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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1:1-6 “은혜와 평강”
1. 교회와 성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으라고 합니다. 1-2절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것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어디에 있든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이루는 공동체가 하나님이 불러낸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성도(헬/ 하기오스)는 ‘분리하다’, ‘구별하다’는 뜻입니다. 즉, 성도는 이스라엘과 다른 이방 민족들에게서 구별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제사장의 직분의 삶을 사는 자이고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의 소유주는 하나님이시고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벧전 2:9-10).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어야 하나님의 교회로, 하나님의 성도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은혜(헬라어/ 카리스) 즉,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로부터의 은혜라고 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존재가 은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어떤 행위나 자격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호의이고 선물입니다. 인간은 죄로부터 분리되고 하나님 나라를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선제적 대속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고 세상과 죄에서 멀어지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는 우리의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대속해 주신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있어야 우리는 평강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평강(헬/ 에이레네)은 ‘확증된’, ‘보증된’ 그런 뜻입니다. 평강은 은혜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구원이 보증되고,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닌, 세상으로부터 멀어진 자가 되었기에 얻어지는 것이 평강입니다. 예수의 선제적 희생에 따른 대속의 은혜로 주어지는 평강이며 하나님나라를 살 수 있도록 주어지는 평강입니다(요일 4:9-10).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가 우리를 세상과 죄에서 멀어지게 하기에 우리에게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평강이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과 멀어져 평강할 때 하나님나라를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구원은 한번에 영원히 온전히 이루어집니다(히 10:14). 그러나 아직 여전히 죄인된 모습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계속 하나님과 화목한 존재로, 죄에서 멀어지는 존재로, 구별되는 존재로 은혜가 감싸주는 것입니다.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도, 죄에서 멀어질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은혜 때문에 평강해지는 것이고, 여전히 죄인인데도 불구하고 그 은혜 때문에 하나님나라를 살 수 있는 것입니다(요 5:24, 요일 5:11-13). 내가 의인이라서 하나님과 화목한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의인이 되어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예수의 피가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인한 평강이 없으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없습니다(빌 4:7).
2. 믿음 안에서 우리에게 (고난)이 넘치면 (위로)도 넘친다고 합니다. 5절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 반드시 하나님의 위로가 넘쳐 그 고난을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받은 자이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 세상이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우리를 세상은 흔드는 일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요 15:18-19). 복음으로 인한 고난, 그리스도를 믿는 까닭에 받는 고난, 신앙 안에서 받는 애매한 고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수고하다가 받는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면 그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한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위로도 넘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자에게 오는 세상의 환난에 하나님은 계속 위로하는 이러한 결합이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이고, 규정이라는 것입니다(롬 8:17). 고난도 그리스도 때문에, 영광도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는 장래에도 그리스도 때문에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영광에 참여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메시야적 고난입니다. 구속사적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은혜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고 현재를 견디게 한다는 것입니다(벧전 5:10-11, 롬 8:18, 요 11:25-26).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후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