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00여년전만 해도 인류의 평균 수명은 불과 50세였다. 그러나 인류의수명이 점차 연장되면서 특별히 지나간 30여 년 동안 현대 심리학자들은 인생의 발달단계를 여러 단계로 나누면서 35세-50세까지를 중년기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에 수명이 늘어남으로서 50-65세까지를 중년후기라고 해서 중년기가 늘어났다. 그래서 요즘은 회갑을 하지 않는다. 예전에 비해서 젊은층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이렇게 긴 인생의 중년기에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장 민감하게 경험하는 시기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시기는 영광스런 시기가 될 수도 있고 욕된 시기가 될 수도 있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 가운데도 중년이 많이 있다. 그래서 청년이라고 해도 중년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에서도 청소년기에 대해서는 배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청소년에 대한 이해가 많이 높아져 있다. 그런데 중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새해 벽두에 중년에 대한 공부를 성경적으로 조명하여 답을 얻고자 한다.
우리가 이 시기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또 어떻게 이 시기를 준비해 갈 것인지는 인생 그 자체의 마무리를 의미있게 준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사회학자들의 말을 빌면 성장기에 따라 기호가 달라진다고 했다. 어릴 때는 좋아하는 것은 먹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뭐든 입으로 가지고 간다. 조금 성장하면 놀이기구를 좋아한다. 장난감이 그래서 필요하다. 그 다음 단계는 친구를 좋아한다. 그래서 친구에게 몰두한다. 조금 더 성장하면 이성에게 매료된다. 그 다음은 일하기를 좋아하고 성취감을 얻기 좋아한다. 그런데 40세가 넘으면 명예를 좋아한다. 그리고 육십세가 넘으면 사후를 생각하며 종교적 관망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각 시즌에 맞는 목표와 취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이 건강한 삶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원하며 지금 내 삶의 포커스를 어디에 맞추는가? 인생에서 관심이 가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수많은 것 중에 하나에 포커스를 맞추어야만 성취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을 선택할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 무엇을 위해서 부르셨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같으면 행복하다. 그러나 다를 때는 괘도수정을 해야 한다.
폴 트루니에는 “40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황혼기가 시작되는 시기여서 이제까지 긴 오르막길을 걸은 후에는 다시 내리막길을 배워야 하는 시점이다. 인생의 황혼, 이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는 마치 가을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처럼 알지 못하는 사이에 찾아온다.” 고 했다.
어떤 심리학자는 “자신의 나이를 출생의 시점에서가 아니라 죽음의 시점에서 헤아리기 시작하면 중년이 된 줄 알아라.”고 했다. 사회생활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은퇴가 얼마 남았나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중년이다.
중년기를 연구한 어느 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 “중년이 되어서 아무런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영적인 위기가 없이 보낸 사람 10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사람 얘기 하나로 책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무슨 얘기인가? 중년은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영적으로 불혹의 나이가 아닌 위기의 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위기는 세상 모든 사람이 겪는 보편적인 위기이다.
그만큼 중년은 위기의 나이이다. 지금까지의 삶의 태도에서 전환하지 않으면 자초될 수 있는 나이가 중년기이다. 그래서 중년기에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 가운데 직업을 바꾼다든지 사업을 시작한다든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후반기의 대처 가운데 나쁘지는 않지만, 그것이 인생 후반전의 본질은 아니다. “인생 후반전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직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바로 마음을 바꾸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꾸고 자신의 삶을 정비하는 것이다. ...반드시 직업의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태도의 변화는 언제나 있어야 한다. 이런 태도의 변화를 ‘인격적 패러다임 전환’(즉 한 사람의 인식과 신념과 가치와 감정의 체계에서 생기는 중대한 변화)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년의 위기는 제2의 도약기가 될 수 있다. 중년이야말로 전에 없었던 삶의 경험과 지혜, 침착함과 통찰력과 다듬어진 인격이 있어서 우리의 태도변화와 선택에 따라서 인생의 전성기를 보낼 수 있는 때이다.
