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내적치유 소감문 ( 이동찬 )

작성자 내적치유 날짜2006.12.27 조회수2257

이제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불과 10여개월 남짓..........................


로마서,샘파,아버지학교,그리고 내적치유 과정을 거쳐 오면서 때로는 혼란스러움, 때로는 무언가 모를 아쉬움, 때로는 가슴이 터질듯 한 답답함, 때론 따스한 손길, 숨 쉴 틈 없이 달려온 한 해 인것 같습니다. 혼란스러움의 시작은 알아듣지 못하는 말씀, 그리고 휴식의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들이 자리 잡고 있었으리라 생각 됩니다. 아쉬움의 시작은 무언가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교회의 교육과정에 좀 더 충실하지 못한 아쉬움 이었을 겁니다. 가슴이 터질듯 한 답답함은 그 길이 아님을 알면서도, 인도하는 길로 방향을 잡았어야 하면서도 결국은 엉뚱한 길에 서있음을 알았을 때의 마음이었습니다.


따뜻한 손길의 형제들의 품성에서 나오는 성령님에 대한 가르침, 이런 과정을 거치며 신앙 생활에 좀 더 다가 설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왜 라는 단어는 머리 한구석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왜 나는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것일까? 왜 마음을 온전히 열지 못하는 것일까? 왜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일까? 왜 하나님이 계심을 알면서도 가끔씩 하나님이 계심을 부인하는가? 궁금함의 연속에 이번 내적치유를 거치며 내 마음 속에는 이런 나의 여러 모습이 잠재해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가 아닌 여럿 아직도 구석 한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나, 껌껌한 속에서 나오지 않으려는 나, 존재의 거부에 움크려 있는 나, 깊은 웅덩속에 빠져 아무도 모를거라 생각하고 행돟하는 나, 깊은 사색에 잠겨져 혼자인 나........


이런 나의 모습을 찾으며, 돌아보면서 내안에 다한 분의 모습을 보지 못했음을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면서도 찾으려 찾으려 해매이면서도 마지막에 혼자서 포기하고 돌아서는 안타까움 그것이 나였습니다. 답답함, 무엇인지 모를 안타까움, 그리고 그리움, 동경..................


내적치유를 시작하면서 사실은 아내의 신청을 교육 당일에 알아서 짜증의 말 한마디,


그리고 왜 해야 되는지의 막연한 의무감에 대한 지루함 그리 좋은 출발은 아닌 듯 하였습니다. 찬송을 하고 교육을 하고. 서로가 교감하는 대화를 나누고 기도를 하면서 교육은 시작되었습니다. 1주, 2주 .................. 시간이 지나며 내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알고 대화를 시작 하였습니다. 마음을 열고 형제분들과 대화를 시작하면서도 혼란스러움의 나의 존재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을 열지 못하고 대화로써 하기 힘든 이야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어찌 할지를 모를 때 언젠가 말씀해 주셨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교육시간에 말씀 중 항시 성령님은 옆에 같이 계시니 기도를 드리고 고백을 해보라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기도드리며 내마음속의 응어리를 펼쳐 놓았습니다. 구석 한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나, 껌껌한 속에서 나오지 않으려는 나, 존재의 거부에 움크려 있는 나,깊은 웅덩속에 빠져 아무도 모를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 깊은 사색에 잠겨져 혼자인 나에 대해서.................... 기도 아닌 고백을 한 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무거움을 던져버린 파란 가을 하늘의 시원한 만큼이나 산뜻하였습니다. 무엇인지 모를 포근함, 풍족함 그리고 큰 어려움을 이겨낸 자랑스러움이 내 마음속을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아 내안에도 성령님이 존재하고 계신다는 생각에 확신을 더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내영적인 세계는 현재까지의 내가 아닌 주님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 인도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으로 스스로 그리스도인임을 밝히고 상대방에게 이야기할 때 서스럼없이 전도의 대화를 나누면서 뒤돌아서서 큰 기쁨을 느낍니다. 이제 변화의 시작에 있습니다. 확신의 길로 인도하시어 더 많은 신앙 체험이 함께 하기를 기도드리며, 신앙체험을 하지 못하는 주변의 분들에게도 인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나의 내면에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기뻐하며 인격적인 하나님과 교류함을 큰 영광으로 생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