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어머니학교 시연회를 다녀와서.
3진/김경희A지파/오혜원가족/ 이하경집사
저는 평일엔 직장에 다니고 토요일엔 온종일 대학원 수업, 그리고 주말(또는 보름)에 한 번 오는 남편 때문에 교회 봉사를 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래서 시간의 여유가 있는 방학 때 봉사 기회가 있으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봉사에 빚진 마음이 있었기에 집안에 결정을 기다리는 중요한 일이 있었지만, 목포 어머니학교 봉사자가 없으니 도와달라는 요청에 거절의 즉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다급했으면 나 같은 사람에게 구원의 요청을 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 즈음에 중요한 두 가지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한 가지는 기도제목대로 응답이 되지 않아 온 가족이 뿔뿔히 흩어져서 살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한 가지는 저의 올해 진로문제였습니다.
악기를 전공하는 작은아이 때문에 제가 직장을 다녀야만 되는 형편입니다.
계약제 상담교사를 채용하는 시기가 이 즈음 입니다. 새로운 학교에 상담교사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17일 이전에 보고 결정이 되어 20일 어머니학교에 홀가분하게 출발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17일 이전에 면접 보는 학교는 한 곳 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학교는 모두 어머니학교 시연 기간과 겹쳐 있었습니다. 17일 이전에 합격 발표 시간이 지났지만 연락이 없었습니다. 어머니학교와 직장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미련이 남아 교육청에 들어가니 마침 어머니학교 이후에 면접하는 학교가 있어 집에서 멀지만 일단 지원서를 내고 어머니학교에 가겠다고 최종 연락을 했습니다.
두 가지 기도에 응답되지 않자 저는 울적해졌습니다.
‘올해 나의 표어는 “ 감사의 안경을 쓰자”(모두 감사로 볼 것이다)로 했는데...
새해부터 감사가 아니라 불평거리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통과해야 할 시험인가?
범사에 감사!
이 범사에는 분명 내 뜻대로 안되어도, 기도 응답이 안되어도가 포함된 것이다.
기가 막힌 상황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원망이 섞인 의문이 생기려 할 때 마다 그동안 들었던 설교와 아는 믿음의 지식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읊조렸습니다. ‘그럼에도 하는 감사가 진정 감사다. 틀림없이 무슨 뜻이 있을거야~’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며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꿔보았습니다.
‘네 식구가 모두 제각각 살게 되었는데, 이번 학기는 나의 자유다. 주중 5일은 혼자 살게 되었으니 공부에 집중할 수 있고, 셀예배도 우리 집에서 시간제한 없이 계속해도 된다. 직장은 학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상담기관도 있으니 파트 타임으로 일하면서 나머지 시간은 상담연수 받는 시간으로 활용하자’
그러면서 왜 내가 어머니학교 시연팀에 함께 할 기회를 주셨는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여러 상황 때문에 못 간다고 할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최종적인 확답을 해야 할 즈음에 내가 못 간다고 하면 앞장서 일하는 사람에게 힘이 빠지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는 안될 것 같았습니다. 준비를 못하여 잘 하는 것이 없어도 조장의 뒤를 따라 다니며 시키는 대로만 하자는 생각으로 갔습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교제하면서 그들의 하나님을 재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란 기대를 했습니다.
훈련된 믿음의 사람들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불평이 나올법한 환경에 특수훈련을 받은 전투부대가 투입된 것입니다. 도착하자마자 황무지와 같은 열악한 환경을 최고급 호텔이벤트 분위기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꼼꼼하게 체크하고 체크해서 준비하는 편지팀 리더들을 보며 감탄의 감탄을 했습니다. 깨알 같은 메모지를 보니 머리가 아파옵니다. 찬바람으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공주의 방으로 만들어 그곳에 온 지원자들을 공주로 착각하게 했습니다.
저는 이번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피택되어 편지팀으로 왔지만, 다음에 봉사의 기회가 되면 그래도 좀 편한 팀을 선택하려고 각 팀이 하는 일을 유심히 탐색했습니다.
향기팀의 하는 일을 보았습니다. 숙소에서 뭘 하는지는 못 보았지만 끝나면 숙소로 가서 쉬기만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공주처럼 호텔과 같은 강당에서 지원자와 같이 여유 있게 식사하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리필을 요구할 때 교양 있게 손을 들어 편지팀을 부릅니다.
아아~ 편지팀은 머슴이 되어 냅다 달려갑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제각각인 지원자에 집중해서 마음을 열게 하고 매 시간의 학습목표를 달성해야 합니다. 강의 시간에도 꼼짝 할 수 없습니다. 지원자가 있는 동안에는 그들과 끝까지 함께 해야 합니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틀어져 있는 히터의 매연에 머리는 지끈지끈, 목은 갈라지고.
