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10월14일철야 간증( 최빛나 사모)

작성자 관리자 날짜2016.10.15 조회수553
최빛나 사모  간증문
안녕하세요! 주님의 은혜를 나눌 수 있는 귀한 시간 허락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생명샘 교회 청막골 청년으로 생활을 하다가 미국에 잘생긴 목사님께 시집간 최빛나 사모입니다.

6살 때에 선교 가시는 부모님을 따라 필리핀 오지에서 자랐습니다. 어려운 지역만 찾아다니며 선교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하늘을 지붕 삼고, 시원한 바람과 자연 속에서 산지족들과 예배도 드리며 기도하고 나누는 삶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동생들과 한국 교회에서 선교지 성도들을 위하여 보내오는 헌옷 속에서 옷을 골라 입고, 전기가 안들어오는 곳에서 촛불을 켜고 어두움을 밝히는 작은 빛에 감동을 받기도 하고,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성도들이 가지고 오는 맛있는 열대 과일들도 먹으며, 열정을 쏟으며 기쁘게 사역하시는 아버지의 존경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저도 순교를 각오하는 선교사가 되리라 다짐을 했습니다. 매일 저녁, 어머니와 동생들과 가정예배를 드리며 잠언을 읽었습니다. 그렇게 어렵고 위험한 환경 속에서도 주님은 온 식구를 지키셨고, 현지학교에서 필리핀 언어가 유창했던 저는 평생 필리핀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돌보며 말씀 사역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른 계획하심이 있으셔서 저를 미국에 있는 신학대학을 장학생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3가지 직업을 뛰면서 공부하고 교회를 섬겼습니다. 먹을 시간도 없어서 어쩔 때는 초코파이 하나로 끼니를 때울 때도 있었고, 잠잘 시간이 부족해서 하루에 두세 시간의 잠으로 버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제 몸은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수업 하나만 듣고 나와도 기절할 지경으로 힘이 없고, 머리와 잇몸과 코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한 통증들이 오갔으며, 매일 밤마다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통증은 늦은 새벽마다 강도가 심해져서 함께 방을 나눠쓰던 룸메이트들이 깰까봐 숨어서 혼자 울고 진통제도 복용하며 이겨나갔습니다. 당시에는 국제학생으로써 보험이 없어 병원을 가는 것은 엄두도 못 냈습니다. 오지에 계시는 부모님과도 연락망이 힘들어서 가까운 응급실에서 점검만 받고 통증을 4개월 동안 이겨내고 방학을 맞아 한국으로 나와서 한의, 양의, 병원이라는 병원은 모두 방문했습니다. 해답은 없었고, 머리가 터질듯한 통증은 날로 심해졌고, 코피도 양이 늘어나서 가끔은 멈추지 않아 한밤중에 응급실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결국 응급실에서 병실로 옮기는 날이 왔고 저는 열흘 동안 단식을 선고받아 사경을 해매며 움직일 기력이 없어 누워 지냈습니다. 찬양을 부르고 싶었지만 힘이 없어서 입을 벌릴 수가 없었습니다. 선교지에서 잠시 달려 나오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뵙고 눈물 흘리며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입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옆을 지키시다가 선교지에 더 위급한 분들이 계셔서 눈물을 흘리시며 다시 선교지로 돌아가셨습니다.

살지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병원비도 사역하시는 부모님께 부담 드릴까봐, 그리고 동생들이 염려할까봐 걱정하는 저에게 신바람 낙도 사역을 하시는 반봉혁 장로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미국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셨을 때 은혜받고 제가 낙도를 다녀온 뒤로 장로님께서는 아픈 저를 사랑으로 기도해주셨습니다. “빛나야, 생명샘교회의 박승호 목사님께서 너의 얘기를 들으시고 돕고 싶어하신단다. 병원비도 이제 걱정 안해도 되” 저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한 번도 만나보지도 못했고 나를 알지도 못하시는 목사님께서 이렇게 저를 생각해주시다니.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박승호 목사님께서는 아프고 상해있는 제 마음을 위로해주셨고, 저는 교회의 한 식구가 되어서 엄마와 함께 출애굽기, 공소대, 샘파, 떼라피, 셀모임, 철야예배 등을 통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갈급한 영혼에 생명의 단비가 부어졌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배우고, 사랑받고, 섬김을 받았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생명샘교회를 매주 들어서면 천국 문에 들어서는 기분이었고, 설교를 통해서 복음전파하시는 목사님의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고, 목사님의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았습니다. 철야 때마다 당시 담임목사님께서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셨는데 손을 얹고 “터치해주세요” 기도하실 때마다 성령님께서 나를 치유하고 계심이 믿어졌습니다.

