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있는 두 아들의 귀환’ (눅15:20-32)
4진 조희정지파 이정애셀 이정애권사
하나님의 나라를 떠나서 자신의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두 아들
주님의 통치,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기를 거부하고
자기 맘대로 살 수 있는 내나라 내 왕국을 세우겠다며 하나님의 나라를 떠나간 아들,
자기의 의를 앞세우고 판단, 정죄하며 마음속에 내 왕국을 세워 하나님을 외면한 아들
곧 우리 안에 있는 두 아들의 모습.
본문은 우리 안에 있는 그런 두 아들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찾는 하나님의 마음을 봄.
1.둘째 아들
-마음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 집을 나감.
아버지의 집에 사는 것보다 돈을 가지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고 싶음
내가 왕이고 내가 주인으로 살고 싶음.
결과로
유산을 받고 떠난 순간부터 만족은 잠깐이고 광야와 고난의 시작.
죄와 사망의 종노릇을 하게 됨.
인생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경험함.
-주님께 돌아가는 길: ‘회개’-집으로 돌아옴.
-아버지 반응: 재산을 아무 조건 없이 내어줌, 돌아왔을 때 아무 조건 없이 반겨주심. 아들의 권리를 회복시켜주심. 통치권을
부여하심. 온전한 삶, 온전한 회복을 이루어 주심.
2. 큰아들
-마음
자기 의를 자랑함-아버지 곁에서 수고하고 애쓰고 성실하게 살았다.
자기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함-동생보다 의로운 삶을 살았다. 내가 더 큰 보상을 받아야 한다.
상심한 아버지의 마음에는 관심이 없었음- 동생을 찾으러 가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돌아온 동생을 위한 풍악과 춤을 보고 분을 내고 집에 들어가지 않음 -아버지에게서 돌아섬.
-주님께 돌아가는 길: 감사하며 받았음을 믿음으로 누리는 것
-아버지 반응: ‘내 것이 다 네 것 이다’ 고 하심.
내가 원하고 추구하는 삶이 어디에 목표를 두고 있고, 무엇을 또 누구를 위해 사는지에 따라서 우리 행복의 가치는 달라진다.
나를 지으시고 창조하심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목적도, 소망도 없는 헛된 삶이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꼭 하나님이어야만 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이미 엄청난 유산을 받았다.
바로 예수님이다.
우리가 상속받은 예수님의 가치를 모른다면 3살의 어린아이가 1조원대의 유산을 받은 것과 같다. 아이가 그 가치를 알게 하기
위해서는 알리고, 배우고 성장시켜야한다. 인격을 성숙시켜야한다.
값없이 우리를 구원하고 자녀 삼아주신 그 아버지의 은혜를 믿으며 말씀을 하나하나 배우고 나눌 때 인생이 풍요해지고 아는 만큼 누린다.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된다. 그래서 받고 배운 그 사랑을 나누어 줄 줄 아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살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까? 고민하는 우리가 되자.
<소감>
지금은 26살인 둘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발을 다쳐 정형외과 병원에 입원을 하였습니다. 일주일정도 지났을 때 병원에 홍수가
나면서 어수선해져 치료가 부실해졌고 아들의 발과 몸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져 대학병원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진단은 급성골수염.
발을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당시에 아들은 저의 기쁨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들에게 쏟는 사랑을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가족 중 유일하게 교회에 다니던 두 여동생들의 기도가 매일 이루어졌고 중보팀을 만들어 밤 12시부터 1시까지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특별히 적을 둔 교회가 없던 나는 동생이 다니던 교회의 신자는 아니었지만 병원 밤교대 후 합류하여 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도도 할 줄
모르는 세례교인도 아니었던 내가 그렇게 간절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왠지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실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낫 게 만 해 주시면 주일성수를 꼭 드리겠다는 서원도 멋모르고 하였습니다. 아들의 발은 기적처럼 무사히 치료되었습니다.
아들이 회복되니 긴장이 풀렸습니다. 어수선한 집안과 하던 일을 정상으로 돌리는데 매달리다보니 교회는 잊었습니다. 아니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밤마다 찾고 부르짖으며 매달리던 주님께 감사는 하였지만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창조주를 믿었지만
성경말씀은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부담스러웠습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답답한 삶이었고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을 쫒아가며 나의
욕구의 자아실현을 위한 공부나 명언암기, 일반 도서를 읽는 것이 더 편했습니다. 주님을 잊은 일상의 날들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다시
재발조짐을 보였습니다. 낙심한 내게 동생은 서원을 상기시켜주면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약속을 하시고 지키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은 받으신 약속도 지키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결단을 하고 집 근처 교회를 찾아서 새벽기도와 주일예배를
매일 빠짐없이 드렸습니다. 주님은 어느 날 새벽 기도 중에 조용히 찾아와 나를 향해 웃어주시며 ‘내 딸 아가야’ 위로하듯이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 이후 주님은 놀랍게 아들의 발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이후 나의 신앙생활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의무처럼 시작된
믿음의 생활이었지만 점점 기쁨이 늘어가고 성령의 임재에 간증이 쌓이고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였습니다. 답답함은 자유가 되었고 부담감은
수고로움에서의 해방이 되었습니다.
현재 그 둘째 아이가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큰아들은 근처 교회를 지금도 다니면서 개인적인 큐티 생활, 말씀공부, 교회의 모든 공 예배를 거의 다 참석하며 말씀과 예배에 충실하고, 교사.
임원. 예배 피아노 반주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동역자로 서로 힘이 되어줍니다. 그러나 내게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었고 나의 훈련대장인
작은아들은 내가 하나님께 더 다가갈수록 교회를 멀리하였습니다. 엄마에게 상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기에게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위해 더 많은 시간. 관심. 우선시. 물질을 사용 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합니다.
또 교회는 고리타분하고 억압적이라고 합니다. 자유롭게 세상을 누리고 싶어 합니다. 엄마는 이렇게 주 안에 풍요한데 마음이 아픕니다. 스스로
노력해서 열심히 살고 돈도 많이 벌어 편안하게 누리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열심을 내는 아들의 헛된 방향을 바라보는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에 가슴이 아픕니다. 이전에 나를 향하던
하나님의 마음이 이랬을 테지요. 주님이 주신 은혜와 사랑을 받은 대로 나눠주지 못한 것 같아 기도합니다.
이제 더욱 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내게 하신 그대로 기다려주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랑을 통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깁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그렇게 될 것을 믿습니다. 아들이 하나님께 돌아서는 그때를 그려봅니다. 인간적인 엄마의 사랑보다도 더 크고 깊고 더 풍요롭고
더 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값을 측량할 수 없는 주님의 가치를 알고 누리며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삶으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결단>
1.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기도를 수시로 매일합니다.
2. 자기왕국 세우지 않도록 행동과 마음을 늘 깨어 경계하겠습니다.
3. 아들에게 임할 주님의 선하신 계획을 믿고 하나님 말씀을 매일 한 구절씩 전합니다.
4, 의와 판단과 정죄하는 마음으로 아들을 바라보지 않도록 주님의 사랑을 늘 가슴에 품고 자기부인을 수시로 하며 도우심을 구하겠습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주님의 은혜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이 자리에서 누리는 모든 것 감사드립니다.
임하여 주소서 주님에게서 돌아서 있고 주님을 떠나있는 영혼에게
빛으로 찾아주셔서 구원하여 주소서.
주님에게 값없이 받은 사랑을, 또 누리는 삶의 풍요함을 주변에 복되게 나누고,
사람을 살리는 제사장으로의 넉넉한 삶을 살게 하여 주소서.
만물의 영광이신 주님을 찬양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