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은
정안자 권사
주님!
이 가을은 열매로만 말하게 하소서
제 각각 토해내지 못한 울분으로 하여
숨 몰아 쉬며 눈물 흘리지만
무언가 닿을 듯 말듯한 아쉬움 속에
못내 움키지 못한 아픔으로
잠 못이루는 밤이 있지만
버선 목 뒤집듯 속내를 다 들어내지 못한 안타까움으로
명치 끝이 울리지만
이 가을만은 침묵하며 다만 열매로만 말하게 하소서
저 맑은 하늘 끝
잎새는 모두 바람에 지고
붉은 빛으로
보라 빛으로
갈색으로 영글어
제 모습 들어내는 저 열매로만 말하게 하소서
푸른 잎새 속
낮이면 햇살이 따갑고
밤이면 이슬에 젖고
내리는 비에 마냥 숨죽이고
바람이 불면 또 그렇게 흔들리며
못내 감추어 안으로 안으로만 살찌워온 열매
목마름과 더위에 견딘 그 인고와
비바람에 부대끼던 그 시달림도
어제인 듯
그제인 듯
모두 접고 열매로만 영글어온 나날들
오 주님!
이 가을만은 깊은 고요속에 마른 가지로 우뚝 서 있는
저 감나무로, 포도나무로, 밤나무로만 말하게 하소서
이 가을만은 다만 열매로만 말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