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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18-23 “임마누엘”
1.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합니다. 18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원, 시작, 출발, 탄생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독특합니다. 이러한 기원을 가진 사람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정혼 자체가 법적인 기혼입니다. 정혼하고 실제로 동거하지는 않지만, 부부로서의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있는 결혼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혼하면 여자를 아내라고 하고 남자는 남편이라고 호칭합니다(마 1:19-20). 정혼 기간은 일년 정도인데, 만약 이 기간에 남자가 사망하면 그 정혼한 여자는 과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의 문화는 정혼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과 행음을 하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신 22:23-24). 이런 유대의 문화 속에서 정혼한 유대의 여자 마리아는 동정녀로 잉태된 것입니다(눅 1:34-35).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의 역사에 의한 탄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육체적 이유로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육신을 지배하는 죄와 사망이 그에게는 있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인간의 원죄를 물려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할 하나님이 어린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롬 3:23). 메시야는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할 하나님의 어린양이기에 성령의 역사로 태어나야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신이시고, 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은 아이가 잉태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요?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성경은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 했는데, ‘의로운’ (헬/ 디카이오스)은 ‘곧은’, ‘공정한’, ‘청렴결백해서 불의에 굴복하거나 흔들림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율법에 따른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살고자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율법을 뛰어넘어 사랑하는 정혼녀도 보호하고, 의로운 자로서 부정한 여자를 데리고 살 수도 없어서 가만히 끊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 사자가 꿈 속에 나타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었습니다. 의로운 사람 요셉이 성령으로 잉태한 아내를 데려오는 것은 대단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상식을 뛰어 넘어야 하는 것이고, 사람들의 모든 시선과 생각을 다 감수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받아들입니다. 여러분은 완전한 신이시고,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관계적인 생명이 아닌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을 믿고 받아 들이십니까? 이것을 믿고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시작에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시작에 이 성육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제물로 한 번에, 영원히, 온전히, 한 번의 제사로 우리를 온전하게 회복할 수 있는 예수가 완전한 신으로 완전한 인간으로 오셔야 하기 때문에 동정녀가 필요했던 것입니다(사 9:6).
2. 하나님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 하셨습니다. 21절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예수!’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입니다(눅 2:10-11).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요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이 어린 양이로다, 요 8:32, 눅 4:17-19, 사 61:1-2).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깨닫는 것과 예수님이 나의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이 두 가지를 꼭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구원하시는 ‘자기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그 통치를 전인격적으로 인정하는 모든 메시아의 백성을 뜻합니다. 전인격적이라는 말은 우리의 인격, 성품, 지성, 섬김, ... 우리의 모든 것을 통틀어서 메시야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지식으로는 인정하는데 삶으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백성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계 5:9b-10, 롬 6:4, 벧 2:9-10).
3. 예수님은 (임마누엘)이 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23절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이 완성된 것입니다(사 7:14). ‘임’(함께 with), ‘마누’(우리 us), ‘엘’(하나님 God)은 ‘God with us’,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즉,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죄악으로 인해 절망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이 땅에 강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사 41:10,수 1:9, 사 44:21, 마 28:20b).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정말 최고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