이럴 때 편지팀은 일을 핑계로 밖으로 나와 시원한 공기를 쐴 수 있는데 향기는 자리를 비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옥합팀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여기도 공주과 입니다. 지원자와 면대하면서 갖는 피로는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조별모임에 따른 과제, 안해도 됩니다. 조용히 자리에서 기도만합니다. 품위가 느껴집니다. 기도하는 사람으로 거룩하게도 보입니다. 권위도 느껴져 기도 부탁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웬걸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른 팀들은 한시름 놓고 휴식을 취하고 수다 떨면서 시간을 즐기는데 각조 테이블마다 혼자 앉아 있습니다. 처음에는 왜 그러고 있나 했습니다.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아! 사역지에 가는 중보자들이 하는 일이 이런거구나’
쉴 틈이 없이 중얼중얼 합니다. 테이블에 놓은 물병의 물이 많이 소모되는 걸 보니 목이 많이 아픈가 봅니다. 계획 단계부터 기도로 단을 쌓아야 합니다. 조의 지원자가 소극적이거나 불편하다는 말이 나오면 자신의 기도부족으로 책임 느낍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려면 기도로 방패 역할이 만만해 보이지 않습니다. 잠시도 긴장을 풀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책임이 막중해 보입니다. 만만해 보이지 않습니다.
찬양팀~ 마냥 이뻐~! 보입니다. 젊었을 때 내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인물로 뽑았나 싶었더니 몸매도 좋습니다. 거기에 미소까지 예쁩니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 환상적입니다. 여기는 제가 넘봐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니 그 환한 미소가 시들해져 보입니다. 스타일 때문에 구두를 신고 있어야 하니 다리도 아픕니다. 탁한 공기에 목이 아프고 갈라진다고 호소합니다. 앞에서 진행하고 있으니 따뜻한 물을 계속 먹일 수가 없어 안타까왔습니다. 휘발유 냄새에 머리가 지끈지끈. 몸으로 할 수 있는 거라면 내가 대신해서 하고 쉬게 하고 싶은데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라 마음만 안타깝습니다. 다음엔 두 팀으로 나눠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편지팀~ 선택에 여지 없이 피택되었습니다. 힘이 좋아 보였나 봅니다. 아직은 다리 튼튼하고 민첩하니 스텝들이 잘 보신 겁니다. 3층까지 오르락 거리는데 종아리 아프고 발바닥 아프지만 견딜만 했습니다. 운동화로 스타일 구겼지만 오르락 내리락 뛰어다닐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였습니다. 어떤 분은 스타일 살리려고 굽 있는 신발 선택 했습니다. 그분 아마 지금도 다리 아플 것입니다.
제가 편지팀이라 말이 많아집니다.
강의와 식사 공간이 같아서 강의 끝나면 잽싸게 식사테이블로 변신시킵니다. 하루 세 번 이렇게 합니다. 그 잽싸고 일사분란한 행동은 가히 달인 수준입니다.
쉬는 것도 긴장하면서 완전무장하고 쉬어야 합니다. 넋 잃고 있다가는 빈틈이 지원자에게 예리하게 노출됩니다. 그러나 짬짬히 틈새를 노리며 수다 떠는 재미는 다른 팀에서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황집사님도 수다떨면서 친해졌습니다. 황집사님이 우리교인인 것 어머니학교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제일 아쉬웠던 것은, 음악이 흐르는 호텔 같은 분위기를 연출시키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 주고, 옆에 서서 시중드는 것이였습니다. 그러다가 리필의 서비스가 끝날 즈음에 컴컴하고 시원스레 추운 부엌 딸린 비좁은 공간에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듯 서듯,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자세로 식사하는 것이였습니다. 부르면 먹던 수저 놓고 이것 저것 챙겨 주다가 자리에 돌아오면 내가 먹던 수저와 자리와 음식이 바뀌고 없어지고~
먹는 속도가 느린 조사모님과 조 집사님이 제일 힘들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움직이면 살이 좀 빠질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권사님의 호텔급의 맛있는 음식 때문에 살이 더 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살이 빠지는 조사모님과 서집사님을 보니 저와 확 비교가 되었습니다. 그 분들이 얼마나 신경 쓰고 일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징표였습니다.
첫째 날 방이 너무 추워 입고 간 외투를 뒤집어 쓰고 잤습니다. 혹한기 극기훈련했다며 불편함을 호소하자 시도 때도 없이 “합심, 침묵, 순종”을 외치는 조집사님 때문에 함께 웃었지만 그 구호는 불평을 잠재우는 파급효과가 있었습니다.
훈련의 위력을 보았습니다. 특수부대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편지팀이 제일 괜찮은 것 같습니다.
애찬팀~
저는 죄송해서 부엌을 편히 못 들어갔습니다. 남자 집사님들의 설거지 하는 모습에 감동과 죄송함, 그리고 다른 교회에 자랑하고픈 마음이 섞였습니다. 내 남편도 언젠가 이런 봉사의 자리에 있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편치 않는 몸임에도 난방이 잘 안되는 찬 부엌에서 새벽부터 장시간 일하시는 권사님들이 병 날까봐 조바심 났습니다.
