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잊지 않았다!
이사야 49:14~17
본 설교요약문은 2003년 10월 26일 2부예배 때 설교하신 내용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모두 즐거운 인생, 행복한 삶을 살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좌절, 불행 속에 빠 질 때가 있다. 본인이 의식하든 못하든 관계없이 우리는 과거로부터 연유된 마음에 깊은 상처들을 갖고 있다. 그 상처가 과거로부터 생긴 것이든 또는 현재의 삶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든 간에 그 상처는 우리의 신앙과 건강한 인간관계, 인격성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아이들이 몸에 이상이 있으면 발육에 지장 이 있는 것과 같이 마음의 아픈 상처들은 건강한 인생을 살아가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어렸을 때 가졌던 상처, 아픔들이 나이가 들어 성숙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성 인아이가 있다. 성인아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우리는 건강한 인생을 살아 갈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 과거로부터 가슴속에 깊이 새겨졌던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자신의 모습을 그려볼 때 자기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는 것을 자화상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난 할 수 있 어. 뭐든지 하고 싶어` 이렇듯 미래지향적이고 현실의 아픔을 수용하고 사는 긍정적인 자화상이 있는가 하면, `난 틀렸어,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 이런 부정적인 자화상을 갖고 사 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이런 자화상이 형성되는 근원들은 몇 가지가 있다.
1)유전적 요인-신체적, 생리적인 것만이 아닌 정신적인 것, 내면적인 것, 정서적인 부분도 유전된다.
2)가정적 요인-임신, 출생, 유아기, 성장기에 가정의 분위기, 가족들과의 관계가 성격, 정서형성에 지대한 영 향을 미친다. 특히 어린 아이의 시절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각인 할 수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회복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3)환경적 요인-친구,사제,대인관계, 사회성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사건들이 우리 마음에 자신도 모 르게 그림들을 조각해 간다.
4)본인의 독특한 내적 요인-같은 나무의 열매들이라도 각기 모양과 맛이 똑같지 않은 것처럼 각기 다른 모 습의 내적 요인들을 갖는다.
5)영적 요인-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사탄의 열등감 조성, 자신을 부적당하게 여기도록 함, 자신을 스스로 비 하시켜 그리스도인을 패배시킨다. 그리고 그 결과 하나님의 친자녀로서의 잠재력을 발휘 못하게 한다
6)은혜적 요인 - 우리가 경험했던 여러 은혜의 측면들 : 우리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서 우리 인생에 큰 영향력 을 끼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화상을 소유하는 능력의 근원이시다.
성인 아이, 몸에 밴 어린 시절(내재 과거아)-일정 영역에 성장이 멈춤. 어떻게 하면 이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인격의 성숙, 신앙의 성장은 정서적 부자유한 상태, 감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고전13장에서 `내가 장성한 후에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말한다. 장성한 사람이 되었 다는 것은 이러한 어린아이의 유치한 감정, 어렸을 때 경험했던 상처와 아픔들을 벗어나서 자유로운 삶 , 자유를 경험한 상황을 장성한 상태라고 고백한다.
나이가 들어서 어린 시절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엄마상, 아버지상을 교회 생활을 통해서 우리가 신앙 안 에서 다시 되찾게 되면 우리의 찢어진 상처들, 마음의 아픔들이 회복될 수 있다. 우리는 감정의 감옥으로 부터 자유해야 한다.
옛 사람, 옛 구조가 마치 내 모습인 것처럼, 정상적인 내 삶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는 옛 사람의 구조로부터 우리는 자유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러한 감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
1. 잘못된 치료
1)무조건 마귀로 본다 - 정죄 2)너무 쉬운 답을 준다 - 성경 읽고 기도, 봉사, 믿음을 가지라(죄책감을 가중)
2. 루터의 제안
1)좋은 교제권-홀로 있지 말라, 고독을 씹지 말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라.
2)노래하라! 음악을 즐기라! 댄싱하라!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라! 자연을 사랑하고 즐기라.
3)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깊이 의존하라-시편 묵상(하루에 한 장씩 읽고 자신의 기도를 쓰자)
4)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형성, 교통-성령님의 임재하심 가운데서 확신 있는 태도로 휴식을 취하라
본문 49장 말씀은 이스라엘의 비극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 을 배신하고 세상을 좇고 우상을 섬김으로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나라를 잃고 포로된 상태로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1:2-6 이사야는 이미 오래 전에 이스라엘의 이런 상태를 경고하고 고발했다. 유다를 향 한 하나님의 탄식은 사1:13절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 성화와 아울러 악을 행하 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였노라` 가슴을 내놓지 않고 마음은 그대로 두면서 껍데기만 흉내 내는 종교행 위는 가증한 것이라 거절했다. 결국 돌이키지 않고 옛 모습,옛 잘못된 구조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환경적인 어려움을 주셨다.
이사야49장은 70년의 포로생활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이제는 희망을 잃어버렸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완 전히 상실해 버렸다. 이사야 49장에서 이사야는 소망의 메시지를 그들에게 선포한다. `여호와께서 나를 버 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14절) 우리가 절망 가운데서 고백했던 내용이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 이렇게 백성이 절망하고 낙심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5절) “내 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16절)고 하였다.
너의 미래를 준비했다(17-21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메시지이다. 하나님은 한번도 나를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바닥에 내 이름을 적으시고 상황을 적으시고 나를 한번도 잊어 본 적이 없다고, 나를 기억하였다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내가 왜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고난의 세월을 살아 야 하나? 나는 왜 잊혀진 세월 속에서 오랫동안 절망 가운데 살아야 하나?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게 아니고 내가 하나님을 잊었다. 하나님은 한번도 나를 버린 적이 없지만 하나님 을 필요할 때만 썼고 내가 살맛나고 편안할 때 하나님을 버렸다.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살았다. 하나님 은 한번도 나를 기다리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셨지만 나는 그 분에 대한 믿음을 필요할 때만 갖고 필요 없 을 때는 수시로 버렸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나를 버릴 때 얼마나 외로운지 아느냐? 네가 나를 잊었을 때 얼마나 기다린 줄 아느냐?’
주님은 우리와 인격적 교제를 갖기 원하신다. 감성이 통하고 느낌을 나눌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서로 존 중하고 높여주는 아름다운 인격적 만남을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분을 수단으로 이용하고 필요할 때만 그 분을 불렀다. 주께서 우리를 성숙시키시기 위해 광야로 몰아낸다. 외로움이 무엇인지, 절망이 무 엇인지 홀로 사는 아픔이 무엇인지 그동안 외로우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자. 짝사랑으로 긴긴 세월동안 슬픔의 시간을 가지셨던 그분의 마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광야의 시간이요 고난의 시간이다 . “나는 너를 결코 잊지 않았다.” “나는 너를 결코 잊지 않았다.” 젖을 먹이는 여인이 자기 자식을 잊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신다. 희망을 가지자. 환경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자 . 그분의 위로의 음성을 듣고 새 힘을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