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샘파47기 소감문 - 소망조(김영미)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2.06.15 조회수1254




47기 샘파 소망조 김영미



어느덧 샘파를 시작하여 8주가 지나 9주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언제 그렇게 지나가 버린거지?’ 시작할 때는 ‘언제 끝나나, 두 달간 토요일날의 나의 시간은 없겠구나’라고 시작한 샘파였지만 ‘벌써 끝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늘 교회에 오면 아는 사람도 적고 나를 인도한 집사님이나 셀장님은 바쁘셔서 ‘언제 집에 가지’를 생각했던 제가 이젠 그 시간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변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샘파를 시작하는 첫날 여러 교우들의 환호 속에 입장할 때 쑥쓰러워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맛있게 차려진 밥상에서 밥을 먹으면서 샘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5개월 전 저는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주신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뛰쳐나온 가정파괴자입니다. 엄동설한에 갑자기 쫓겨난 저는 아는 지인들 집에서 며칠을 지내다가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아무 연고도 없는, 단지 엄마가 강원도 분이라 이곳에서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원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곳을 떠나기 전 박목사님의 주일설교 말씀을 통해, 서목사님의 출애굽성경공부를 통해 조금씩 아주 조금씩 깨닫기 시작하며 마음의 평안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주일예배 후 박목사님과 인사를 나눌 때 “목사님! 저 요즘 행복해요”라고 말씀 드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주어진 상황에서 제 마음의 문을 다 닫고 싶었습니다. 문자 한통을 툭 던지고 떠난 저를, 그런 저의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주신 서목사님, 이선영집사, 홍영주집사님의 깜짝 방문. 그리고 깊은 애정을 가지며 저의 이야기를 듣고 말씀으로 저를 치유해 주시고 장시간의 기도로 저의 상처들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먼 길을 단숨에 찾아오신 목사님과 집사님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때 홍집사님께서 여기서 교회까지 1시간 조금 넘으니 우리교회로 계속 나오라고 하는데 아무 생각없이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네, 그렇게 할께요”하고 약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주에서 교회에 한번 왔다 가면 약 5만원 정도의 돈이 듭니다. 그 당시 아무일도 하지 않았던 저는, 한 달에 20만원이 부담이 되었을텐데 그 약속을 할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서야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푼이 아쉬운 저였기에...하지만 아무 계산없이 대답한 모습을 하나님께서 예쁘게 봐 주셨는지 바로 제가 일고 있던 지인들로부터 백 만원이 조금 못되는 지원금이 들어왔습니다. 딱, 제가 이곳으로 다시 이사오기 전까지의 비용이요.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전 절대로 주님을 벗어나지 못하겠구나 생각이 들었지요.


그리고 절 생명샘교회로 인도해준 홍영주집사님과 제 신앙의 멘토가 되어주신 이선영집사님이 항상 이야기 하시던 샘파에 자연스레 등록하게 되었지요.


한 주, 한 주 짧고 강한 메시지와 소그룹에서의 주고 받는 이야기들 속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첫째, 작년에 어머니학교에 참석하면서 너무나 저를 많이 보인 것 같아 ‘이번엔 보이지 말아야지’생각하고 접한 첫날부터 그냥 다~ 보여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첫날부터 저에게 작지만 잔잔한 파도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단숨에 원주까지 오신 목사님과 집사님들께 원주에서 적어도 3년 이상 지내면서 자리를 잡겠다고 했던 제가, 빨리 교회 근처로 와야겠다는 마음이 일렁거렸습니다. 어떻게 첫날부터 그런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8주가 되던 때 인카운터하는 날 다시 교회 근처로 이사 오게 되었습니다.


그땐 몰랐지만, 돌이켜 보면 목사님을 비롯한 여러 교역자님들과 여러 섬김이분들과 많은 교우들의 기도와 준비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게스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습니다.


샘파를 접하면서 주님께 맡기고 이사 기도를 구체적으로 했는데 저의 구체적인 기도는 하나도 맞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은 너무나 평온하고 아무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기쁩니다. 이게 제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됩니다.


두 번째, 아이들 아빠의 모습이 너무도 싫어 멀리 떠났던 저, 생각하기조차도 싫고 너무 미워했고 원망했던 저였습니다. 샘파가 진행될수록 소그룹 조원들의 모습과 박승혜리더님과, 김기란부리더님과의 시간이 자꾸 그리워지고 설레였습니다. 그 속에서 제가 늘 제 자신의 생각대로만 살아왔구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주일날의 박목사님의 설교는 저에게 길을 알려주시고 답을 주시는 말씀으로 저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은혜가 오면 이렇게 짜고 치는 고스돕처럼되는건가요? 그 가운데 아이들 아빠의 모습이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긍휼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젠 그 사람이 소리지르는 것이 ‘아 이사람이 힘들다고 외치는구나’로 들리게 되었습니다. 이젠 그 소리가 무섭거나 두렵거나 화나거나 분한 생각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셋째, 전 단무지입나다. 단순하고 무식하고 지~랄 맞습니다.


그런 제에게 6주차 성령체험을 하면서 마치 천국행 티켓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너무 기뻤습니다. 그때 드리는 기도는 제 머릿속의 생각이 아닌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데 ‘주님이 살아계심을 확실히 알고 살아계신 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전하는 언약의 전달자가 되게 하소서, 저와 같이 아픔을 당하는 어리섞은 사람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저를 도구로 써 주소서’라고 기도를 드리고 있더라구요.


그리고 또 한번 더의 성령체험 인카운터. 주님의 그 큰 사랑의 무한함을 느끼고 왔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샘파가 끝나면 이집사님댁에서 하룻밤 자고 주일예배를 드리고 다시 원주로 내려갔는데 집사님댁에서 1:1 교육을 통해 또한 저를 변하게 하셨습니다. 늘 현실과, 돈과 사람들을 쫓아 다니던 저는 그쪽에 맞추어 노후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선영집사님의 노후는 온전히 자신과 큰아들 현규, 둘째 민규의 삶을 주님의 방향으로 맞추어 주님께 바치는 노후설계를 듣고 제 자신의 삶이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번 샘파에서 본 영상중 두 가지 영상이 제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습니다. 산에서 죽음의 고비에서 자식만큼을 살리려고 하는 아버지의 모습, 아들에게 줄을 끊으라고 소리치는 그 모습, 그리고 우리 인간들의 죄에 주님께서 처참하게 당하시는 모습, 찔리고, 상하고 다치심을 입으시는 과정이 제 머리와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저 입으로만 고백했던 저였기에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스러웠습니다.


이젠 입만이 아닌 온 몸과 마음으로 주를 위해 살려합니다.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가 있습니다. 제가 떨구어 버려야 하는 숙제.


테라피를 기대하며 주님께 좀 더 나아기길 원합니다.



결단 : 1. 교회가 가까운 곳으로 인도하신 주님께 주일 예배뿐만 아니라 수요예배와 금요철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2. 매일 매일 성경말씀과 기도로 주님나라에 임하기까지 준비하고 무장하겠습니다.


3. 아이들에게도 저의 대물림적인 삶이 아닌 주님의 자녀 권세와 특권을 누리고 삶을 가르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