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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9:1-8 “미리 작정하고”
1. (참 연보)를 억지로 하지 말고 미리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5절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연보는 마게도냐의 교회들이 하기 전에 일 년 전부터 먼저 고린도교회가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바울이 마게도냐의 교회들에게 이야기 했고, 그 고린도교회의 열심이 마게도냐 사람들을 분발하게 했던 것입니다. 마게도냐교회는 고린도교회보다 늦게 연보를 시작했지만 더 빨리 연보를 거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가 먼저 시작은 했지만 거짓 선지자와 여러 가지 문제들로 작정한 연보를 중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더이상 연보에 대해서 편지를 쓸 필요는 없지만 고린도교회가 이 연보의 일을 잘 마무리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자랑을 헛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의 연보 시작을 마게도냐교회에 자랑해서 그들은 잘 마쳤으니 너희도 잘 마무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는 연보는 의무나 체면, 자랑이나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참 연보는 형제에 대한 책임의식과 한 몸이라는 공동체 의식, 한 하나님을 믿는 신앙적 사랑 안에서, 은혜받은 자가 은혜를 흘러 보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결국 참 연보라는 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주는 자나 받는 자, 모두가 축복이 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는 자도 기쁘고 받는 자도 감사한 진정한 연보는 모두에게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연보의 중요한 개념은 충동적 혹은 우연한 결정이 아니라 내적인 결단에 의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내면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면 내게 나눌 수 있는 것을 주셨다는 결단을 하고 마음을 정해서 하는 것이 참 연보입니다. 액수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해진 결단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참 연보하는 자신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쁨이고, 도움을 받은 자에게는 유익과 감사가 되고,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2. (심는) 대로 거둔다고 하십니다. 6절
연보는 뿌리는 것에 비례하여 거둔다는 것입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 11:24-25)’ 여기저기 흩어서 구제하면 가난하게 될 것 같지만 오히려 부자가 되는 일도 있고, 오히려 과도하게 아꼈을 때 가난하게 되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이런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눅 12:33)’ 우리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둘 수 있는 통장을 받았고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도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잔고를 채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채워 두는 것을 못 믿는 것이죠. 그 원금이 보존될 것이라는 것을 못 믿는 것이고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 19:17)’ 마음에 작정하고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돕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입니다.
3. 참 연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8절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넘치도록 은혜를 부어 주실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돕기도 하고 나누라고 하나님이 능력으로 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받은 것입니다. 받은 것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잘 흘려보내고 이웃들을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섬깁시다. 그러면 그 착한 일을 계속하도록 하나님께서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이라고 까지 했는데, 갚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겠냐라는 것입니다(잠 19:17). 우리 하나님은 누가 착한 일을 했느냐를 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내 뜻대로 했느냐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불행에 처한 형제를 돕는 건 선행입니다. 우리가 의로워졌기 때문에 우리는 선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의로워졌기 때문에 선행을 작정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넉넉함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고후 9:8). 성도는 내게 있어서 넉넉함이 아니라 적더라도 내가 가진 것 안에서 나누어 줄 수 있는 넉넉함이 생기는 것입니다(고후 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