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만남이다. 소중한 만남이 있고 스치는 만남도 있고 상처로 남는 만남도 있다.
밀레의 작품 '접목하는 농부'에는 밀레와 루소의 우정에 대한 뒷이야기가 있다. 밀레는 화실에 걸려있는 그림이 아니라 생명력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따라서 밀레의 그림 중에는 그 당시 성당이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은 많지 않았고, 잘 팔리지 않아 생활도 어려웠다. 이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루소가 다른 사람의 심부름인 양 밀레의 이 작품을 사서 자기집 벽에 걸어두었다. 나중에 루소의 집을 방문한 밀레가 그 그림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친구 루소가 자신의 자존심과 인격을 배려하였음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이다.
미국 대각성 운동을 일으킨 조나단 에드워드의 책 '신앙의 열정'에서 <창 2:18,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하신 내용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자신의 존재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아담 마음 속에 "나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셨다. 아담 마음 속에는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 있었다. 그래서 하와를 만들어 그에게 돕는 배필로 데려오게 하셨다.
누군가가 더해져야 온전해지는 인간의 구조로 창조하셨다.
'돕는 배필' - '에제르 케네그도' - 그와 마주 하는 것으로서의 도움' 상하 관계, 종속관계가 아닌 인격적 동등성에 근거한 것이다. '도움'은 서로 다른 역할에 대한 것이다.
이 땅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사랑의 힘, 연합의 힘이다. 삼위일체의 생명이 그렇고, 교회가 그렇다. 요 15:13-15
모두가 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는 세상에서 복음 때문에, 하나님 나라, 구속사를 위하여 자신을 양보하고, 희생하여 얻는 소중한 만남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동역자, 친구, 돕는 자로 세워주신 관계 - 목자와 양, 스승과 제자, 친구관계
1. 우리에게는 생명처럼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삼상 18:1-4
요나단은 처음 언약을 맺었을 때 자기의 마음을 언약으로 표현했으며 다윗에게 자기의 겉옷, 군복, 칼, 활, 띠를 주었다.
언약, 의리가 중요하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이런 의리 있는 만남이 있어야 한다. 책임질 수 있는 관계, 허물이라도 덮어줄 수 있는 관계여야 한다.
이스라엘의 야드 바셈(Yad Vashem)이란 홀로 코스트 학살 기념박물관의 '야누스 코르자크 정원'에는 코르자크 선생님의 조각상이 있다. <위대한 사랑 - 코르자크 선생님> 이 책에 의하면 독일군이 폴란드의 어느 학교에 들어와 유대인 어린이들을 데려가려 할 때 두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코르자크 선생님은 '무서워할 것 없단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마음이 편해 질 거야.'라고 달랬다. '함께가자. 선생님 같이 가면 무섭지 않지?' 하면서 그는 폴란드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을 호송하는 트럭에 아이들과 함께 올라 탔고, 가스실에서 함께 죽었다.
삼상 20:23 너와 나 사이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신앙으로 만난 관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명을 위하여 만난 관계가 있는가? 생명처럼 사랑하는 관계, 1:1, 소그룹에서 이런 만남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평생에 한 번은, 한 사람은 얻어야 한다.
2. 우리에게는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나를 도와 줄 사람이 필요하다. 삼상 19:1-5
"어찌 왕이 죄 없는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신앙의 관계란 위대한 만남이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거룩한 만남, 운명적인 만남이다.
무언가 귀한 것을 얻으려면 대가를 지불하라. 자신의 의만 강조하고 배우자의 허물을 지적하고 자식의 잘못만 충고하는 구조로는 사람을 얻을 수 없다. 요나단이 다윗을 "생명처럼 사랑했다"고 한다. 이 사랑은 대가를 지불할 때 가능하다.
3. 우리에게는 지속적인 격려와 세움을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삼상 23:14-18
사울이 다윗의 생명을 찾으려고 십 광야에 나갔음을 알고 요나단은 먼저 그의 친구에게 찾아가서 16절 "그로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다." 누군가 나를 돕는 자가 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를 돕는 자가 있다. 다윗은 지금 도움을 받아야 할 위치에 있다. 이 두 사람은 형편에 따라 사는 관계가 아니라 언약에 따르는 관계이다. 후에 다윗은 이 언약에 따라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끝까지 지키고 책임졌다.
믿을 만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믿어지며 신뢰가 가는 사람은 있다.
판단, 조사,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지지, 격려, 사랑의 대상이 있어야 한다.
모세에게는 아론과 훌, 여호수아에게는 갈렙, 다윗에게는 요나단, 다니엘에게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베드로에게는 요한, 바울에게는 바나바 디모데 실라 누가와 같은 진정한 믿음의 친구들이, 두 정탐군에게는 기생 라합이 있었다.
전 4:9-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역사적인 만남, 운명적인 만남을 기도하자. 구속사를 섬기기 위해 내게 붙인 진정한 이웃은 누구인가? 오늘도 요나단이 필요하다. 나도 누군가의 에제르가 되어야 한다.
구속사를 위해 사람을 얻으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람을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