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2. 17. 수요예배 노필례지파 오귀순셀 윤순영 집사

 

창세기 43

말씀요약

1-14

요셉의 형제들이 베냐민을 데리고 에굽으로 양식을 구하러 가겠다고 했지만 야곱은 매우 불안해 했다. 유다의 설득으로 벤야민을 데리고 가게 되지만 야곱이 벤야민을 잃을 각오로 보내준다.

 

15-34

형제들은 요셉의 청지기에게 도로 가져온 돈에 대한 사연을 말하지만 청지기는 하나님이 넣어주신 것이라고 안심시킨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안부를 묻고 동생 베냐민을 보고 축복을 빌며 감격을 한다. 요셉이 드디어 형제들과 식사를 하게 된다.

 

소감 및 적용

야곱은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임에도 기근 앞에서는 더이상 버티지 못했다. 요셉을 잃은 큰 슬픔 후에 막내 베냐민을 붙들고 살았지만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기근 앞에 목숨과도 같은 벤냐민도 내려놓아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구원이라는 큰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이외의 것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야곱의 인생 상황을 배열해 가셨다. 목숨만큼 아껴 내려놓지 못했던 베냐민을 내어놓고 하나님을 향해 고개를 든 야곱이 있었기 때문에 야곱의 가족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나아가 이스라엘의 족보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야곱이 고난 앞에 원망하며 살았다면 이스라엘도 없었을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야곱이 원망만 하며 살아가도록 그냥 두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택한 백성에 대해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주님께서는 야곱이 겪어 마땅한 고난을 의롭게 사용하시기 때문임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본문 OT를 위해 나는 이스라엘의 백성,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야곱처럼 세상 속에서 쫓던 것을 버리고 하늘을 바라보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조금 늦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뒤지지 않을세라 16년을 열심히 살았다. 나름 일에 대한 자부심과 신념으로 열심히 산다고 하는 나의 삶 앞에 하나님의 고난의 초대장이 왔다. 건강이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줄곧 달리고 달렸다. 어느 순간 가야 할 종착지에 대한 분명한 목표도 없이 무작정 달려만 왔다. 그런 중에도 욕심내지 않은 것까지도 주어지면서 하나님은 내가 의도치 않아도 마음 속 염원을 이루어가시는 분이시라는 확신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동료에게서 배신의 참맛을 보았다. 한때는 살아있는 인성이라고 달콤하게 부르던 동료가 어떤 것에 대한 이해관계가 맞물렸을 때,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막말을 쏟아부었고 나에게 아킬레스건이라고 생각한 하나님을 들먹여가며 모욕을 퍼부었다. 정신없는 사람처럼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난 그날 둘도 없는 동료를 잃고 말았다. 이해관계가 복잡해 있을 때 나름대로 상대의 마음을 만져주려고 찾아간 그 자리에서 당한 배신의 펀치는 강한 암흑 속을 뒹굴게 했다. 그날 이후 억울함과 분노가 삶의 두려움으로, 삶에 대한 공허함으로 다가왔다. 그 자리에서 대꾸 한마디 못한 나 스스로가 너무 바보같이 당했다는 억울함에 밤낮없이 증오심과 자괴감이 내 마음을 짓밟았다. 주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로 토설하고 찬양으로 눈물을 쏟았고 셀 원들의 기도는 한없이 깊어졌다. 그러는 사이 겨우 새살이 돋아나면 상처를 또 긁어 딱지를 떼고 아픔을 곱씹고 곱씹으며 하루하루 버티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날 바람처럼 스치는 생각 하나!

 

안 들어 주시겠구나!’

 

선한 자의 염원을 소리 없이 이루어가신다고 믿었던 내 마음이 한순간에 바뀌는 순간이었다. 1년이라는 긴 시간을 그저 버틴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동안 매일 매 순간 분노의 주범이 떠올랐다. 연이어 나의 분노와 억울함에 직면하면서 악한 나의 본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령님을 모신 그 마음에 악한 것들로 가득 채워 그 마음을 자꾸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선한 자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신데 나는 선하지 못한 걸 매 순간 택하고 있구나! 나의 아픔을 거울처럼 들여다보며 연민을 느끼면서 주님의 자녀로서의 삶이긴커녕 인간적인 생활도 무너졌다. 내가 선택한 고난이 길어지고 지쳐가고 있을 무렵,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정답지가 성경에는 있을 것인데 내가 그 보물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말씀으로 삶의 진리를 꿰어놓고 인생을 조망할 때 바라볼 수 있는 청사진으로 만들어 주신 말씀을 진심으로 알려고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항상 예배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지친 몸을 이끌고 찬양 대까지 섰으니 이것 또한 나의 최선이라고 자신을 격려하며 지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열심히 내가 생각하는 열심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다. 교회 다닌다고 자세로만 성경책을 지니면서 내가 크리스천이라고 말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철저하게 믿고 있었으니 이 어리석음을 어찌한단 말인가?

 

아파도 병원도 잘 안 가는 내 속성을 뿌리치고 내 발걸음으로 이명자 전도사님을 찾아갔다. 기꺼이 토요일까지 헌납하며 목이 마르고 주린 마음을 채워주시려고 시간을 내어주셨다. 거기에서 마주한 이스라엘 구원의 역사가 다름 아닌 나의 역사로 들리기 시작했다. 유월절을 통해 죽음의 문턱을 넘게 하신 하나님을 만나면서 내게 주신 광야의 고난까지도 허락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다. 유월절 주님의 희생을 잊고 내 삶의 굴레에만 빠져 하나님을 잊고 바쁘게 지내는 것도, 내 아픔에 갇혀 샬롬의 정신을 잃어버린 것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시는 것을.

삶의 슬픔만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주님께서는 새 예루살렘을 향해 고개를 들도록 기꺼이 그 광야의 고난까지 허락하셨다. 왜냐하면 나는 주님의 기쁨이 되도록 하기 위해 기꺼이 어둠과 죽음가운데서 이끌어 내어 주셨기 때문이다. 쓰임새에 따라 온전하게 빚어가시고 다듬어 가시는 주님과 조우했다. 현실적 굴레에만 빠져 외눈박이 인생으로 살아온 나에게 두 눈을 뜨고 새 하늘과 새 소망을 바라보게 하셨다. 성령충만에 감사하다.

 

하나님은 야곱이 생존의 기로에서 베냐민을 포기하게 만든 것처럼 나에게도 기꺼이 포기하게 하신 것이 있다.

바쁘다는 이유로 진리의 말씀을 그저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는 것을 당당히 포기한다.

 

결단

쿰노트를 삶에 적용하며 매일 깊은 교재를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주님이 허락하신 비젼을 공유하겠습니다.

주님의 마음이 가 있는 어린 양을 찾아 함께 성장하도록 지지하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충만하신 주님, 이번 묵상을 통해 주님이 주신 귀한 깨달음에 감사드립니다. 이런 마음이 머물러 있는 깨달음이 아나라 삶을 통해 드러나도록 인도하시고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부족한 저를 빛 가운데로 불러내어 너는 내 것이라 지명하여 불러 주셨사오니 하나님의 비젼을 함께 품고 나가는 자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이 머물러 있는 양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먹일 수 있도록 행하겠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광야 속에서도 헤메일 때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지켜주실 주님을 의지하오니 삶의 풍파에 비틀거려도 이내 일어나게 하시고 지혜와 명철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기쁨의 딸로 온전하게 살아가도록 인도하실 주님을 의지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