이러한 중년기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결정된다. 중년기에 왜 방향과 목적을 점검하라고 하는가? 바로 이러한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변화가 무엇인지 알아야 대처할 수 있다.
Ⅰ. 육체적인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시102:23-24]“저가 내 힘을 중도에 쇠약케 하시며 내 날을 단촉케 하셨도다. 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주의 연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
우리 인생에 발달 단계에 있어서 가장 급격한 육체의 변화를 경험하는 시기가 두 시기가 있다. 사춘기하고 중년기이다. 이 때 경험하는 육체의 변화는 위기의식을 가져온다. 사춘기 자녀들은 갑자기 신체적인 변화를 겪을 때, 갑자기 바뀌어 지기 때문에 당황하며 불안을 경험한다. 사춘기가 신체적인 변화 때문에 심리적인 변화를 겪는 것처럼 중년기 역시도 그렇다. 사춘기와는 달리 중년기는 몸이 허물어지면서 절망을 겪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은 생리의 중단, 쉽게 피곤을 느끼는 피로감, 탄력을 잃은 피부, 비만, 등 전에 없던 모습으로 변한다. 인생의 발달 단계마다 적응이 필요하듯 중년기에도 달라진 육체적인 적응을 필요로 하는 시기이다. 예전과 다른 육체를 예전과 같이 적응시키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예전같이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지나치게 운동에 몰두하고 육체를 돌보는 일에 신경을 쓴다.
Ⅱ. 정서적 불안
또한 육체적인 변화와 더불어 오는 것이 정서적인 변화이다. 사춘기가 되면 부모 의존적이던 아이들이 갑자기 태도가 변하여 독립적이 된다. 그래서 부모님께 말대꾸를 하고 반항을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중년기에도 갑자기 겪는 신체적 변화와 함께 심리적 변화가 따라온다. 그 첫째가 불안함이다. 그래서 한 심리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
20대에 우리는 사랑을 발견하고 가정을 소유하게 된다. 삼십대는
30대에 우리는 직업을 발견하고 직장을 소유하게 된다.
그러나 40대는 우리는 불안을 소유한다. 그래서 흔히 마(魔)의 40대라고 한다. 갑작스런 신체적 쇠약과 성인병, 그리고 연배의 사망소식 등은 우울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중년기는 홀몬 분비가 달라지기 때문에 남자는 여성화되고 여자는 남성화된다. 그래서 남자는 가정적이 되고 젊었을 때 바깥으로 나돌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 가정으로 돌아오게 된다. 여성은 남성화 될 뿐 아니라 여자를 주변적인 여건도 대담하게 만든다. 그래서 중년이후의 가정생활에서는 여자가 주도권을 갖게 된다. 남자는 상대적으로 좌절감을 갖게 되고 무력감을 갖게 된다. 남성은 중년기가 되면 고개숙인 남자가 되어 여러모로 기가 죽어 있는데 이런 때 아내가 강해지기 때문에 부드럽고 따뜻한 이성에게 끌리게 된다.
시102:2절에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3절 “대저 내 날이 연기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낸과리 같이 탓나이다”
4절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음으로 내 마음이 풀같이 쇠잔하였사오며”
5절 “나의 탄식소리를 인하여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자신이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압박감, 자신에 대한 연민, 자책감 , 사회적으로도 은퇴의 압력 등 신분의 변화를 준비해야 하고 동시에 가족에 대한 부담감에 눌리며 위기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런 때 더욱 마음의 평정이 필요하고 자기 내면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자기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에서 무엇이 급한 일인지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분별하고 우선순위를 조절을 해야 한다.
Ⅲ. 외로움, 정서적 배려에 대한 갈망
6-8절 “나는 광야의 당아새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으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와 같으니이다. 내 원수들이 종일 나를 훼방하며 나를 대하여 미칠듯이 날치는 자들이 나를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중년기에 느끼는 고독은 나만 혼자 버려진 것 같고, 모두가 다 나를 대적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후반전에 가까울수록 중년 후기를 향해 가면 갈수록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자꾸만 원수처럼 보인다. 아내도 남편도, 자식도 다 내 인생을 뜯어 먹고 사는 원수들로 느껴진다. 사실 인생의 후반전에 있어서는 사업의 실패보다도 그리고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보다도 우리를 더 잔인하게 괴롭히는 고통이 있다면 인간관계의 상처와 갈등이라고 할 수가 있다.
