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눈높이 교육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어른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말고, 아이들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접근이었다. 교육뿐 아니라, 상업에서도 판매자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뀜으로서 더 큰 판매율을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관점의 변화는 항상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마찬가지의 원리로 신앙생활에서도 돌아봐야 할 점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지만, 예배가 살아있지 못하다. 왜냐하면 예배의 중심이 자기에게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느냐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예배의 순서나 드리는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과 만남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예배의 중심이 되어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살아있는 예배가 된다.
믿음의 성장이란 무엇인가? 내 중심의 시각에서 하나님 중심의 시각으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인격적인 성숙이란 무엇인가? 내 관점, 내 중심의 시각에서 상대방의 시각, 상대방의 관점을 헤아릴 수 있는 변화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아는 것이다. 반대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랑은 힘이 있으면 상대방을 조종하려고 한다. 비인격적이며 천박하고 유치한 사랑이다. 일방적이고 강요에 의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가나안 첫 성 여리고성을 점령하기 전, 마지막 코스를 점검하는 일에서 첫째, 할례를 행하게 하시고, 두 번째로 유월절을 지키도록 하셨다. 할례는 내힘, 내가 의지하고있는 것들을 잘라내는 행위였다. 유월절 사건은 애급에서 10가지 재앙 중에 마지막 사건이었다. 9가지 재앙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재앙에서 제외되었던 것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 9가지 재앙까지는 하나님도 아무것도 요구하시지 않으셨다. 그저 고센땅에만 있는 것만으로도 구원을 얻었다. 이것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나 열 번째 재앙은 하나님의 명령 앞에 구체적으로 반응해야하는 것이다. 타락한 상태에서 거룩한 상태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야 하는 구체적인 반응이 있어야 구원을 얻는 사건이다. 즉 내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것이 신앙의 전환점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인격적인, 상호 교통의 관계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멸망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월절을 지키도록 하신 것은 지금까지 받아만 온 생활에서 이제 드리는 삶으로의 전환을 요구하신 것이다. 이것은 오늘 우리 신앙생활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내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의 이 전환점이 유월절이다.
Ⅰ. 출12:14 어린양을 취하라.
유월절을 이해하기 위해서 출애굽기의 현장으로 가야 한다. 유월절은 이방인이나 객, 할례받지 못한 사람은 유월절을 먹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출12:43-44, 48]“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유월절 규례가 이러하니라 이방 사람은 먹지 못할 것이나 각 사람이 돈으로 산 종은 할례를 받은 후에 먹을 것이며 너희와 함께 거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여 지킬찌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출12:14]“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찌니라”
유월절은 여호와의 절기이기 때문에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키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유월절이 제대로 지켜져야 복을 받는다. 복받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출12:1-3]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찌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새 일, 노예에서 자유인이 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새일이 시작된다. 그 전환점에 어린양이 있다. 그리고 그 어린양의 피가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되리라.
[출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심판이 오고 있다. 죄가 있기 때문에 죽음의 사자가 온다. 그러나 피를 발라놓으면 죽음의 사자가 넘어갈 것이다. 이것이 피의 비밀이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재앙을 받는가? 피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이다. 피가 있어야 저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목숨을 내어놓아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대신 목숨을 내어주셨다. 피를 바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구약에서는 속죄를 위해서 양의 피로 제사를 드렸다. 제사는 제사드리는 사람이 먼저 제물에 안수를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의 죄가 양에게 전이된다. 그리고 양의 죽음은 내가 죽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므로 안수는 회개를 의미이다. 신약시대의 안수행위 역시 회개이다. 무엇보다 구체적으로 회개를 해야 함을 말한다. 피는 내가 회개한 구체적인 근거이다.
왜 예수 믿는데도 해결되지 않는 재앙이 있는가? 그것은 해결하지 않은 죄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귀신이 그 죄에 기득권을 행사한다. 그러므로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는 내 공로로 서지 않는다. 어린양의 공로로 선다. 나를 위해 희생한 피의 증거물을 가지고 나간다.
가령, 은행에 갔는데 내 얼굴을 보고 돈을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싸인 때문에 돈을 내어주는 것처럼 예수님의 이름의 암호 때문에 우리가 자유함을 얻는 것이다.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는 것은 예수님의 피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할 때도 내공로를 앞세워서는 안된다.
왜 나는 열심히 기도하고 헌금했는데 왜 풀리지 않는가? 내 공로로 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뚫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보라.
<유월절을 지키는 방법>
1)반드시 일년 된 어린양이나 염소라야 한다. -대속물이기 때문이다.
2)암컷은 안되고 숫컷-대표성의 원리이다.
3)흠없는 양-절둑발이나 눈 먼 것은 하나님께서 제물로 받지 않으신다.
4)반드시 죽여서 피를 문설주나 인방에 발라야 한다. -피가 죌르 속하는 원리이다.
5)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나물고 함께 먹어야 한다. -불은 심판을 의미한다.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심판을 받으신 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을 얻는다.
6)날로 먹거나 물에 삶아 먹어서는 안된다. -교훈으로 구원얻는 것이 아니다. 간디는 날마다 산상수훈을 읽었다고 한다. 성경을 도덕적인 교훈으로 받으면 구원이 없다.
7)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집고 급히 먹으라-이 땅이 우리가 거할 영원한 곳이 아니다.
