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척수 장애인과 함께하는.......

작성자 이광미 날짜2003.11.12 조회수3835
2001/11/30 16:33
『이광미 집사의 생활 소감』

- 척수장애인과 함께하는『수레바퀴』4월호에서 인용

남편(이중호집사)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94년 2월의 새벽이었다. 영업용택시와 부딪친 남편은 의식을 잃 었고,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목격자도 없이 우리가 모든 사고의 책임을 뒤집어 쓴 체 보상은커녕 상상하지도 못하게 많이 나오는 병원비 마져도 우리가 감당해야만 했다. 그래도 이처 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전신마비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한 채 어떻게 해서든 일으켜 세 워보겠다고 막 장만했던 집을 팔고, 그래도 모자라는 병원비는 직장동료들과 친척들의 도움으로 메꿔 가며 재활치료에 매달렸다.
하늘이 무너지고 정말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병원에 더 있어 봐야 뾰족한 수가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아가게 되었고, 1년만에 형제들과 친척들이 어렵사리 마련해준 조그만 아파 트로 퇴원을 하였다.
그래도 병원에서는 의식주가 해결이 되어 남편만 보살펴 주면 되었지만 퇴원하고 보니 모든 것이 내 차 지가 되었다. 7살, 5살된 아이들은 1년만에 만난 나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남편은 남편대로 병원에서 처럼 규칙적으로 움직여 주길 바랬지만 식사 준비며 빨래며 집안 일들로 몸이 두 개라도 감당할 수가 없 을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큰일은 우리 네 식구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경제적인 문제였다. 머리 외에는 하나도 움 직일 수가 없어 24시간 돌봐줘야 할 남편을 두고 직장을 나갈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남편을 돌봐줄 사람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집에서 짬을 내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았다. 장난감 부품 조립하는 일 , 동네 분식집 배달 일, 새벽에 신문배달, 우유배달, 시험지 배달 일들을 해 보았지만 손이 많이 가고 몸이 지 쳐 가는 것에 비해 우리 네 식구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얼마간의 생계비라도 보조받을 수 있을 까 해서 거주지 동사무소에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고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해 줄 것을 사정해 보았지 만 분당지역은 중산층이 사는 지역이라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될 수 없으며 생활보호 대상자가 되려 면 산동네 지하 방이나 보증금 1천9백만원 자리 이하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구청으로 또 시청으 로 찾아가 하소연해 보았지만 똑같은 대답뿐이었다.
이런 중에도 연말이 되면 의료 보험 조합에서는 진료비 3천 5백만원을 갚으라고 전화로 또 내용증명으로 독촉을 해왔다. 교통사고 환자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데 의료보험을 적용하지 않으면 치료비가 워낙 비싸 도저히 감당 할 수가 없어 변칙적으로 의료보험으로 치료를 받았는데 그것이 부당 의료비 청 구로 판정돼 그대로 우리에게 빚으로 돌아 왔던 것이다. 언제까지 갚지 않으면 재산을 압류한다는 독촉 장은 이나마 살고 있는 집에 압류딱지가 붙을지 가슴철렁하게 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아득하기만 했다. 사방에 빛이라고는 한줄기 없는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이럴 바 에야 우리 네 식구 차라리 죽자고.. 몸도 정신도 이미 끝간데 까지 다 달아 악에 바쳐서 발버둥 치며 우는 날 이 많아졌다.
그러나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억하시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 같다. 어둠과 절망의 끝에서 주님 의 음성을 들었다. `이제 다 내려놓고 나만 바라 보라` 고, 그리고 `내게 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목사 님께 찾아가 문제들의 해결을 위하여 기도를 부탁드리고 동네 부녀회장에게도 찾아가서 우리집 사정 을 이야기하고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적 같은 일들을 보여주셨다. 그때까지 우리 집 사정을 몰랐던 부녀회장 은 그동안 도와주지 못해 오히려 미안하다고 통장과 반장들과 함께 동사무소에 찾아가 우리의 사정을 진정하고 도와줄 것을 부탁하였으며, 주민들과 함께 탄원서를 만들어 의료보험조합에도 진정을 해 주 었다. 