중년기의 외로움은 누군가 내가 하는 말에 공감을 해주고 이해해주기를 바라는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럴 때 나를 잘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이성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연결이 된다. 사춘기에는 이성에 눈이 끌리게 되듯 중년기도 어딘가 백마탄 사람을 기다리기도 한다. 내 생에 단 한번 만이라도 사랑해 보기를 원하는 등 사춘기 때처럼 허황된 병이 생긴다. 남자는 어느 정도 성취감이 있어서 극복하지만, 여성은 가정에만 인생을 바쳤다가 아이들은 떠나고 남편은 분주하다. 자신의 곁을 다 떠나버린 것 같아 혼자 빈 둥지를 느낀다. 이것을 빈 둥지 증후군이라고 한다.
Ⅳ. 정체성의 불안감
9-11“나는 재를 양식같이 먹음 나의 마심에는 눈물을 섞었사오니 이는 주의 분과 노를 인함이라 주께서 나를 드셨다가 던지셨나이다.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쇠잔함 같으니이다.”
하나님도 나를 버렸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구나.
우리 자녀들의 열등감은 자신의 정체성에 있다. 내가 누구냐? 사춘기의 자녀는 더 이상 어린아이들이 아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이 아니지만, 동시에 어른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누구냐라는 문제에 혼란을 겪는다. 그래서 때로 본인들도 헛갈리고 부모도 헛갈린다. 부모가 뭔가 시키면 “내가 애입니까? ”하고 반응하다가도 어른대접하면 “저는 보호를 받아야 하잖아요.”라고 한다. 어른과 아이의 양쪽세대에 끼여 있다.
중년기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생각은 언제나 청년이다. 그런데 몸은 따라주지 않는다. 용기와 의욕은 청춘인데 현실에 적응할 때는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고 좌절을 느낀다. 이 때 정체성에 대해 위기를 겪는다. 신체적 노화 및 사회 내에서의 자기실현에 대한 불만과 함께 찾아오는 정서적 불안과 갈등은 자기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이며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하며, 권태와 불안, 의욕상실 등의 정서적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황장애에다 강박장애, 우울증장애, 정서장애들을 경험하는 시기이다.
어느 날 갑자기 외로움이 몰려오고 집에 들어가기 싫고 어디 멀리 떠나 가출이라도 하고 싶다. 이런 현상이 다 자아정체감의 위기 때문이다.
볼턴 헌터라는 사람이 쓴 시(詩)이다.
집은 조용하다.
아이들의 침대는 더 이상 정돈할 필요가 없다.
아! 새둥우리는 비어있는데
나는 이름 모를 상처입은 새가 되어 어디로 떠나려는가?
외롭게 목표없이 어미됨 외에는 다른 것을 모르고 살아온 세월
이제 내가 어머니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여야 한단 말인가?
중년여성의 위기를 잘 표현해 주는 글이다. 이런 중년기의 자아정체감의 위기는 현재의 삶에 불만을 갖게 함으로써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 여러 가지 문제를 초래하게 되고 급기야는 영적인 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그 위기는 이렇게 나타난다.
우선 일상생활에 대한 권태로움과 불만이 높아지면서 삼의 의욕을 잃고 자신을 무가치하게 느낌으로써 무기력증과 정체감에 빠지기가 쉽다. 때문에 현실 도피가 많아지고 자기연민에 빠져들게 된다. 과거에는 매우 확고하던 신념과 가치관의 체계가 흔들리면서 삶의 목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이유 없이 성공한 사람들에게 대해서 적개심과 울분을 갖게 되다. 그러다 보면 감사를 잃게 되고 우울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때 삶의 전환이 필요하다. 내 인생의 궤도수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새로운 인생의 궤도수정을 요구하실 때 반드시 우선순위를 물으신다. “네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자신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예비하신 축복을 베푸시는 분이시다.