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2014년3월9일-주일저녁(정경령)테라피소감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4.03.12 조회수767
3번의 시도 끝에 힘들게 가게된 테라피!
많은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된 3박 4일은 나에겐 행복한 꿈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샘파에서 받은 은혜와 감동이 너무 커서 평생동안 잘 살 수 있을것만 같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내게 양보하고 들어주던 남편이었지만 신앙에서 만큼은 너무 완고했고 여러 가지 이론을 근거로 예수님을 부인하고 기독교를 비판하며 날 힘들게 했습니다. 남편은 순하고 착한사람이지만 자신의 상처를 숨긴 채 감정 표현을 잘하지 않았고, 그런 남편이 난 가끔씩 답답하고 짜증이 났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을 힘들게 전도해 놓고도 때로는 폭언과 짜증으로 아이들 마음에 상처를 주었고 편안한 엄마로 변하고 싶었지만 너무 쉽게 무너지는 나를 자책하며 힘들어했습니다. 모두 잠든 밤에 눈물로 기도하고, 철야 예배를 드리며 나의 믿음이 조금씩 깊어지면 남편은 홀로 술을 마시는 시간이 늘어났고, 그런 남편이 외로워 보여서 함께 술을 마시고 드라마를 보며 공감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어느새 하나님과 멀어진 나를 느끼며 또 괴로웠습니다. 남편과 하나님 사이에서 균형 잡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난 왜 상처 많은 남편을 선택했을까?
처음 남편의 힘든 어린 시절 얘기를 들었을 때 너무 마음이 아파서 결혼하면 정말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고, 연애할 때도 결혼을 해서도 늘 챙겨주던 나였지만 받기만 하는 남편에게 서서히 지치고 우울해졌습니다. 내 상처가 너무 커서 누군가를 온전히 받아주기 힘든 사람인 걸 나도 누군가의 사랑과 따뜻한 위로가 너무나 필요한 사람인걸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기도를 해도, 찬양을 들어도 눈물이 났고, 즐겁고 행복한 순간에도 끝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테라피 둘째 날 소그룹 대화 시간에 내 상처의 뿌리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는데 난 1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고, 젤 위에 오빠를 낳은 후 부모님은 아들 하나를 더 낳으려다 딸만 넷을 더 나았습니다. 세 번째로 딸이 태어나자 부모님은 절망으로 날 방치했고 난 뜨거운 방바닥에 화상을 입었는데 그 상처는 지금도 선명히 남아있습니다. 내가 3살 때는 아들만 셋인 큰아버지 댁에 양녀로 보내 졌는데 어린 난 그곳에서 적응을 못하고 밤마다 울어서 다시 부모님께 돌려 보내 졌다고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듣긴 했지만 한 번도 그때의 내 감정을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깜깜한 밤에 인형을 꼭 안고 울어서 눈이 퉁퉁 부운 3살의 나를 보게 되었고 외롭고 불안하고 무서움에 떠는 아이를 보니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어렸을 때 나는 엄마가 나만 미워 한다고 생각해서 인정 받기 위해 늘 노력했는데, 놀러 가기 전에 대청소를 하고 엄마 생신에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착한아이라고 칭찬 받고, 인정 받고 싶었던 나는 또 버려질까봐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가정적이지 않은 아빠를 대신해서 늘 바빴던 엄마는 내가 다쳐서 피가 나도, 집안일을 할 때도 이유없이 화를 내셨습니다. 처음 본 집사님 품에 안겨서 울고 또 울면서 엄마에게 한번 도 안겨본 기억이 없다는 걸 알았고 그런 내가 너무 불쌍하고 가여웠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춰져 있던 아픈 상처들이 떠올랐고 다음날 토설 시간에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은 부모님과 그런 부모님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이 원망스러워 미친 듯이 분노를 표출 했지만 토설 시간이 끝나자 엄마의 상황이 이해되었고 평생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오히려 안쓰러웠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마음에 평안도 찾아왔습니다.
조용히 누워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남편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너무 서두르지 말고~~ 조금 늦어도 좋으니 남편과 함께 오라고~~기다려 주시겠다고 응답하셨습니다. 난 이젠 조금 평안한 믿음 생활을 꿈꾸려 합니다. 그런 내 모습이 남편을 변화시키기를 바라고, 하나님이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모든 시간 기도와 헌신으로 도와주신 강사님과 스텝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잔잔한 음성으로 감동과 평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