왜 양인가? 코끼리나 원수이이는 안되는가? 왜 인방에 마르는가? 그냥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다. 신앙은 뭐냐? 우선 신뢰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순종하는 것이다.
[출12:3]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찌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한 사람이 한 마리를 취하게 했다- 나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로 만나시길 원하심이다. 지금까지는 민족적으로 구원을 받았다. 고센땅에만 있으면 복을 받았다. 좋은 교회에 오기만 해도 복을 받는다. 그러나 열 번째 재앙은 그렇지 않다. 생명에 관한 것은 개인적이다. 각 사람이 받아야 한다.
우리가 가족을 사랑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대신할 수 없다. 밥을 대신 먹어줄 수도 없다. 대신 구원받을 수 없다. 구원은 일대일의 관계이다. 각 가족의 숫자대로 한 사람이 한 마리씩이다. 구원은 자신의 응답에 있다. 결코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수 없음을 뜻한다.
우리는 부모의 혜택을 통해서 복을 받는다. 그러나 구원, 생명의 문제는 그렇지 않다. 어떻게해서든지 아이들이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구원과 심판은 대신 해줄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 나 혼자서야할 중요한 문제가 있다. 어린 양을 경험해야 한다. 죄와 사망을 이긴 자유한 사건이 있다. 내 인생에 깊숙이 뿌리내린 저주가 없는가? 피를 적용하자. 그 피가 우리를 저주에서 해방한다.
Ⅱ. 누룩을 제거하라.
[출12:15] “너희는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찌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칠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
[고전5:7-8]“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조심할 것은 누룩이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도 누룩이 없었고, 우리도 누룩이 없어야 한다. 특별히 누룩에 대해서 말씀할 때 사두개인, 제사장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다. 지도자의 영향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미치기 때문에 엄히 말씀하신다. 누룩은 박테리아와 같다. 금새 번져나가는 강력한 영향력이 있다.
마23장에서 그렇게 싫어하셨던 누룩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7번 화를 내셨다. 그래서 7화라고 한다.
1)[마23:13절]-“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전도길 막는 지도자를 말한다. -지도자는 가만히 있어도 영향력을 미치는 직분이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보지 않는다. 그들이 보는 것은 먼저 신앙생활한 성도, 지도자, 신앙의 선배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먼저 믿은 사람들의 표정과 삶을 보는 것이다.
너희는 천국문을 사람 들 앞에서 닫고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것은 천국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많은 지도자들이 말로, 행동으로, 삶으로 천국을 들어가고자하는 사람들을 막고 있다.
2)또 하나의 저주, -잘못 가르치는 자- 양육. 왜곡된 가르침.
[마2315절]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교육을 잘못시키는 것이다. 지도자 한 사람의 말한마디가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말한다.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지는가? 그래서 예수님이 화를 내셨다.
[마태복음 18:6]“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 마태복음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지도자의 영향력, 지도자의 말, 가르침을 경계하고 있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경은 많이 선생되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지도자는 개인이 아닌 공인이며, 그만큼 영향력을 미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말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무교절동안 집안에서 절대로 누룩-죄, 썩을 것을 나는 절대로 누룩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누룩을 제하는 것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믿는 날부터 살리는 말만 해야 한다. 만약 말을 하려면 유익한 말만 해야 한다. 그래야 심판날에 심판을 면하게 된다.
[요한계시록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 났고
마귀는 참소자이다. 있는 비리를 자꾸 드러내는 것도 마귀가 하는 일이다. 공동체를 헤치는 것은 모양이라도 취하지 말아야 한다.
[출13:7] “칠일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너희 곳에 있게 하지 말며 네 지경 안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도 말게 하며 ”
왜 가나안이 안열리는가? 누룩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는 일 때문이다.
[마태복음 18:6]“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
예수님은 사람을 실족케 하는 일보다, 차라리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 낫다고 했다. 실족케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는 말이다.
Ⅲ. 출1113:1, 11-16 첫 것을 드리라.
유월절 이후로 장자는 다 내것이다. 지금부터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는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면 하나님도 우리를 귀히 여기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적인 관계로 만나기로 원하신다. 누가 복을 받느냐? 첫 것을 드리는 신앙이다.
십일조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다 하나님 우선생활이다.
<십일조 생활 5가지>
1)주일성수-주일은 일주일의 첫날이다. 그러므로 주일을 잘 지켜야 한다.
2)시간의 십일조-새벽기도. 경건의 시간.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고 한다. 새벽형 인간은 더욱 성공한다.
3)물질의 첫 것-수입이 들어오면 먼저 하나님의 것을 떼어놓으라. 물질을 지키려면 먼저 하나님께 드려라.
4)건강을 먼저 드리라. -한 달 스케줄을 잡을 때, 몸을 드리는 일에서 제일 먼저 하나님의 일을 계획해야 한다. 셀장이라면 먼저 셀을 섬기라. 건강을 바치면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신다. 헌신 했더니 질병도 고쳐주셨다.
5)자녀중 첫 자녀를 드리라. -자녀의 이름으로 헌신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첫 열매선교헌금으로 드린다.
유월절을 지키고 있는가? 십자가 정신으로 살겠다는 뜻이다.
1. 피의 공로로 나아간다. 예수님을 백으로 산다.
2. 누룩을 제거하라. 살리는 일만 하겠다.
3. 첫것을 드리라. 하나님을 어른으로 모시고 살겠다는 결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