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는데도 점수를 매긴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우리 집은 왜 이리 시끄러운지 통 공부할 분위기가 안돼” 라고 우리 집 아이가 말할 때 어떻게 대답을 할까?
‘야~ 뭐가 시끄럽다고 그래? 공부하기 싫으니까 꼭 남 핑계를 댄다니까!”
라고 맞받아쳤다면 아무리 내가 부모라도 1점짜리 답을 한 것이다.
“참고 해야지! 공부는 어렵게 해야 쏙쏙 들어가는 거야” 는 2점.
“그래. 주변이 시끄러워서 공부가 안 된다는 것이지?”가 3점.
“공부하는데 시끄러워서 짜증이 날만도 하겠구나. 식구들이 좀 조용히 해주었으면 좋겠지?” 라고 했다면 당신은 거의 하산 경지에 도달한 셈이다.
그러나 최고점수 5점은 아래의 예가 될 수 있겠다.
“아이구, 시끄러워 집중이 안되어 많이 힘들었구나. 환경적인 뒷받침을 못해줘서 정말 미안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공부에 열심을 다하는 네 모습을 보니 정말 기대가 되는구나”
이게 바로 살리는 언어이다.
이게 바로 내 주위에 구름같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게 만드는 시크릿이다.
샘파 인카운터 1박2일 프로그램 중 담임 목사님께서 이번 40기는 특별히 매우 귀중한 강좌를 개설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게 바로 받아주기 (관계훈련) 과정이었다. 말씀하신 바로 다음날부터 시행되는 신속함!
이번 경제위기에 우리나라에 가장 아쉬운 부분인 ‘즉각적인 실천’ 그 자체였다.
샘파를 마치고 내가 속한 자비조는 계속 만남을 유지하자고 의견이 모아졌고 40일이 지난 현재 온라인에서는 네이버 카페를 통해서, 공간적으로는 매일
서로 나이도 다르고 신앙관도 다른 남자들이 만나 수다에 가까운 대화들을 하며 서로 이렇게 가까워지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던가 하고 생각해 봤는데 교회? 믿음? 구성원? 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과연 뭘까!
받아주기 첫번째 강의에서 그 비결을 알아버렸다!
선배 졸업생(?)들의 시범 토크를 신입생 우리는 관전을 했는데 대화가 거듭될수록 세상의 그 어떤 대화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또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고 하는 그런 그룹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 내겐 큰 발견이고 놀라움이었다. 감동적인 대화가 바로 내 앞에서 오고 가고 있다!
다수의 다른 이로부터 거듭 칭찬을 받은 저 집사님은 얼마나 행복할까. 인생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요, 아주 큰 격려가 될 것이 분명하였다.
과연 비결은 무엇일까!
앞서 예로 든 대화 중 3점, 4점, 5점의 대화 기법을 사용하다 보면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
우리가 샘파에서 그토록 물 흐르듯 대화하고 공감하고 감동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공감기법, 받아주기가 생활화되도록 훈련된 사역자들, 즉 리더 부리더의 이끎에 바로 비밀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 말고 꾸나, 겠지, 감사 가 있는데 (100개의 사례를 만들어 내야 하는 숙제를 아직 마치지 못하여 중압감이 있지만..)
‘꾸나’는 예를 들어 “큰 아이가 시끄러워서 공부를 잘 못하는구나!” 하고 있는 그대로 혹은 상대가 얘기한 내용을 그대로 반복해 주는 것 이다.
‘겠지’는 추측할 수 있다시피 ----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라고 이해하는 것이며 감사는 ---- 했음에도 감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하는 것 이다.
놀라운 사실은 상대방이 얘기한 것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넣지 않고 말 한 그대로를 되풀이 말하는 것만 해도 3점의 대화가 되는 것이며 이것 또한 ‘살리는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몇 주의 과정을 공부했고 드디어 실전 토크 시간이 되었는데 시쳇말로 ‘완전 대박’ 이었다.
대화가 거듭될수록 감동이 더해졌고 은혜를 느꼈으며 흐뭇해졌고 또 눈시울이 뜨거워 졌던건 나만의 체험이 아니었다. 거기 모든 분들의 공통된 감동이었음이 나중 소감을 통해서도 분명해졌다..
살리는 언어! 바로 거기에 그 비결이 있었음을 몸소 느낀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또, 지난 주에는 칭찬하기 실습이 있었다. 한 사람을 두고 나머지 그룹 모두가 각각 칭찬을 하는 형식이었는데 이 때 또한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표현과 칭찬과 격려와 위로가 있었다.
소감 중에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는 표현이 적지 않았을 정도로 마음이 들뜨게 되어 잠을 이루지 못할 멋진 주일 밤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담임목사님께는 ‘브레이크와 핸들이 고장 난 분 (누구도 막지 못할 열정)’이라는 평가가 있었고 모 권사님은 ‘사랑으로 코팅이 되어 고난이 와도 굴러 내릴 것’이라는 아름다운 평을 어느 집사님께 선물하셨다.
또는, ‘군고구마 아저씨처럼, 천 원어치 사면 하나 더 주실 것 같은 포근한 분’, ‘닮고 싶은 엄마 같은 분’, ‘온실 속의 3월의 개나리 같은 분’ 등등의 감성적인 표현이 마구마구 생산이 되는 것을 보며 우리 스스로도 놀랐다. 아니 우리는 정녕 초짜가 아니던가! 그러나 불과 몇 주 만에 선배님들이 선보인 것 못지 않게 우리도 할 수 있구나 라고 자신을 갖게 되었다.
담임목사님께서 개발하신 프로그램이고 또 저자 직강 중인데 역시 백미는 목사님의 최종 강평이다.
우리 생각에 흠잡을 수 없는 대화였다고 생각했는데도 하나 하나 복기하시며 미흡한 부분을 상상도 못할 예리함으로 집어내실 때 ‘살리는 언어’ 강좌를 창안하신 달인의 경지를 엿볼 수 있었다.
자신의 종교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설문에서는 개신교가 으뜸이었으나 개신교 NGO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지난달 일반인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가장 신뢰하는 종교를 묻는 질문에 '개신교'라고 답한 사람이 18%로 천주교(35%), 불교(31%)보다 훨씬 적었다. 개신교만 놓고 "신뢰하느냐"고 물었더니 '신뢰한다' 18%, '신뢰하지 않는다'가 48%였다. 종교 별 호감도도 불교(32%) 천주교(30%)가 개신교(21%)보다 높았다.
많은걸 반성하게 만드는 조사 결과이다.
내가 배운대로 주위에 실천할 때 그리고 그 말에 대한 합당한 행동으로 이어질 때 주위에서 크리스천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되고 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본 받아주기 강좌의 선생님으로 섬기시며 주일 오후반, 저녁반 두 강좌를 이끌고 계시는
P 집사님께 머리 숙여 감사 드린다. 참으로 주님 보시기에 좋으실 그러한 열정으로 우리를 이끌고, 탁월한 재치와 능숙한 강의로 감동을 주시는 정말 멋진 사역자 이시다!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부분까지 공부하시고 또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파하여 세상을 살리겠다는 일념을 몸소 실천하시는 목사님께 무한한 경외심을 가지게 된다.
심신이 파김치가 될 정도로 피로하실 주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