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인지 치유 테라피 소감문

작성자 ▷-°о。оº▶。о˚ 날짜2004.11.27 조회수4076

합작품


테리피에서 감격스러웠던 일은 말씀, 기도, 음악, 미술, 놀이등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이 한데 모여 조화를 이뤄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는 장이었습니다.


시너지효과가 대단했습니다.



 


여자에게 있어서 성폭행 당한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것은 ? 신뢰를 깨고 배신을 안겨 줄때 억울함과 분노와 피해의식, 무가치함, 죄책감, 모욕감,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 ...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어 아픔을 겪고 있는데 조롱의 눈초리와 비난의 손길까지 더해지니 참기 힘들어 주저앉아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게 되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피해를 준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일과 말이 나에게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었습니다.



 


사방이 막혀서 벼랑위에 서있는 느낌일 때 주위에 알려도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렸고 못 들은 척,  터 놓고 하소연한들 유익이 없을 것 같아 또 부끄러워 혼자 삭이며 지냈던 세월들... 자기 연민과 이루 형용할 수 없는 타는 목마름만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주위의 눈이 무서워 다가갈 수도 없어서 고통스러웠고 괴로운 마음을 전하면 혹여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을까봐 노심초사하며 아픔이 더 커질까봐 애태우며 숨죽이고 영상실로 피했던 사건들...


채우지 못한 욕심의 바벨탑을 쌓기 위해...


공허함을 다른 것들로 채우기 위해 버둥거렸던 시간들이, 적개심과 원한을 품는 마음이 끊임없이 계속 더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인간이 인간을 온전히 다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온 남녀가 균형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요즘에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대의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수용해야 된다는 사실을...




[분노감정을 표출하는 시간]


쓴 뿌리가 생겨 주님의 형상이 무너져 버려서 무성한 가시나무 숲처럼 나도 상처를 받고 남에게도 상처를 냈습니다.


삶이 버겹고 힘겨워... 답답하고, 나의 존재가 있으나 마나한 무가치한 존재인 것 같고, 허무와 공허함과 죄책감, 피해의식만 더해 가는 자신을 보면서 자신을 어떻게 사랑하고 보듬어야 하는 줄 몰라서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비난과 조롱의 손길만 더해지더군요......


 


하나님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었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아픔을 겪게 하십니까?


신명기 8장에서 고난의 의미를 되새김질 해 보았습니다


 ①나를 낮추시기 위해서


 ②시험


 ③마음이 어떠한지


 ④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⑤주리게 하신 이유?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들은 징계하신단다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바라신단다.




너무나 억울했고 고통스러웠고 한편으론 죄책감에 시달리고 심적으로 부담만 늘어갔습니다.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보이지 않았고... 전 제게 어려움을 주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다고, 공평하지 않다고 강하게 부정했었습니다.


과거에 했던 "꾸나, 겠지, 감사"나 "사고전환을 위한 기록지" 등의 인지치유 이론들은 죄책감과 심리적 압박으로 인해서 한 줄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임상을 주로 한 이번 인지 테라피는 달랐습니다.



어린시절 주님의 크신 사랑을 많이 경험하고 자랐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슬픔과 좌절과 분노로 이길 수 없어서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나 자신을 보고 허우적거렸던 시간들이 어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던 나 자신을 발견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 14:28)  이 구절을 대할 땐 불평하다 벌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될까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악기소리에 묻혀서 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안도감이 들자 감정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고, 속에 있는 응어리들을 터트릴수 있었습니다.  얼마간 터트리고 나자 주님을 불러보고 싶어졌습니다. 예전엔 부르는 것조차 쑥스럽고 어색하고 죄책감이 더해졌는데 진솔한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직시해서 감정일기를 쓰고 토설과 회개를 병행했더니 감정들이 점차 약화되어가고 주님과 하나 되어가는 일체감을 맛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감정들 죄책감, 죽고 싶은 마음, 우상숭배, 분노, 좌절, 원망, 저주들을 예수 이름으로 결박한다. 나에게서 떠나가라' 명령하고 선포했습니다.  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중요하구나! 진솔한 자기 고백과 회개를 했기에 치유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분노를 낼 일이었는데도 전보다는 덜 분노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해하고 포용하고 수용할 수 있는 힘이 길려졌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움 묵상]


 도덕적이고 의례적이고 제도적인 어머님의 태도들이 남편에게서 보여지고, 그런 남편의 요구가 있을 때는 어머니께 분노하던 감정들이 남편에게 투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도 알게 모르게 어머니에 대한 분노들이 아주 많았던 것같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있었지만 어머니에 대한 분노의 양가감정이 내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또한 그리움의 대상도 어머니였습니다.


 


찰흙을 뜯어서 강가에 하나씩 내던지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들을 내려놓았습니다. "모든 슬픔을 떠나가라"하고 명령하고 예수이름으로 결박하고 선포했습니다.




[행복과 비젼]


눈을 뜨면서 "오늘의 묵상은 행복과 비젼입니다" 하는 선 사모님의 고운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단 두 줄의 감사 조건도 쓰기 힘들어서 모임에만 가면 벌금을 내야했었는데...  완벽함? 때문인지 철자하나 받침하나 틀리면 부끄러워서 글을 쓰고도 제출하지 못했었는데... 심리적 압박에서 놓여나니 생각지도 못했던 글이 써지고 단어들이 생각이 나고...  많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뭐가 그리 감사하고 행복한지... 엔돌핀이 생기니 샘솟듯 마음이 즐겁고 기쁨이 넘쳐나 머리를 감으면서도 흥얼대기 시작했습니다. "행복도 생각하기 나름이구나!" 하루의 바이오리듬이 결정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생각을 바꾼다는 게 이렇게 쉽고 너무나 간단하구나! "




[자기한테 편지쓰는 시간]


자기와의 화해시간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나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인내하고 자신을 용납하고 기다려 주고 지지하기로 결단 또 결단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독이 되는 말, 부정적인 말은 마음 밭을 움푹움푹 패이게 하고, 마음속에 삐뚫어지는 말들이 생겨나는구나" 싶어서 되도록 쓰지 않아야겠고,  "긍정적인 말은 남을 살리고 마음속에 삐뚫어지는 말들을 곱게 다듬어 주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나를 찾고 발견하게 된 귀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 내 눈에 빛나는 단 한사람, "여보! 사랑합니다.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인생의 방향을 알려주시고, 가나안의 풍요를 알게 하시고 누릴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고, 마음을 이해해 주시고, 힘을 실어주시기 위해 노력하시는 박목사님! 감사드리고 존경합니다.




선 사모님과 스탭들!


허물과 아픔까지 감싸주며 하소연에 귀 기울여 주는 세심한 배려가 절망과 좌절의 늪에서 빠졌나오기 힘들었던  방황하는 나에겐 지팡이가 되었고 힘이 되었습니다.


 


계획하고 준비하신 여러분의 손길과 헌신이 보석처럼 귀하게 쓰였던 날이었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행복해지는 삶을 살기 위해 의식, 생각을 바꿔 양적으로 풍부하고 풍요로움이 넘치는 삶. 질적으로도 풍요롭고 정신적으로도 여유 있는 삶을 기대해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나누는 것부터 실천하겠습니다.


생명의 부양자로서 온전히 세워지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마음속이 삐뚫어지고, 부정적인 말들을 곱게 다듬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며 사랑하고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