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C

2013년7월10일수요RTC김수혜집사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3.07.10 조회수2139
사도행전 14:1-7
“ 주를 힘입어 담대히 전하라”
2진 여성2군 김경미A지파 김수혜가족셀 김수혜 집사


<말씀과 본문요약>

복음 전파의 모델
무엇을 전하며, 어떻게 전하며, 무엇을 남기고, 어떤 결과를 얻어야 하는가?


1. 무엇을 전할 것인가?
-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3절)
- 은혜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2. 어떻게 전할 것인가? 어떤 식으로 전해야 하는가?
-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3절)
-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이므로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며 담대히 전해야 한다.

3. 전도의 목적은 무엇인가?
- 복음전파는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15절)
- 출발은 구원과 축복, 결론은 썬쉽과 킹쉽이다.
- 우리를 창조하신 두가지 목적, 썬쉽과 킹쉽이 전도의 목적이다.

4. 무엇을 남길 것인가?
-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음 (21절)
- 사람을 남겨야 한다.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







<소감 및 결단>

혼자서는 건널 수 없는 것
오랜 날이 지나서야 알았네
갈대가 눕고 다시 일어나는 세월
가을빛에 떠밀려 헤매기만 했네

한철 깃든 새들이 떠나고 나면
지는 해에도 쓸쓸하기만 하고
얕은 물에도 휩싸이고 말아
혼자서는 건널 수 없는 것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순간, 어릴때 좋아했던 이 시가 생각났다. 구광본 시인의 “강”이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당시, 강이라는 것이 내가 건너야 할 인생의 시련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학입시 전기에 떨어진 그 때, 내가 건너야 할 강은 정말 엄청나게 커 보였고,
어린 나에게 그것은 숙명적인 한계로 다가왔었다.
친구들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한해 재수를 한 연년생 언니는 보란듯이 서울대 경영학과에 합격을 했다. 친구와 언니의 대학합격에 좋아하는 모습을 멀리 보면서, 그저 쓸쓸하기만 했다. 그리고 나서, 다들 그렇듯이, 젊은 날의 실패와 성공을 번갈아 겪으면서 아이셋의 엄마로 서 있는 지금, 이 시는 그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주일날 설교시간 중에 내게 다가왔다.

셀장이 된지 6개월이 지났다. 그 동안 셀원은 나를 포함해서 5명으로 늘었다.
이제 셀장으로서 여호수아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한다. 지난주 셀예배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안된 셀원들에게, 여호수아 프로젝트가 무엇이며, 어떤 순서로 진행되며, 우리가 참여해서 해야 할 일에 대해 설명을 했더니 거의 사색이 되었다. 자기도 초신자인데 누굴 전도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배운대로,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하실 거라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설명을 하면서도, 난감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그런데, 이번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듣고 깨닫는 바가 있었다.
내 능력이 아닌 주님의 능력으로 산다는 말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말씀....
결국, 내가 건너야 하는 강은, 혼자 건널수 없는 것,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해야 건널수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강을 건넌다는 것은 단순히 “전도”를 의미하는 것일까. 내가 어릴때 느꼈던 시련과도 같은 그러한 행위가 전도일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또 부담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전도가 엄청나게 힘든 것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주일설교 RTC를 작성하는 중에, 강을 건넌다는 것은 남을 전도하는 것이 아닌 궁극적으로는 나를 내려놓는 작업....즉 “자기부인”을 의미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내가 자꾸 내 힘으로 부인된 “나‘를 기대하기에 그렇고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 나를 창조하신 목적은 내가 힘들고 어렵게 내 힘으로 이루어 내야 할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이미 이루어 져 있던 것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광야를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광야를 통해서 원래의 목적을 찾고 확인하는 것..... 결국, 자기부인도,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그 모든 행위들도, 내가 힘들게 이루어 낼 종류의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나에게 아직, 근사하게 예전의 “나”를 해체하여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내어 놓을 수 있는 멋진 “나”를 구축하고자 하는 그런 육성이 남아있으니까 전도도, 그 교회에서 하는 그 모든 것들이 그저 부담스럽게만 다가왔던 것이다.
자기 부인이란, 내가 부담을 갖고 이루어 내야 할 종류의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내가 부인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여전히 힘들건 아닌지. 내가 자기부인했음을 증명하고 싶어 안달난 사람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시기에 나라는 존재가 있고, 내 안에 하나님이 붙드시고 있는 것 외에 가치있는 내용이라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자기부인을 통해 우리 셀의 여호수아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해 본다.


<기도>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이니라. 하나님 아버지. 나를 부인하라는 말씀은, 믿고 의지할 대상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자기를 부인하거나 겸손을 가장한 자기부인을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