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2012년3월28일수요오전구경희 집사QT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2.03.28 조회수2105




Q T 열왕기하 6장



김한정지파 구경희족장



**본문요약**


1~7절 쇠도끼를 찾다


; 엘리사의 제자들이 요단에서 처소를 세우다가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물에 떨어졌는데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던져 도끼를 떠오르게 하였다.


8~23절 아람 군대를 물리치다


;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데 항상 엘리사가 공격할 곳을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알 려준다. 아람 왕이 엘리사를 잡으려고 도단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니 선지자 의 수종드는 자가 두려워하였다. 이에 엘리사가 수종드는 자의 눈을 열어 불말과 불병 거를 보게 한다. 이어서 아람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여 다른 곳으로 인도하여 포로로 잡아서 그 주인에게 돌려보낸다.


24~33절 에워싸인 사마리아가 굶주리다


;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에워싸서 성중이 크게 주리고 아이를 잡아 먹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에 왕이 자기 옷을 찢고 엘리사를 죽이려고 한다. 그러면서 왕은 여호와를 원망한다.



**내게 주신 명령**


내 자신을 하나님의 집에 쓰기에 합당한 목재로 만들기 위해 말씀의 도끼와 행함의 자루를 함께 가지고 있어라.



**내용 이해**


6장은 몇 번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에 빠진 도끼를 떠오르게 한 것은 나뭇가지~ 이 나무도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인가?


제자들은 왜 갑자기 처소를 짓자고 했으며, 집을 짓는데 재목을 각 각 한 개씩만 취하라고 했을까? 상식적으로 집을 짓는 데는 좋은 재료가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는 다 아는 사실인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안 되어 컨닝을 하기로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본 결과~~~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재목은 바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세상을 이기는 자로 성전의 기둥과 지붕을 삼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사의 제자들 자신이 바로 성전의 재목이므로 ‘사람 한 명당 반드시 한 개의 재목이 필요하다’ 라고 비유적으로 기록된 것이다. 엘리사가 제자들에게 각각 한 재목만 취하라고 하는 것은 각자의 사명을 상징한다. 한 그루의 나무를 베는 것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성전의 기둥으로 쓰임 받기 위해 교만과 시기, 고집 등을 찍어내고 다듬는 연단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에 쓰일 수 있는 합당한 목재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말씀의 도끼와 행함의 자루를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




**소감, 결단**


3월 달이 되어 내가 QT를 해야 할 날짜가 점점 다가오면서 심적 부담이 심하여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고, 가슴속에 멧돌 두세짝이 얹어 있는 것처럼 답답함과 무거움에 시간이 흘렀다. QT와 RTC를 여러 번 써 보았음에도 이번처럼 중압감에 힘든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본문 내용을 이해해야 적용해서 소감을 쓸텐데 아무리 읽어도 안 되겠기에 인터넷 검색으로 열왕기하 6장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다.


1~7절의 엘리사의 제자들이 처소를 짓기 위해 도끼로 나무를 베다가 물에 빠트린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와 그의 제자들이 거할 처소를 짓는 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의미한다. 이 성전을 짓는데 왜 각 각 한 재목만 취하라고 했을까?


그것은 엘리사의 제자들 자신이 성전의 재목이며 각자의 사명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한 그루의 나무를 베어내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으로 쓰임 받기 위해 교만과 시기, 고집 등을 찍어내고 다듬는 연단의 과정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내게 있어 찍어내야만 하는 고집, 교만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내게 왜 열왕기하 6장을 QT하게 하셨을까???


유달리 이번 QT는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일까?



아직도 내 안엔 추하고 더러운 나의 옛 모습이 웅크리고 앉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 보여지는 나는 봉사 잘하고 예배생활 충실하며, 기도 생활도 잘하여 늦게 시작한 믿음이지만 모범적인 모습으로 보여진다. 나 자신도 내가 그런 줄 알았다. 순종적이며 시키는 대로 잘하고 믿음도 그만큼 크기에 어떤 일이 닥쳐도 잘 이겨 내리라 자신했었다.


작년 5월경부터 안동에 계시던 시아버지께서 간 경화로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봉사로 바쁜 와중에도 안동을 오가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힘든 시간이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아버님의 병환이 점점 악화되어 용인으로 모셔 오게 되었고, 간경화가 심하여 간성혼수가 오고, 알콜로 인하여 치매로 까지 진행되어져 결국엔 요양원에 모시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병원에 두 발로 걸어 들어와 지금은 꼼짝없이 누워만 계시는 아버님을 보면서 내 안의 나를 직면하게 되었다.


