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농부가 자기 집에 키우던 암소가 새끼 두 마리를 낳는 것을 보고 몹시 기뻐서 자기 아내와 함께 이렇게 약속을 했다. “여보 이 중에 한 마리는 키워서 주님께 드립시다.” 얼마 후에 농부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주님의 암소가 죽어버렸소”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어떤 것을 주의 것이라고 결정하지 않았잖아요?” 평소에 잘 하다가도 어려움이 닥치면 신앙의 우선순위를 잃어버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빗대는 예화이다.
출12장의 위대한 출발은 피로 시작한다. 유월절 양, 십자가의 보혈, 그것은 우리의 신분을 변화시켰고 우리의 미래를 약속해 준다. 그러나 그 다음이 더 중요하다. 출13,14장에서는 신분의 변화뿐 아니라 그 신분에 맞는 자격들을 취득하게 하기 위해서 계약을 맺는다. 다시 말해 상호관계를 맺는다. 그것이 세례이다. 이 세례를 Second Blessing이라고 한다. 받는 삶에서 주는 삶, 상호 응답하는 삶으로의 전환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런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을까?
Ⅰ 1-2절, 11- 16절 으뜸을 드리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유월절 날 애굽의 모든 장자를 침으로 애굽의 장자는 다 죽임을 당했다. 장자를 친다는 것은 그 집이 대가 끊겼다는 말이며 축복이 끊겼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를 살려 주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를 제사장 나라로 세우셨다. 장자권의 축복을 준 것이다.
[출19:4-6]“세계가 내게 속하였나니 온 세계를 위해서 너희를 먼저 구별하여 제사장 나라를 세웠다, 너희를 통해서 세계가 내게로 돌아올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방법이다. 한 나라, 한 교회, 한 가정을 선택해서 그에게 축복을 주어서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이 온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가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으뜸으로 모신다면 하나님도 그들을 으뜸으로 예우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을 인격적인 관계라고 한다. 자녀가 어렸을 때는 부모의 주는 사랑의 일방적인 관계이다. 그러나 자녀가 성장했을 때는 부모의 은혜에 응답할 줄 아는 상호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에 일천번제를 드렸다.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제사였다. 그의 삶과, 정치, 그 모든 것에서 하나님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이후에 하나님의 자리에 우상을 놓았을 때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면하지 못했다. 세례는 하나님 중심의 삶, 하나님 우선의 삶을 말한다. 최고의 자리에 늘 하나님이 우선 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우리가 바른 관계를 맺으려면 원칙대로 법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법궤를 옮겨오려 했던 다윗이 실패한 이유는 법궤를 옮기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원칙이 있다.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이 무언지를 모르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섬겨야 한다.
또 예배를 드릴 때 정성을 다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禮)를 갖추는 것이다. 정성이 없는 예배는 가치가 없다. 헌금을 미리 준비하는 것, 시간을 맞추는 것, 앞자리부터 앉는 것 다 예를 갖추는 행위이다. 십일조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으뜸으로 모시는 방법이다.
Ⅱ 3-10절 유교병을 먹지 말라.
무교절 기간 동안에 일주일 동안은 절대로 유교병을 먹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절대 누룩이 있는 떡, 발효된 떡을 먹어서는 안 된다. 집에서 이것을 완전히 제거하라고 한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에서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곳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죄이다. 오죽하셨으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양으로 받으시고 사람을 용서하셨겠는가? 죄는 퍼지는 누룩이다. 자기 혼자서 죄 짓는 경우가 별로 없다. 반드시 딴 사람에게 영향력을 준다. 그래서 누룩을 없애야 한다.
세례를 받을 때 또한 성자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이것은 십자가 앞에 내가 부끄러움 없이 살겠다는 계약이다. ‘지금부터는 내가 힘에 붙여서 혹 내가 부지중에 범죄 한 것은 모르지만 의도적으로는 내가 죄 지으려고 하지 않겠다. 제가 깨끗하게 정결하게 부끄러움 없이 살아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것을 결단하는 것이다. 죄짓지 않고 살겠다고 하나님과 계약하는 것이다.
삼하12- 13장에 보면 다윗이 범죄 했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지적했을 때 하나님이 이미 용서하셨다. 그러나 다윗은 그 아들에게 왕좌를 빼앗기고 도망가는 비참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사무엘하 12장 12절, 13절에 보면 하나님이 용서하셨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왜 이런 어려움이 계속되는가? 대단히 중요한 얘기다. 다윗은 시편에 보면 회개시, 참회시가 많이 나오는데 이미 하나님이 용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침상이 젖도록, 요가 그 눈물에 적셔지도록 까지 계속 뉘우치는 기도를 한다. 다윗이 용서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습관 속에 자기의 뼈 속에 자기의 살 속에 숨겨져 있는 이 악성들, 죄성들, 이것들이 다 빠져 나갈 때까지 철저하게 돌이키는 회개이다.
