던 중, 내 인생의 어두운 3막이 시작되었다. 약 15년전쯤 교회마다 어둠의 영들이 목회자들을 공격하며 흔들어 놓았던 시절, 나의 친정 교회에도 여러 좋지 않은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났었다. 그 때는 목사님이 옳지 않았던 것 같아 많은 사람들이 기도보다도 행동에 참여했었고, 교회가 둘로 갈라서는 아픔을 겪으며 교인들이 시험에 빠지기도 했다. 어쨓거나 하나님이 세우신 종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길 구했어야 했는데, 그로인해 목사님도, 교인들도, 교회도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고, 혈기를 부리던 어떤 이는 죽었고, 누구는 망하기도 했으며, 많은 교인들이 어려움에 처했다. 나또한 긴 방황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교회를 흔드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이었다.


수년의 방황 속에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세상의 것들을 즐거워하고, 겉과 속이 다른 크리스챤들을 보며 시험에 들기도 하고, 내가 내 규칙을 만들어 그것이 하나님의 법보다 때론 더 맞는 것이라 여기기도 하며 어둠속에 나를 던졌다. 고3때 당한 교통사고로 휴우증이 생겨 뼈가 뒤틀려 신경을 눌러 죽고 싶을 만큼 아픈 적도 있었고, 세상 속에서 이중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기가 싫어 내 삶을 포기하려했던 때도 있었다. 거짓과 속임수와 술수와 경쟁의 세상은 내가 살기엔 너무 버겁고 의미가 없었다. 한줄기 빛!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사실 외엔 모두 부인하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기로 결심했다. 도대체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믿어보자 하고 1년 반 동안을 집에서 성경만 읽었다. 청년의 시기이기에 자립을 해야 하므로 과외를 하며 용돈을 벌고 나머지 시간은 성경만 보았다. 내 나름대로 주석을 달며 연대기를 맞혀보고 고민하고... 그러기를 1년 반. 4년여의 긴 방황이 끝을 맺어가고 있었다.


성경이 그리 어려운 책이 아니며, 우리에게 너무도 어렵게 전달되고 있었다는 느낌.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을 만드셨는데 죄가 들어와 우리를 이렇게 고통과 어둠속에 살게 했다는 사실... 그 죄로 인해 내가 힘들었다는 사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는 우리를 자유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을 깨닫고 방황을 끝내며 찬양의 고백을 드렸다.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찬양, 내 온 몸으로 주를 찬양해.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찬양, 내 온 맘으로 주를 찬양해. 예전에 내가 내 삶을 포기 하려 할 때 무엇이 그리 날 힘들게 했는 지, 이젠 내안에 하나님의 형상 찾았으니,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네. 태초에 생긴 그 죄의 가시가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아프게 하네. 그러나 우릴 향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이 우리를 죄와 고통에서 건지셨네~~~.


이 후에 하나님께선 청소년과 놀이 문화 연구소와 열린문 사회복지센터를 연결해 주셔서, 그곳을 통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아이들을 만나게 하셨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해 주셨다. 하나님이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니 이 사람이 하나님이 붙여 주신 사람이라는 믿음만 있으면 결혼하겠다고, 어쩌면 엉뚱한 결정을 하고 시작된 결혼 생활. 남들은 남편이 잘생기고 씩씩하다고 했지만 난 그의 어두움이 먼저 보였다. 그 사람을 품어 주라는 뜻인가 하고 살았지만, 너무도 다른 생각과 환경의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내겐 너무도 힘겨운 일이었다. 지금 먼저 말하지만, 지금 나의 남편은 내게 있어서 최고이다. 작년 RTC때 나누었던 여러 어려움들로 우린 이혼의 위기에 까지 다다랐다. 나를 지켜주지 못했던 남편이 미웠고, 물질로 나를 너무 힘겹게 했던 시간들. 차가움과 무관심으로 나의 상처를 더 크게 하는 것 같아, 이혼 외에는 내가 살길이 없는 것 같아서 그렇게 결심을 하고 여행을 떠난 다음날부터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붙여 주신 사람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시작한 결혼 생활인데, 나를 돕는 배필로 세워주신 것인데, 나는 나의 상처와 저 사람의 상처로 인한 그의 모습을 온전히 품어주지 못했다.


끝내 사업을 통해, 내가 어렵사리 장만한 집을 한 순간에 날려 보내며, 그 큰 골은 더욱 깊어져 회복할 길이 없을 때, 하나님께선 나의 남편을 만지시며 생명샘 교회로 옮기시고, 아버지학교, 치유프로그램, 받아주기 훈련 등, 또 믿음의 좋은 선배들을 만나 변하게 하셨다. 5분이상 대화할 수 없었던 나의 남편이 나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했고, 책 한 장 보면 잠들던 사람이 일주일에 한권을 독파하며 생각과 언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조금씩 변화되자, 희망이 생겼고 나 또한 교회에서 배운대로, 지지와 격려로 뒷받침해주었다. 물론 그 사이에도 갈등과 다툼은 있었지만, 그 횟수와 깊이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었다.


