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2014년3월9일-주일저녁(민경화)테라피소감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4.03.12 조회수1060
76차 테라피 소감문 민경화

저는 못나지 않았습니다.(차마 예쁘다는 말로 여러분의 심기를 불편이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나름 부유하게 자랐습니다.(강남 8학군 토박이로 어머니의 치맛바람은 한 획을 그었으며) 저는 학벌 또한 나쁘지 않습니다.(외국에 나가 공부하며 학위를 따고 많은 체험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믿음생활은 초등학교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는 했으나 주님은 나의 왕 따 방지용으로, 얻고자하는 것을 갖기 위한 상품권으로, 대학과 취업을 위한 합격 엿이었다 해도 무방합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광야에 들어가기 전 많은 은혜를 주셨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혼으로 인해 저는 본격적인 광야를 만나게 됩니다.
나의 외모와 스펙은 내면을 보지 못하는 미숙함으로, 부유함이 기준이 된 나의 잣대는 돈 으로 인생의 모든 것을 평가하고 연연해하는 시댁과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결혼생활동안 남편과의 다툼은 끊임없었고 시댁은 막장 드라마에서 갓 튀어나온 듯 했으며 연년생 어린 두 아들은 무방비로 노출되었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할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불완전하고 어두운 내면은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바닥을 쳤습니다. 선물보따리 같은 하나님은 더 이상 존재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주위를 늘 조용히 지켜주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4년 동안 나를 이끌어준 나의 목자. 주님이 보내주신 영적어머니인 셀 장님이 계셨습니다.
살기위해 서울에서 생명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드디어 대망의 테라피를 떠나게 됩니다.
많은 기대 반 나의 내면을 직면할 두려움 반, 고흥에 도착한 첫날부터 하나님은 저를 한마디로 볶아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어린 내면아이를 먼저 터치하셨습니다.
유치원에서 하원한 어린아이가 보입니다. 집 대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무섭고 두려워 울기 시작합니다.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지고 있으며 엄마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기억났습니다. 한 평생 일에 몰두 하시느라 최근에 일을 그만두신 어머니는 가끔 저를 그렇게 집 대문 앞, 아주 자유분방하게 방목하시곤 했던 것을...
그래서 저는 외로움을 습관처럼 달고 살았습니다. 혼자 있으며 맞게 되는 당황함이 싫어 그것은 두려움으로 변해 완벽주의와 강박증이 있습니다. 그리고 해가 저가면 더 애타는 엄마의 그리움에 석양이 싫었습니다. 이것들은 성인 어린아이로 자라 외로움을 남편이나 사람으로 달래고자 했으며 아니면 외모나 스펙으로 바꾸려 하여 허망함을 가득안고 살았습니다. 완벽주의와 강박증은 한시도 저를 가만두지 못하게 하여 탈진상태로 몰아가고 주변사람들도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대문 앞에서 쭈그리고 잠든 저에게 하얀 세마포를 입은 주님이 다가오십니다. 주님은 저를 안아 품에 안으시고 함께 계셨습니다. 이 외에도 부모님에게 벌로 깜깜한 목욕탕에 갇혀 두려움에 울부짖는 저를 환한 빛으로 꺼내주시고, 추운 겨울날 언니와 함께 내복바람으로 쫓겨난 우리를 주님의 옷으로 감싸 따뜻이 안고 그 곳을 떠나셨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스쿨버스를 놓친 제가 대중교통으로 혼자 하교 하다가 돈이 한 푼 없이 도착 정거장을 놓쳤을 때는 마음 좋은 아주머니를 보내주셔서 돈을 빌려 집으로 무사귀한까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여러 가지 기억을 꺼내어 주님은 그 상황 속에서 저와 함께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The end 장면처럼 못 박혀 구멍 난 주님의 손은 저의 어린 손을 잡고 석양을 향해 함께 걸어가셨습니다. “경화야 나와 함께 가자.” 말씀 하시며... 주님은 이렇게 저를 치유하시며 위로하셨습니다.
둘째 날, 셋째 날 역시 마음껏 주님의 품에서 울기도 웃기도하며 깊고 강하게 주님을 만났고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의 약속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특히 저의 내면아이를 여러분과 나누는 이유는 성인이 된 지금도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마음과 생각 속에 폭군으로 자리 잡아 지금까지 저를 휘두르고 장악하였습니다. 그것은 염려와 근심, 걱정과 불안 이라는 가면으로 변해 하나님께 전적으로 다가가려는 나의 영의 간구함을 막아왔기 때문입니다.
그저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은 동상이몽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테라피를 통해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주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각인하며 돌아왔습니다.
이제 주님은 나의 주님이 되었고 나의 외모와 부의 기준은 그리고 나의 명예는 오로지 주님을 위함이고 하나님 나라의 구속사를 위함입니다.
저의 고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으로 들어갈 해답은 제가 갖고 있으며 공식 또한 알고 있습니다. 나의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교회와 함께 그 목표를 붙들고 나아갈 것입니다. 합심 침묵 순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