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선교보고 러시아..

작성자 이수효 날짜2003.11.04 조회수4968
2000.11.23


솔직하기를 원한다...

난 솔직하기를 원한다...

정말로 난 솔직하기를 원한다...



08월 18일 선교여행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한가지 문제로 계속 고민하고 있다. 물론 은혜는 받았다. 남들이 묻는다. 가장 나이가 어려서 봉사만 하고 온 것이 아니냐고... 아니다. 하나 님께서는 나를 위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셨다. 많이 느끼며 생각했다. 그들의 삶!

그들의 삶...

자신들의 보장된 안위를 포기하고 자신의 자식들과 손자들까지 그 고생을 시켜가며 하나님의 일을 하 는 모습... `목사`라는 명칭을 접어두고 끝까지 `장로`의 지위를 가지고 이름 없이 묵묵히 일하는 그 모습... 그 속 에서 미래의 나와 앞으로 만들 내 가정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미친 듯이 달리는 나의 모습이 오버랩(OVERLAP)되었 다. 그들의 아픔을 내가 간 그날도 느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우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에 내가 얼마나 싫어졌는지 모른다.

일년에 두 번 있을까 말까하는 바베큐파티 때 어머니를 위해 금식기도 중이라고 저 쪽 구석에 앉아있던 샤샤의 모습...그래도, 그 장난기가 서려있는 아이 같은 눈... 그 모습을 보며 내내 안타까워하시던 정 뽈리나 목사님... 그 속에서 또 나를 본다. 3일 금식 마지막날 `도대체 왜 내가 이런 금식을 해야하는 것입니까! 혈기는 아버지가 만든 것이 아닙니까!!`하며 하나님께 욕을 했던 내 모습...

교회를 돌아다니며 돈을 걷는 주교의 직분을 버리고-물론, 복음을 위해서 버렸겠지. 앞으로 갈 이 길이 참 으로 복된 길이라 생각하고 아니, 믿고 버렸겠지...-, 4살 된 딸을 잃고 KGB에게 딸들이 머리를 잡혀가는 모습을 봐 야만 했던 바실리 목사님... 그 아픔을 이기고 의심이 갈 만큼 밝은 지금의 그분의 가정... 그 가정을 보면서 우 리가정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다가 정말 어이없는 희생을 강요당할 때, `이 18! 내가 왜 이래야 해!`라고 하며 나 에게 이런 가정을 주신 하나님을 너무나 원망했던 내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봐라. 잘 보았니? 난 네가 예배시간마다 고백했던 바로 그 전능한 하나님이다.`하시는 또렷한 음성까지 그 해맑은 가정 속에서 나는 보았다...

그래...

그래서...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왜 이런 말을 하냐고? 왜 받은 은혜를 까먹냐고?

그건 내 자신에게 정말로 묻고 싶은 말이다.

내 가슴을 갈라서 `너 정말 왜 그래!!`라고 묻고 싶다. 이러한 삶을 보고, 만지고, 경험하고, 느끼고, 반성하고 울 기도 하였지만... 나는 현재 아무 것도 변한게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죄짓는 내 모습... 여전히 음란죄를 거부하 지 못하고, 밤마다 나를 괴롭힌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생각으로 날을 새는 나의 삶... 날마다 상처받고, 언제 나 조급해서 덜렁대는... 이렇게 반복되는 나의 삶이 여전히 내 앞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선교여행 경비 200만원.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그 돈 속에는 누나의 사랑과 아버지의 신뢰가 들어가 있었다 . 난 왜 이럴까? 경제적으로 별로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수요예배 때 나의 선교보고가 성의 없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보 였을 뿐이지 그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삶을 포기했거나, 나쁜 생활에 내 자신을 던져버렸거나, 나태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마인드가 되지 않아 그것이 괴로울 뿐이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이번에 보여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내가 계속해서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한다 면, 언젠가는 날 장성하게 하실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오셨던 것처럼 말이다. 복음성가 가사처럼, 지나온 세월들을 뒤돌아보면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난 오늘도 나의 공로와 상관없 이 약속하신 시간에 정확히 태양을 띄우시고 달을 띄우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비록 이 눈에는 아무증거 아니 보여도, 이미 얻은 증거대로 믿으며 말이다.



갑자기 내가 너무 건방진게 아닌가 생각된다. `누가복음 12장 25절` 말씀이 생각난다.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念慮)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렇다. 내가 내 자신의 성장을 아무리 염려해도 그것은 신경성 복통만 일으킬 뿐이었다. 기뻐하자. 항상 기뻐하자. 그분의 뜻이 내가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사는데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같다. 예수님이 나 에게 슬픔을 주기 위해서 만나주신 것이 아니지 않은가? 다시 힘을 내자. 그러한 분이 내 속에서 살고 있지 않으신가?

끝으로, 이러한 소감문을 내라고 강요하신(?) 목사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 분 말대로 글로 쓰다보니,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가 되고, 조금이나마 내가 지향해야할 점이 어디인 지를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