이혼 결심을 한뒤 3년이 지난 지금, 남편한테 장난섞인 어조로 “내가 3년전 도장을 찍었다면 우린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묻자 “그럼 훈련 대장을 버렸으니 광야 생활 더 오래 하는 거지 뭐” 하는 소리에 서로 배꼽을 잡고 웃었다. 틀린 게 아니었다. 남편 때문에 내가 힘들었다고 생각했지만 내게 있는 흠들을 깎으시느라 그를 붙여 주신 이유도 있었다는 것을 알고 얼마 전 나는 남편에게 고백했다. “당신 때문에 죽을 것 같이 힘들었는데 그로 인해 내가 더 단련이 되어져서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이제 당신에게 고맙네” 라고.


몇년전 “하나님, 정금이 아니라 도금이라도 괜찮으니, 이제 훈련 좀 그만 시키세요!” 하며 셀식구들과 함께 날마다 울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늦게 둘째가 생겨 젖먹이던 내가 분유를 사들고 와 친정엄마에게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거 먹이세요” 하며 건네 드리던 때도 생각이 난다.


27살 즈음, 카톨릭 상담대학원 시험이 있던 날, 평생 가보지 않았던 응급실에 실려 갔었다. 늘 생각이 많고 조숙하여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이 상담을 하러 찾아오는 일이 잦았기에, 내가 갈 길이 상담쪽인가 싶어 지원했는데, 하나님께서 막으셨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이유를 알것 같다. 내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많은 것을 잃어 슬퍼하는 사람, 깊은 병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 남편과 자식 때문에 숨막힐 정도로 힘들어 하는 사람, 물질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내가 한낮 학문이란 이름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서 사람을 죽일뻔 했구나...싶다.


며칠 전, 시아버님의 기일이 돌아와 시댁의 엉뚱한 문화를 바꾸고자 열심히 기도했다. 돌아가시기 몇일전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도의 이름으로 납골함에 기록이 되 있는데, 고집이 세신 큰 형님이 계속해서 제사를 드리셨고, 몇해전 제기까지 사 들고 오셔서 그 마음을 더 완고하게 하셨다. 그러니 음식을 차리고 제사를 드리고, 그 제사가 마쳐진 뒤 추도예배를 드리는... 추도 예배를 드리게 된 것도 남편과 어머님을 설득해서 몇 년전부터 드리게 되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문화를 버리자 싶어, 남편과 함께 기도로 준비했다. 그런데 하루 전 어머님이 상에 놓으려니 전을 부쳐오라는 말씀에 우선 순종하는 마음으로 “네”하고 말을 했지만 마음이 좋진 않았다. 음식을 준비하면서도 “하나님, 이 음식을 먹는 자들마다 예수의 보혈로 인쳐 주소서”하고 기도하며, 당일 제기도 일부러 내가 닦겠다하여 그릇마다 닦으며 “빛이 있으라! 내가 다음부턴 너를 다시 보지 않으리!”하며 상차림을 도왔다. 제사가 시작되었을 때, 왜 그리 시숙님과 서방님이 초라해 보이는지. 그 후 추도예배를 드리는 데 영권이 이제 이쪽으로 넘어왔음을 느꼈다. 둘째 시숙님께 부탁했던 예배 말씀이 ‘시편1편! 복있는 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좇으며...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하는 그 말씀.


예배를 마치고 다시 전도할 기회를 찾았다. 늦었으니 빨리 가라는 식구들의 말에 잠시 서방님의 어려운 상황이 어떻게 잘 마무리 되시는 지 물으니, 그냥 얼버무리시는 통에 “이 때다” 싶어 다시 말씀을 전했다. “천지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 분이 형님들도 만드시고 죄로 인해 어그러진 것들을 예수님을 통해 회복하시는 것에 관해 이야기 하고, 우리 남편과 가정과 물질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간증하며, 얼마 전 목사님의 말씀 중에 기도로 안되면 섬기라는 말씀이 기억나, 저희가 어머님의 말년을 책임질 테니, 모든 부담을 내려 놓고 하나님 안에서 한 마음으로 서로 격려하고 지지하고 살리는 삶을 살자. 지금 큰 시숙의 병도 서방님의 물질로 인한 어려움도 다 하나님이 싸인해 주시는 걸지 누가 아느냐하며 앞으로 어머님과 형님들을 더 잘 섬길테니 이런 제사 문화는 이제 없애버리자는 말에 그렇게 고집 센 큰 시숙께서 멋쩍게 웃으며 “예...” 하시는 게 아닌가... 그 다음날 남편이 테라피 다녀온 간증을 하며 서방님께 교회에 다닐 것을 강하게 권면했는데, 저녁에 막내 서방님한테 전화가 왔다. 교회에 다니기로 결단했으니 좋은 교회를 소개시켜 달라하셔서 남편이 그 근처의 좋은 교회를 소개해 주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힘들던 것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포기하려 했던 내게 너무도 귀한 것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부끄럽고 죄송스럽습니다. 홍해를 건넌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수차례나 보고도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지 못했던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훗날, 예수님과 공중에서 만나 혼인잔치를 할 때, 신랑은 권세있고 능력있는 분으로 오시는 데, 신부된 교회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서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생명샘 교회는 확실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고, 살리는 성령님이 거하시는 곳임을 믿는다. 이 교회가 예수님의 이야기와 간증으로 넘쳐날 것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전초 기지로 세우셨음에 확신하기에 부끄럽고 어리석었던 나의 이야기를 통해 성도님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