왜 하나님은 용서하셨으면서 어려움을 주셨는가? 그것은 죄 값이 아니라 징계라고 한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대행자로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이 징계해 주시는 것이다. 죄는 용서 받았다 할찌라도 우리에게서 죄성을 뽑아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많은 징계들을 준비해 놓으신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이 범죄 했다. 짐승을 죽여서 가죽 옷으로 수치를 가리 우고 짐승의 희생을 통해서 아담이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 분명히 하나님이 용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피를, 희생제물을 받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여자는 해산하는 수고를 더해야 했고, 또 남자가 수고해도 땅이 척박해져서 수고의 결실이 나오지 않는다. 계속 엉겅퀴가 나오는 이런 고난이 계속 따라 오게 된다. 이유는 성화에 있다.
우리는 보통 일반적으로 구원, 그럴 때는 지옥 갈 사람이 천당 가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좁은 의미에서의 구원이다. 그러나 구원이라는 개념을 크게 보면 우리의 신분이 변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성품, 우리의 마음, 생각들이 거룩해지고 나중에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을 닮는 영화의 단계에 도달하는데 까지 전부를 구원이라고 말한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용서하셨으면서도 어려움을 주시느냐? 십자가 앞에서 정결하게 살라고, 깨끗한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나님처럼, 하나님 형상으로, 하나님의 대행자로 내놓아도 부끄러움이 없을 만큼, 깨끗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적절하게 고난을 주시는 것이다.
죄를 용서받은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회개의 삶을 사는 것이다. 십자가 앞에 정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도록 몸도 마음도 정결하게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 이것이 하나님 자녀들만 갖는 특권이다. ‘네 집에서 유교병을 제거하라.’ 결단하는 것이다. 우리가 약속한 것이다. “하나님, 죄 된 생활 버리겠습니다. 정직하게 진실 되게 내가 살아보겠습니다.” 결단하는 것이다. 이 약속을 안 지키기 때문에 자꾸 사고가 생긴다. 자기 자랑, 나를 내려놓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간증하고. 또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마음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노력하고, 예수님의 생명 전달하는 일에 헌신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존귀하게 세우신다.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 교회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존귀하게 사용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거룩한 어른을 모시고 다닌다. 청소하지 않으면 싫어하신다. 생각도 마음도, 행동도, 언어도 정결하게 깨끗하게 구별되게 살 수 있도록 자기를 돌아보고 또 십자가 앞에 서고 또 피로 정결함을 받고 이런 결단 이것이 성자 예수님과의 약속이다.
Ⅲ. 17-22절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으라.
21절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지금부터는 내가 인도한다. 너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겠느냐?” “네! 제가 따라 가겠습니다.” 그런데 구름기둥 불기둥 따라갔더니 위기가 왔다. 수르 광야로 데리고 갔는데 가서 보니까 물이 없고 천신만고 끝에 물이라고 찾았더니 써서 먹을 수 없는 물 마라이다.신광야로 데리고 가셔서 거기 따라갔더니 양식이 다 떨어져 버렸고, 느비딤에 갔더니 또 물이 없고, 또 아말렉을 만나게 된다.
성령 충만하게 되면 그때부터 모든 게 잘 풀린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진짜 잘 풀리는 것은 가나안에 들어가야 된다. 우리가 자격을 얻을 때까지는 고생을 좀 해야 된다. 라이센스를 얻을 때까지 하나님께서 광야를 지나면서 자격, 하나님 후사로 내 재산을 맡겨도 될 만큼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 고생을 시키신다.
그래서 성령 충만을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시험 들게 된다. 오히려 지금부터 하나님이 찜하셔가지고 나를 이제 하나님의 대행자로 키우시겠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전쟁을 만나게 하고, 어떤 때는 결핍을 만나게 하고, 어떤 때는 배신을 당하게 하고, 건강문제, 인간관계문제, 마음의 문제, 수도 없는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대행자로 세워져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무슨 뜻이 있겠지... 그래도 열이 안 꺼지면 그 다음 비장의 무기를 꺼내는 것인데 무엇을 돕기 위해 왔는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절대 손해는 없다. 무엇을 도와주기 위해서 이 사건이 있다. 이걸 성경적으로 말하면 로마서8장 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냥 당하는 고난은 없다. ‘무엇을 돕기 위해 왔나?’ 깊이 생각해 봐야 된다. 지금은 안 보이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비밀한 뜻이 있다. 세 가지를 작정하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우리가 이것 선택하면, 이것 결단하면, 인생이 달라진다. 죠지뮬러의 기도응답처럼 오만 번 아니라, 오십만 번도 하나님이 보장하시겠다는 것이다. ‘내가 너를 나의 얼굴로 나의 형상으로 나의 대행자로, 나의 장자로 너를 세우겠다. 내가 내 일을 전부 네게 맡기겠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 분기점이 바로 세례이다. 세례 받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수지맞은 것이다. 한번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