젊어서 지금까지 시아버님이 가정을 돌보지 않아 많은 아픔을 갖고 있는 시댁 식구들, 아버님의 병환은 아들이 혼자인 우리 부부의 몫이 되었고 경제적으로, 심적으로 많은 부담이 되고 있다. 당신 혼자 몸만 잘 먹고 잘 살아 오신 분, 아내와 자식들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여태까지 살면서 생활비 한 푼 내 놓지 않았으며, 아버지 노릇 제대로 한 적이 없으셨기에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궁핍한 시절을 들어온 나로써는 누워있는 시아버지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지금도 며느리로써 의무감에 요양원에 들른다. 아무것도 모르고 누워만 계시는 아버진 엉뚱한 소리로 내 맘을 더 닫히게 하신다. 남의 손으로 대소변 가려내는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실려고 평생을 그렇게 사셨던 것인가~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시부모님의 예수님 영접이 나에겐 많은 부담이었고 짐이 되었었다. 감사하게도 어머님은 재작년 세례를 받으셨지만 아버님을 생각할 때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갑갑하기만 했고, 안동에 계시니까 그곳에서 믿음 좋은 사람 통해 교회 다니시도록 기도만 했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난 요즘 요양원에 갈 때마다 기도한다. 오늘은 꼭 아버님께 예수님을 전할 수 있도록, 꼭 아멘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오늘은 사단의 장난에 내 마음이 다치지 않고, 아버님을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수도 없이 기도한다.


그러나, 매번 무너지는 내 마음이 예수님을 전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돌아서게 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자꾸 유혹한다.


‘말도 못 알아듣는데 뭘 자꾸 갈려구 그래, 너 거기가면 네 아버지 더 미워질텐데 가지 말고 병원비만 내~ 그래도 누가 뭐라 안 해~, 더 잘 할려고 하지 마. 그냥 하던 대로만 해~~ 영접은 나중에 해도 돼~ 시간 많잔아~~ 오늘만 날이 아니야, 담에 와서 해~~‘



아버님의 예수님 영접을 내가 꼭 시켜드려야만 한다는 부담이 있다. 남편이 했으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내가 해야만 한다는 중압감에 매번 무너지고, 또 좌절한다. 그러면서 왜 내가 해야만 하느냐고 원망도 했다.


그러다 지난 수요예배 기도 중에 깨닫게 하셨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고~ 너는 그저 몸만 가고 입만 벌리면 된다고~~


아차! 그렇지~~ 하나님이 하셔야지, 왜 내가 할려구 했나, 수도꼭지도 틀어야 물이 나오듯이, 수도꼭지를 돌려기 만하는 수고를 원하시는 주님이신데 난 여태껏 내가 돌리고 물도 내가 나오게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이런 어리석음을 주님은 깨닫게 하셨다.


내가 잘나서 신앙생활 잘하는 줄 알았다. 내가 착해서 시아버님을 모시는 줄 알았다.


내 의무감으로 시아버질 영접시켜야만 되는 줄 알았다.


그래야만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구경희로 잘 행동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이 속에 예수님은 없었다. 그저 내가 잘해야만 되는 내 의만 살아 역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긍휼의 마음도 없었고, 예수님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아픈 시아버지를 통해 아직도 나를 조정하는 옛 사람의 나를 직면하게 된 지금, 너무도 힘들고 괴롭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금방 돌아가실 것 같은 아버지께 마음을 다해 잘 해 드리자, 사랑으로 대하자~~ 했었는데, 지금의 나는 어떤가~


생각할수록 모두 것이 나의 위선이며 나의 또 다른 모습이라 생각하니 내 안의 죄성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주님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음도 고백한다.



환경 속에 고난을 주신 메시지가 있다고 하신다. 불편할수록, 힘들수록 감사하라고도 하신다. 아픈 시아버지를 통해 내게 있는 교만을 보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성전이 내게도 임하게 하시려 내 아픈 부위를 칼로 도려내려 하신다. 나를 다듬는 연단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역사하시려 하신다. 내 안의 상처가 얼마나 곪았는지 아직도 많이 아프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그냥 그 곪은 상처를 터트리고 싶지 않다. 건드리지도 않은 상철 보는 것만도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데, 두렵기만 하다. 머리론 이해 한 것이 가슴으로 내려와 삶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시아버지를 통해 깨닫게 하셨다.



지금은 승리의 간증은 못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기쁨의 간증, 승리의 간증을 올려드리리라 기대하며, 과정 중에 있는 나를 바라보며 인정하고, 다시금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됨을, 이런 나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려 한다. 아버님의 영접은 그 다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의 고난은 아픈 시아버지를 통하여 나를 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는다.


말씀과 훈련은 우리의 행함으로 열매를 맺기에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닌 행함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연단의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리라 결단한다. 내 안에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는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세상을 이기는 자로써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고 지붕이 되리라 다짐한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나의 옛 모습까지도 감싸 안아 주시고, 기다려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 갈 수 있도록 나의 환경 속에 역사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망하지 않게 하시고 고난 중에 역사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