병원에서는 암일 수도 있다, 머리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조직검사 수술을 다시 하자, 등의 내용과 암환자들이 복용하는 독한 약을 처방했고 약물 부작용으로 힘든 중에서도 교회만 오면 마음에 평강이 넘치고, 목사님과 성도님들을 뵐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그 사랑의 힘으로 1년이라는 시간을 한국에서 잘 이겨냈습니다. 그러나 제 병은 한국에서 치료가 가능하지 않았던 희귀병이였고, 그것을 알고 교제하던 지금의 남편에게 헤어지자고 했으나 남편은 아픈 것이 이유라면 끝까지 너를 지키겠다고 하면서 매일 장미꽃과 위로의 카드를 보내왔습니다. 그런 중에 한국에서 가망이 없으면 미국으로 오라는 남자친구의 배려로 저 생명샘교회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안고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주님께서는 박승호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생명샘교회를 인하여 저를 철저히 무장 시키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또 다른 이겨내야 하는 걸림돌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은 저를 매일 데리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또 다른 조직검사, 여러 의사진들과의 만남, 암센터에서의 기다림...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과 또 데이트를 갈 수 있어서 신난다며 남편은 행복해했습니다. 복용하고 있었던 약들이 너무 독해 얼굴과 온 몸이 퉁퉁 부었고, 코뼈는 다 녹아 내려서 콧대는 이미 없어졌고, 오른쪽 잇몸뼈도 녹아내려서 이빨도 두 개가 없어졌으며, 약의 여러 부작용들은 저의 생각과 마음과 몸을 뒤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거울을 보는게 괴로워졌습니다. 내 자신이 암세포와 질병과 더러움으로 보였습니다. 약물을 인해 호르몬의 변화가 심했고 그래서 감정변화가 저를 엄습해올 때는 얼굴표정과 마음을 제 마음대로 조절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괴로운 감정, 아픈감정, 슬픈감정, 화가나는 감정. 감정의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그 감정들이 너무 힘겨워 칼을 집어서 내 심장을 찢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라 하나님만을 외치며 회개기도도 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랑하는 그 사람은 저를 꼭 붙잡고 반복해서 말해주었습니다, “너는 존귀하고 고귀한 하나님의 딸이야. 잊지마. 너는 존귀하고 고귀한 하나님의 딸이야. 절대 잊지마.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는 존귀하고 고귀한 하나님의 딸이야...” 보통은 한 시간, 많게는 3시간을 그렇게 저를 붙잡아 주고 나서야 힘든 감정이 갈아 앉았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인내했지만, UPenn병원의 훌륭한 의사진들도 “우리도 모르겠다”는 솔직한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러다 더 뛰어난 하버드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가보자며 저희들을 Massachusette General Hospital로 연결해주었습니다.

병원을 옮겨서 움직이지만, 그동안 다녔던 병원 빚만 2억원이 넘어버렸습니다. 무섭게도 병원비를 재촉하는 편지들은 학교 편지함에 매주 가득하게 날아왔습니다. 저는 돈의 액수를 볼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그 사람은 “우리가 언제 이렇게 어마어마한 액수의 빚을 가져보겠어! 정말 대단한 일이야. 우리 파티하자!” 그러면서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위로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영수증들을 내가 못 보도록 감추었습니다.

저희는 새로운 하버드 MGH병원에 들어가서 4명의 의사진들과 함께 만남을 가졌습니다. 비싼 MRI CT 촬영들도 다시 찍고 나서, 저는 병원비가 걱정이 되었는데 촬영비용을 의사진 중 한분이 다 내셨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남편과 저는 서로 껴안고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밖엔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의사진 4명 모두 수술하기엔 너무 위험하고, 손가락 모양의 종양이 뇌를 향해서 퍼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하버드병원에서도 가장 희귀한 병들만 맡아서 치료하는 그 유명한 Dr. Liebsch도 만났습니다. 종양이구나 하며 특별한 방사선 치료를 위해 제 머리에 맞는 모자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이상해서 시간을 더 달라며 저희는 2달을 더 지체하며 기다렸습니다. 그 사이에 지금의 남편은 저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시부모님도 아픈 저를 위하여 기도해주셨습니다. 아픈 여인을 친딸처럼 생각하셨고, 시어머니는 며느리 될 사람의 건강을 위해 기도 못한 내 잘못이라며 오히려 미안해 하셨고, 시아버님은 저를 위해 교회에서 일천번제 기도제단을 쌓아주셨습니다. 저도 죄송해서 남편과의 결혼을 안하려 했으나, 몸이 아픈 이유는 이유가 못된다며 남편과 시부모님은 끝까지 사랑해주셨습니다.