그로 인하여 그 해 연말에는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을 받아 얼마간의 생활비를 지원받게 되었고 , 탄원서를 접수한 의료보험조합에서도 동사무소를 통하여 실사를 한 후, 3천 5백만원 전액을 면제해 주었 다. 정말이지 3년 내내 짓누르던 모든 문제들이 환하게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지금까지 문을 닫고 지내던 이웃들과도 정을 나누며 살게 되었다. 먼 저들 찾아와서 안부를 물었고 쌀을 주시는 분, 김치며 채소를 나누어 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또 미용실을 운영하시는 분은 우리 가족의 머리를 깎아 주셨고, 시험지 교사를 하시는 분은 아이들 공부를 돌봐주시 는 등 우리의 이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나누며 살라고 보내주신 천사들 같았다.
지금도 이 분들은 우리 가족 중 누구라도 아파서 병원에라도 갈 일이 생기면 순번을 정해서 차를 태워 주 실 정도로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달려와 도와주시고 함께 해 주신다.
그 해는 IMF가 시작되는 해였지만 우리 가족들은 여러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몇 년동안 느껴보지 못한 풍성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의 겨울을 느끼며 지냈다. 연락도 못하고 지냈던 수레바퀴선교회에서 도 택배를 통해 한 가마의 쌀이 오기도 했었다.
그즈음 남편도 다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다치기 전에는 교회생활을 그렇게 열심히 하였는데 사고 후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음 문을 닫고 있던 남편이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 모른다. 그런 남 편이 그때부터 교회를 다시 다니게 되고 내 입에서는 아주 조금씩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감 사할 일들은 자꾸자꾸 생기고 내 마음엔 평안과 기쁨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작년엔 교회 목사님의 권유로 우리들의 지나온 날들을 간증하게 되었다. 남편은 전혀 움직일 수가 없는 지라 카세트에 육성으로 녹음하여 정리하면 내가 그것을 원고지에 옮기고, 마지막엔 우리 아이들이 컴 퓨터로 정리해서 남편과 다시 교정하고.... 몸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며칠이면 끝났을 일을 꼬박 한 달 동안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크셨는지 새삼 느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간증과 우리 가족의 찬양을 통하여 아이들과 더욱 깊은 이해와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고, 휠체어를(침 대형 휠체어) 당당히 몰고 아이들과 운동도 하러가고 외식도 하러 다닌다. 그렇게 밝게 회복된 우리 집 이 야기를 성남시 시의원님이 듣고 추천을 하여 2000년 성남 시민의 날에는 모범 시민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런 와중에 2000년 12월에는 우리들의 새 보금자리로 이사를 하였다. 그 동안은 IMF 등으로 집 값이 그다지 오르지 않아 버틸 수 있었는데 2000년이 되어서는 전세가격이 턱없이 모자라 분당에서는 집을 구할 엄두도 못 내게 되었다.
그러나 교회가 있고 함께 의지하고 사랑을 나누는 이웃들 때문에라도 도저히 이곳을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 곳을 떠나지 않게 해 달라는 턱도 없는 기도뿐이었다. 그러 나 그 턱도 없는 기도가 응답되어 또 한번의 기적을 보여 주셨다.
살고 있던 아파트 1층에 직장문제로 지방으로 이사하는 집이 시세보다 휠씬 싼 가격에 급매물로 나왔고 , 시의원님, 친척 분들, 이웃 분들이 하나가 되어 융자알선이며 또 융자를 갚을 대책을 계획하여, 정말로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다시는 이사하지 않아도 좋을 우리의 집을 마련해 주셨다. 작은 집이지만 모든 문턱을 없애고 화장실도 넓히고....베란다 밖의 나무를 정원수 삼아 남편과 함께 차를 마시며 행복에 젖는다.
이젠 슬픔과 고민이 전부가 아니다. 늘 한결같은 이웃들과 건강하고 밝게 자라는 소중한 아이들, 자기 몸 이 힘들면서도 아이들 공부와 운동, 또 우리 집의 모든 문제들을 챙겨주시는 남편...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 리 집의 든든한 보호자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린 이제 행복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이런 어려움이 없었더라 면 도저히 느껴보지 못했을 감사와 행복을 느끼며 살았다.
작년 한 해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받기만 했다. 올해는 지금까지 받은 사랑과 은혜를 우리도 또 다른 이웃들 과 나누면서 살기를 바란다.
곧 우리 정원의 목련나무에도 꽃이 필 것이다. 꽃이 피면 우리 `문턱 없는 집`이 힘들고 지친 사람들은 아무 나 찾아와 함께 위로하고 사랑을 나누며 새 힘을 얻어 돌아가는 쉼터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