음식은 광야에서 내리는 만나처럼 풍족했습니다. 성민교회 봉사자 식구들에게도 바리바리 싸줄 만큼 넘쳤습니다.
식사시간에 강당에 요리전문가의 포스로 머리에 하얀 탑 모자 쓰고 등장하는 권사님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잘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요리 이름에서부터 내가 감히 할 수 없는 것이였기에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쉽고 간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을 하나 건졌습니다. 약과 요리법을 적어 왔으니 다음 주부터 남편이 질리도록 해줄 것입니다.
식당을 하는 언니의 일을 가끔씩 돕는 저는 식당일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압니다. 그래서 식당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번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식사하다가 실수로 잘못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다음 봉사 때는 기왕 하는 것 기쁨으로 샘파의 식당봉사를 하려고 합니다.
가정과 직장일을 내려놓고 3박 4일의 봉사길에 오른 범상치 않은 믿음의 분들과, 교제하며 이들의 삶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던 봉사의 여행은 저에게 행운였습니다.
봉사의 여행 전에 미해결된 직장은, 어머니학교 첫날 월요일 아침에 합격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보다 경력이 많은 선생님으로 선택했는데 그 분의 개인사정으로 취소하여 저에게 연락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참 특별하시고 또 잘 모르겠습니다. 기도 중에 확신이 있었는데 왜 이렇게 돌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이렇게 이루신 일인데 돌렸다면 그 과정에서 뭘 깨닫게 하려 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포기하고 봉사의 길을 선택했기에 상으로 주신 걸까?
스스로 자문하여 보지만 제가 하나님이 아닌 이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또 한번 되집어 보았습니다.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감사를 선택하는 경험을 하였고 그리고 내려 놓는 연습을 했습니다. 작은 것 하나도 내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인정하고 겸손해야 함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내 원대로 안된 것은 하나님의 원함대로 하신 것이며, 내 원대로 된 것은 나에게 져주시거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것이라고 나름 결론지어 보았습니다.
화요일에 계약서 작성을 위해 학교로 오라는 말에, 이미 내려놓은 문제였던지라 당당하게 목포에서 어머니학교일 때문에 목요일에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목포에 있는 동안 머리가 아파서 계속 토하며 앓고 있다는 큰아이가 걱정되었습니다.
집에 도착하고 저는 또 한번 놀랐습니다.
236셀 오혜원 셀장님과 이범희 집사님이 갖다 주신 반찬, 간식 등으로 냉장고가 넘쳐 있었습니다. 장조림, 오이무침, 멸치볶음, 오징어 포, 참치찌개, 빵, 떡, 케잌, 등 냉장고에 넣을 곳이 없으니까 베란다에 내놓을 정도였습니다. 너무 큰 셀 식구들의 사랑에 잠시 정신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까다로운 아이들의 입에 맞게 정성을 다한 음식에 아이들이 끼니를 거르지 않고 잘 먹고 있었습니다. 똑같은 재료인데 엄마가 한 것보다 훨씬 맛있다는 아이의 말이 이번에는 섭섭하지 않고 용서가 되었습니다.
어느 배우의 ‘그냥 숟가락만 올려 놓았다’는 소감 처럼 저도 봉사의 자리에 발가락만 담글 정도의 일만 했는데 넘치도록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환경보고 내가 판단하여 결정하곤 하는 내게 마음을 드려 아뢰면 봉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쉽게 밀어 부치는 성격이 아닌 오혜원 셀장님이 처음에 나의 상황을 의논했을 때, 담대하게 하신 말씀 또한 결정의 힘이 되었습니다.
“집사님, 그냥 믿고 가세요. 어떻게 되겠죠~”
‘합심, 침묵, 순종!’ 셀장님의 말에 순종하고 싶어졌습니다.
나의 순종하는 마음을 원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어떻게 할까요?“ 라고 의논하는 습관을 익혀야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주말에 오는 남편이 근무지로 출발 하루 전에 목포로 떠난다는 말을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발령지도 내 기도대로 되지 않아 근심이 가득한 남편에게 교회일로 집을 비운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워서 기회만 엿보다가 하루 전날에 조심스럽게 꺼냈습니다. 온갖 비난의 말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조용했습니다. 아~ 이것이 기적이구나! 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안되는 상황이라고 내 선에서 판단,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께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물어야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최종결재자인 하나님께 가져가서 결재 받고 그 지시에 따라야 하는데 그동안 제 선에서 일을 처리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막내의 유치원 졸업식 참석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온 집사님을 비롯하여 각양의 어려운 환경을 뒤로 하고 봉사팀에 합류한 우리 섬김이의 모습를 보면서, 하나님 앞에 섬김을 새로운 마음으로 다짐했다는 지원자의 간증은 ‘밀알이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 맺는 의미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회복되는 어머니들의 씨앗이 우리의 봉사와 헌신으로 남쪽에서 뿌려져 북쪽으로 번식하기를 기도하고 축복하며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