시간은 더 지체됐고, 계속 약을 먹어야 되었던 저의 얼굴과 몸과 마음은 너무나도 힘들고 고갈됐으나, 사랑하는 사람의 기도와 사랑으로, 생명샘에서 배운대로 “반드시 무슨 뜻이 있을거야”하며 믿음으로 힘겨운 시간을 이겨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펜실베니아 UPenn병원에서 사회복지사가 정부와 병원에서 제 병원비 모두를 정리해줬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사랑하는 그 이와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입술의 고백대로 주께서는 모든 것을 해결해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2011년 1월, Dr. Liebsch께서는 이것은 암도 아니고, 종양도 아니고, 암처럼 행동하는 면역성 장애라고 말했습니다. 병명은 Igg4-related systemic disease. 이 병명을 직접 발견하고, 연구하고, 치료하는 의사가 마침 같은 병원 안에 있어서 저는 드디어 제대로 치료를 받기 위해 Dr. John Stone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병명을 2년 만에 알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하버드 병원에서 이 병명으로 제가 13번째 환자였습니다. 지금은 제 이름과 연구결과가 의과잡지에도 있고, 아기를 안고 있는 사진이 병원 화보에 실렸습니다. 현재 100명이 넘는 환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찾아와 저와 다른 환자들의 치료 연구결과를 통해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MGH에서 쌓이기 시작한 병원 빚도, 모르는 사람들을 통해, 옛친구들을 통해, 교회의 모금운동을 통해, 조금씩 덜어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도가니에 젖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혼식을 앞두고 2주 전에 몸이 그토록 필요했던 약을 투여 받았습니다. 그리고 2년 후, 볼티모어에 있는 Johns Hopkins 병원에서 무너진 코와 잃어버린 잇몸뼈를 재생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술하시는 의사선생님이 저 같은 선교사 자녀였습니다. 그래서 갈비뼈를 때어서 코에만 집어넣는 수술인데도, 수술 직전에 골반뼈로 잇몸에도 넣어주겠다며 수술비를 안받고 무료로 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약을 끊으니 온몸의 부기가 빠졌습니다. 감정의 기복도 정상으로 회복됐습니다. 코와 잇몸뼈와 이빨도 다시 회복이 되었습니다. 모든 기능이 정상으로 회복되었지만, 의사들은 제가 평생 주사를 맞으며 살아야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임신이 되었고, 건강한 아기를 낳았고, 임신과 모유 먹이는 이유로 필요했던 주사 및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밀검사를 해보니 모든 것이 정상이고 깨끗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살아있는 것도 은혜인데 이렇게 또 하나의 생명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하나님께 평생 감사드리고. 제일 배고프고 아플 때 힘들 때 손을 내밀어 주신 저의 영적인 아버지 박승호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생명샘교회 성도님들과 사랑하는 남편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죽어야 했던 사람이 주님의 섬세한 인도하심과 타이밍과 만남을 통하여 살아났습니다.
이미 죽은 목숨, 저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통증없이 살고 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되고
주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고
주님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저도 살리는 도구로 이 한 평생 주님을 위하여 살아 드리고 싶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예배되기를 소망하고, 아픈 사람, 심령이 상한 자, 외로운 자, 낙오된 자, 복음이 필요한 자, 괴로운 자, 죽어가는 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내가 받은 사랑을 전하며 내가 받은 사랑의 빚을 나도 나누며 죽는 날까지 갚아가겠습니다.” 주님께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어제 반봉혁 장로님을 찾아뵙고 왔는데 생명샘교회와 박승호 목사님께서 낙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섬기시는 일에 큰 힘이 되어 주셨다며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배가 시급할 때도, 화재가 있었을 때도, 어려운 홀 사모님들과 자녀들을 섬길 때에도, 외로운 섬 사역자들을 섬길 때도, 그 바쁘신 목사님과 셀에서 성도님들 모두 땀 흘리며 헌신하며 집도 지어주시고, 가장 뜨거운 여름에 목사님께서 오셔서 헌신해주셔서 많은 힘이 되었고 위로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저도 생명샘교회에 와서 박승호 목사님, 김경애 사모님, 그리고 여러 성도님들을 통해서 받은 사랑이 너무나도 큽니다. 언제나 해같이 미소 지어주시고, 어디를 가든지 (교회든지 선교지든지) 먼저 기억해주시고, 걱정해주시고, 손을 뻗어 주시는 목사님. 그런 목사님이 우리 담임 목사님이심이 얼마나 행복하지 않으십니까? 그런 목사님을 섬길 수 있고, 모실 수 있다는게 감격스럽지 않으십니까?

고난을 통해서 남편과 저는 하나님을 더 붙잡게 되었습니다. 역경과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더 깊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아픔과 치유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섬세한 인도하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저희의 환경의 어려움은 깨끗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소망이 없어 보일 때에도 주께서 함께 계시고 사랑해주심을 알기에, 힘들고 지칠 때에도 영의 눈으로 환경을 바라보며 찬양할 수 있는 믿음을 갖으시기를 기도하며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분 한분을 정말 사랑하십니다. 당신의 상상 이상으로 당신을 깊이 생각하시고 당신이 외롭고 힘들 때 함께 눈물을 흘리십니다. 우리 함께 주님 바라보며 이 땅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구속사를 위하여 승리해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의 만남은 열 권이라는거 아시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